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역사단체와 현장 교사들이 <초등학교 사회(역사) 실험본 교과서>를 분석한 적이 있다. 2016년 초등학교 6학년이 1학기에 배울 교과서로, 전국 40여개 학교의 수업에 시범 사용됐다. 176쪽짜리 교과서에서 목차와 색인을 빼면 170쪽이다. 역사단체와 교사들이 이 교과서에서 발견한 오류는 무려 350개로, 평균 1쪽에 2개가 넘는다. 현재 초·중·고 역사 교과서 가운데 유일하게 ‘국정’으로 발행된 교과서의 실상을 드러낸다.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장은 3일 “국정 교과서 제도와 좋은 교과서는 형용모순”이라며 “국정 교과서는 최상의 집필진을 구성하기 어렵고 내용과 절차가 정치적 흥정과 타협의 결과물이 될 수밖에 없어, 국정 교과서와 오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짚었다. 국정 제도는 오류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는 얘기다.
개발 과정의 ‘비밀주의’는 국정 교과서의 본질인데, 이 비밀주의가 오류의 발견과 수정 가능성을 제한한다. 국정 교과서는 국가의 권위를 담은 일종의 정사로 취급된다. 이 때문에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이 국정 교과서에 영향을 끼치려 든다. 굳이 이념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특정 문중 같은 이해집단까지 교과서 집필 과정에 자기네 주장을 반영하려 애쓴다. 교과서 내용을 둘러싸고 학계와 시민단체의 거센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도 높다.
교육부와 편찬자들은 이런 ‘잡음’을 의식해 완성본이 나올 때까지 공개 범위를 극히 제한하게 된다. 교과서 원고나 심의본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엄격히 관리하려는 까닭이다. 심지어 초등 사회 실험본 교과서는, 전국 16개 학교에서 2000여명의 학생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데도, 교육부는 이를 외부로 공개하지 않으려 했다. 김 소장은 “국정 교과서를 국가 기밀 다루듯 하는 행태와 편찬팀 내부에서 모든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작업 시스템 탓에 많은 오류가 발생했다”고 짚었다.
국정 교과서는 ‘전문성이 취약한 시스템’이라 오류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최고의 전문가들이 최상의 교과서를 만들 수 있다는 정부 주장과는 달리, 선례에 비춰볼 때 집필진의 ‘역사학 전문성’에 문제가 많았다는 것이다. 초등 실험본 사회 교과서에서도 연구진이나 심의진의 전문성 부족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실험본 교과서의 서지사항에 소개된 심의진 명단을 살펴보면, 심의위원장인 서울교대 교수를 포함해 교대 교수가 다섯인데, 서울, 광주, 청주, 전주교대 교수다. 책임 집필자는 부산교대 교수다. 초등학교라고 소속을 밝힌 심의진은 8명으로 서울 2, 경기 2, 울산· 전남·충북·강원 1명씩이다. 역사학 또는 역사교육 전공자의 소속 지역은 서울, 부산, 전남, 대구 각 1명이다. 심의진을 심의 능력보다 지역과 직위에 따라 적절하게 배분해 꾸렸으리라는 지적이 많은 배경이다. 김 소장은 “200만명이 사용할 교과서의 심의진을 심의 능력 외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선임하는 일, 그것이 바로 국정 교과서가 떠안아야 할 부담”이라고 설명했다.
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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