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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찾아서] 중앙정보부의 집요한 협박 / 이총각

등록 2013-06-27 19:19수정 2013-06-27 21:17

1976년 7월25일 동일방직 여성 조합원들의 ‘알몸시위’ 사태 직후 섬유노조의 새 위원장으로 뽑힌 김영태는 이영순과 이총각이 이끄는 여성 집행부를 지지한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반조직파 남성 조합원들의 노조 방해 행위를 방치했다. 사진은 78년 2월 ‘똥물 사건’으로 해고된 노동자들이 어용노조 본색을 드러낸 김영태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농성 장면.
1976년 7월25일 동일방직 여성 조합원들의 ‘알몸시위’ 사태 직후 섬유노조의 새 위원장으로 뽑힌 김영태는 이영순과 이총각이 이끄는 여성 집행부를 지지한다고 밝혔으나 실제로는 반조직파 남성 조합원들의 노조 방해 행위를 방치했다. 사진은 78년 2월 ‘똥물 사건’으로 해고된 노동자들이 어용노조 본색을 드러낸 김영태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농성 장면.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31
1976년 7월29일 섬유노동조합본부(섬유본조) 대의원대회에서 부산지부장 김영태가 방순조 위원장을 밀어내고 새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동일방직 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방 위원장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8월6일 섬유본조는 동일방직 이영숙 지부장에게 조직을 수습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반조직파인 고두영을 지부장으로 인정하지 않겠으니 노조를 원래대로 수습하는 데 만전을 기하라는 내용이었다.

동일방직 민주노조에서는 7월25일 ‘알몸시위’ 투쟁을 강제해산당한 이후 수난이 계속되고 있었다. 회사의 비호를 받은 고두영이 자신이 위원장임을 주장하며 지부장 직인과 열쇠, 서류 등을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반조직파들이 노조 사무실에 쳐들어와서 지부장의 의자에 버티고 앉아 있는 등 활동을 방해하는 바람에, 노조의 기능은 사실상 마비된 채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어 갔다. 그러는 가운데 엄청난 공권력의 폭력을 경험한 조합원들이 자포자기하며 하나둘 퇴사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어 이 지부장은 섬유본조 방 위원장에게 사고 지부 처리를 부탁하여 이른 시일 안에 수습할 것을 약속받았다. 그런데 방 위원장이 불신임을 받고 자리에서 물러났다니 난감한 지경이 돼버렸다. 그렇게 낙심을 하고 있는데 새 위원장인 김영태가 고두영을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자 집행부는 그에게 기대를 걸게 되었다.

그런데 실상 김영태 위원장은 이영숙 집행부를 지지한다는 말만 반복할 뿐 노조 정상화를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그사이 섬유본조 내 자신의 반대파를 없애는 데만 급급했다. 섬유노조 서울지부장과 경기지부장을 갈아치운 것은 물론, 1년 뒤에는 조직 분열을 이유로 전임 방 위원장과 이춘선(당시 한국노총 상근 부위원장) 등 7명을 제명했다. 게다가 두 사람이 위원장으로 있는 합동방직과 방림방적을 사고 지부로 규정하고 아예 집행부 자체를 몰아내려 했으나 지부의 강력한 반발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섬유본조가 동일방직 노조를 정상화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자 고두영은 무슨 수를 써서든지 여성 집행부를 몰아낼 궁리를 했다. 이 지부장과 이총각 총무부장을 상대로 ‘직무집행 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이에 집행부는 가처분 신청에 대한 이의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렇게 조합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자 회사 쪽의 부당노동행위는 날로 기승을 부렸다. 농성에 참가한 조합원들을 진급에서 누락시키는 건 다반사였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부으며 다시 옷을 벗어보라는 둥 인간 이하의 작태를 서슴지 않고 저지르고 있었다. 한술 더 뜬 반조직 남자 노동자들은 알몸시위 때 찍은 사진을 돌려보며 비열한 짓을 계속해댔다. 더 어이없는 건 열성적으로 시위에 참여했던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스스로 퇴사하지 않으면 제명할 거라며 협박을 해대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9월까지 무려 130여명의 열성 조합원이 퇴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날 퇴근해 집에 들어선 총각은 어머니로부터 봉투를 하나 받아 들었다. 노무과장인 최종렬이 총각이 없는 틈을 타 어머니에게 5만원이 든 돈봉투를 주고 간 것이었다. 총각은 도대체 자신을 뭘로 보고 그랬나 싶은 생각에 자존심이 상해 분노가 치솟았다. 그리고 다음날 노조 집행부 회의에서 보고를 하고는 최 과장의 얼굴에 돈봉투를 던져 버렸다.

이런 일이 있고 얼마 뒤, 중앙정보부에서 나왔다며 이 지부장과 총각을 노무과 옆에 있는 공장장실로 불러냈다. 그러고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협박을 해댔다.

“왜 자꾸 고집을 부려? 조합원의 희생을 막아야 하지 않겠어? 너무 시끄럽게 하지 마. 그러면 감옥에 갈 일밖에 없어. 우리 정보부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 줄 알아?”

좀 침착하고 무거운 성격인 이 지부장보다 성질이 급한 편인 총각이 먼저 큰 소리를 냈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우리가 뭘 잘못했냐? 우리는 노조활동을 잘하려고 한 죄밖에 없어. 왜 우리한테 고통을 주고 노조를 깨려고 해?”

아무래도 총각이 있는 상태에서는 이 지부장을 설득하는 게 어렵다고 판단한 정보부 요원들은 둘을 따로 불러냈다. 그러고는 총각에게는 아직 미혼인데 결혼도 해야 하지 않겠냐, 해고되면 직장도 못 들어가고, 세상이 어지러우면 빨갱이 불순분자들이 책동을 한다는 둥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를 해댔다. 총각은 그저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이 지부장에게는 어떤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직업군인 애인을 만나고 있었던 까닭에 다른 압력을 넣었을 것이 분명했다.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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