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교육 분야를 맡고 있는 김지훈입니다. 많은 독자들이 그러시겠지만 저도 가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다시 보는 꿈을 꿉니다. 분명히 수능을 십년도 전에 쳤는데도 꿈속에선 수능을 봐야 한다는 상황에 왜 그리 속절없이 말려들어가는지, 꿈에서 깨고 나면 안도감과 함께 허탈하게 웃음이 나옵니다.
이번주에 보도된 ‘수능 만점자 3명이 연세대 의대 정시모집에서 탈락했다’는 기사가 관심을 끈 이유는 수능이란 단어가 주는 이런 복잡한 감정과 함께 ‘수능에서 만점을 맞았다면 정시모집 정도는 당연히 합격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일 겁니다.
왜 이 학생들이 불합격했을까요? 황정원 연세대 입학처 차장에게 연락해봤습니다. 황 차장은 “수능 만점자 3명 당락에 선택과목의 영향이 컸다. 상당히 근소한 점수로 당락이 갈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연대 의대 정시는 수능을 90%, 내신을 10% 반영합니다. 수능 만점자 학생들은 내신 때문이 아니라 어떤 과목을 선택했느냐에 따라서 당락이 결정됐다는 말입니다.
잠깐 설명을 하면, 수능 과학탐구 영역엔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별로 Ⅰ·Ⅱ가 나뉘어 모두 8과목이 있습니다. 자연계 학생들은 이 중 2과목을 선택해야 합니다. 과목별로 선택한 학생 수와 난이도가 다르기 때문에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선 아예 성적표에 원점수를 표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난이도를 반영해 표준화시킨 표준점수 △자신의 표준점수보다 낮은 표준점수를 받은 응시생이 몇 퍼센트인지를 나타낸 백분위 점수 △9등급 중 몇 등급인지를 기재합니다. 실제로 2015학년도 수능 과학탐구에서 상위권 대학이 반영하는 과목별 백분위 점수를 보면 물리Ⅱ·화학Ⅱ·지구과학Ⅱ는 99점이지만 생명과학Ⅱ는 100점입니다. 똑같이 수능 문제를 다 맞힌 학생이라도 어떤 과목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실제 대학에서 반영하는 백분위 점수가 1점이나 차이가 날 수 있는 것입니다. 백분위 점수도 대학이 만든 기준에 따라 변환되긴 하지만 소수점 이하 넷째 자리까지 보는 연세대 입시에서 이 정도는 당락을 결정하는 차이죠.
하지만 연세대 정시에서 떨어진 수능 만점자들이 지원한 대학에 다 떨어지고 재수를 해야 하는 상황일까요? 입시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연세대 의대는 매년 추가 합격자가 10명쯤 발생하기 때문에, 수능 만점자 3명은 모두 연세대 의대에 추가합격되거나 서울대 의대 등 다른 대학에 합격했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서울대가 15일 발표한 정시 합격자에도 수능 만점자 15명이 모두 포함됐다고 합니다. 유성룡 1318대학진학연구소 소장은 “올해 수능 만점자 학생들(자연계 21명, 인문계 8명)은 전부 대학에 합격할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수능 만점자 정시 불합격’ 때문에 ‘쉬운 수능’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우려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한 경제지는 사설에서 ‘만점자조차 대입 탈락 물수능 이대론 안 된다’는 제목을 뽑기도 했는데요. 사실 쉬운 수능도 상위권 변별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수능 문제를 쉽게 내 평균점수는 높게 나오도록 하되, 상위권 변별력을 위해 소수의 어려운 문제를 적절히 내 만점자를 1% 내로 유지하는 것이죠.
학벌사회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쉬운 수능’을 옹호하는 이유는 쉬운 수능이 ‘수능 절대평가’와 ‘대학 서열화 완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면 사정상 거칠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지만, 수능을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지적 수준이 되는지만 평가하는 자격고사로 바꿔가자는 것이죠. 그런 다음 대학이 학생을 성적순으로 선발하는 것이 아니라 계층과 지역을 안배해 선발해야 학벌사회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청사진을 이들은 갖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변화는 직업별 소득 격차가 지금보다 줄어드는 노동조건의 근본적인 변혁이 뒷받침돼야겠죠.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우리가 꾸는 ‘시험 꿈’은 정신적 압박에 놓였을 때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무의식의 작용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내일을 두려워하지 말라, 졸업시험 전에 네가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한번 생각해봐라, 네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지금 박사 아니냐 등이 (시험 꿈의) 실제 의미이다.”(5장 4편 3절) 시험 꿈이 위로하는 효과가 있다지만, 우리 사회가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식은땀 쏙 빼는 시험 꿈을 덜 꿀 수 있게 된다면 더 좋지 않을까요?
김지훈 사회정책부 기자 watchdog@hani.co.kr
김지훈 사회정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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