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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세월호 1년…“민방위훈련 하듯 ‘5분 안전교육’ 하면 사고 안 나나요”

등록 2015-04-13 21:09수정 2015-04-14 13:24

[세월호 1년 ② 반성과 점검]
교육현장 가 보니
아이들 얼굴에 따분한 기색이 역력하다. 교실 앞 텔레비전에선 불이 났을 때 안전하게 탈출하는 요령을 담은 영상이 흐르지만 아이들의 눈길을 잡아두긴 어렵다. 경기도의 ㄴ초등학교 교실에서 매일 아침 9시면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를 지켜보는 6학년 담임 김아무개(36) 교사의 속내는 착잡하다. “아이들은 교육 내용을 기억도 못하는데, 매일 그런 방식으로 주입해야 하나 싶지요.” 경기도교육청은 3월부터 유치원·초·중·고교에서 매일 아침이나 종례시간을 이용해 ‘5분 안전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교들은 교육청에서 제공한 동영상을 틀어주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사후 대책으로 매일 실시
“아이들이 질서 안지켜서
난 사고 아닌데 억지같아”
일선 교사들 대부분 회의적

체험학습도 꺼리는 모습
“뒷산 가는 것도 부담돼”

학교 안전교육 강화는 세월호 참사가 터진 뒤 교육부와 전국 시·도교육청이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내놓은 사후 대책의 핵심이다. 교육부는 기존 아동복지법에 따라 한해 44시간의 안전교육을 받도록 한 것을 51시간으로 늘리고, 2018년까지 독립된 안전 교과 또는 단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지난해 11월 밝혔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가 가장 많은 안산 단원고의 관할 교육청인 경기도교육청은 ‘5분 매일 교육’으로 안전교육 의지를 더했다. 그러나 교사들 대부분은 이런 방침에 회의적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참교육연구소가 3월 유·초·중·고교에서 근무하는 조합원 1169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안전교육 강화가 학교현장 변화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69.2%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정아무개(41) 교사는 “아이들이 질서를 안 지켜서 사고가 난 것이 아닌데 억지로 안전교육 수업시수만 늘렸다. 결국 교육부와 교육청이 안전교육을 했다는 증거만 남기려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제한된 인력에 규제만 늘어 수학여행 등 체험학습이 위축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지역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윤아무개(32) 교사는 “체험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이젠 동네 뒷산 가는 것도 부담될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참사 이후 교육부는 수학여행을 갈 때 학생 50명에 한 명꼴로 응급구조 자격을 갖춘 안전요원이 함께 따라가도록 지침을 내렸다. 윤 교사는 “구급요원 배치를 각 학교가 알아서 해야 하는데 소방서도 일손이 부족해 수학여행이 한달 넘게 미뤄졌다. 계획이 틀어지면 위험도 증가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학교들도 체험학습을 꺼리는 분위기다. 13일까지 서울시교육청에 2015년 소규모 테마형교육여행 계획을 낸 학교는 전체 1350여곳 가운데 464곳(34%) 뿐이다. 2014년에 1202곳이 계획을 제출한 전례와 비교된다. 서울지역 중학교의 이아무개(36) 교사는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부담이 학교에 전가돼 피로도가 늘자 수학여행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학교현장의 푸념만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학교 안전사고가 오히려 늘었다. 정부의 안전 대책이 실제 효과를 내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교육부의 ‘학교 안전사고 현황’을 보면, 학교 안팎의 안전사고는 2013년 10만5천여건에서 2014년 11만6천여건으로 증가했다. 김아무개(36) 교사는 “피부에 와닿는 안전교육을 하려면 세월호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부터 돌아봐야 하는데 민방위훈련하듯이 동영상을 틀어주는 게 대부분”이라며 “여기에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끊이지 않자 학교장과 학부모들이 참사 1주년 계기교육을 하는 것마저 눈치를 보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는 청소년을 위한 재난 안전교육에 ‘당사자’의 경험을 반영하는 게 흐름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세이브더칠드런 일본지부는 대지진 피해 청소년이 구술한 경험을 바탕으로 안전 교재를 만들고 이 교재를 지진·해일이 잦은 필리핀·인도네시아 학생들한테 적용했다.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은 “지난달 일본에서 열린 세계재난위험경감총회에서도 캄보디아 등 재난 피해를 당한 청소년들이 모여 직접 발언하며 경험을 나눴다. 국제사회에서는 어른이 지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지키는 눈높이 교육으로 아동 안전교육의 관점을 전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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