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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국정교과서, 아베가 웃는다

등록 2015-10-13 19:37수정 2015-10-14 17:27

한 시민이 13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전환을 발표한 정부를 비판하는 손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시민이 13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전환을 발표한 정부를 비판하는 손팻말을 들고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정부 ‘자학사관’ 문제삼아
교과서 개입 노골화
국민반대 의식 검정제 손 못대

“박대통령의 자충수
일 역사왜곡 비판자격 잃어”
“역시 한국은 제멋대로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국가구나, 그런 인식이 일본 사회에 확산되지 않을까요?”

오랫동안 일본의 교과서에 대한 정부 개입 반대운동에 참여해온 퇴직 고교 교사 스즈키 도시오(66)는 한국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결정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의 말대로 일본의 언론들은 한-일 간에 독도나 위안부 문제 등 첨예한 역사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이런 내용을 철저히 가르치는 한국 학교의 현장을 소개하며 “한국인의 반일 감정은 이런 반일 교육 탓”이라는 시각을 제시해왔다. 스즈키는 “그럴 때마다 ‘예전엔 한국이 교과서 국정제를 택했지만 지금은 일본과 같은 검정제로 바뀌었다’고 반론해 왔지만 이젠 그러지 못하게 됐다. 한국이 시대에 역행하는 국정제로 돌아갔으니, ‘한국은 역시 그런 국가’라는 일본 우익들의 선전 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국정화 전환 결정에 대해 한·일 양국의 시민사회에선 동아시아 역사 왜곡의 주범으로 비판받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하지 못할 최악의 선택을 했다는 비난이 확산되고 있다.

현재 한·일 두 나라 보수 정권이 자국 역사 교과서에 대해 보이고 있는 근본적 태도는 대동소이하다. 일본 자민당의 교육재생실행본부는 2013년 6월 ‘교과서 검정방식 특별부회’의 보고서에서 “아직도 많은 교과서에 자학사관에 근거한 문제가 되는 기술이 존재한다”고 밝혔고, 한국 교육부는 12일 국정화 전환을 밝히는 보도자료에서 “역사 교과서의 경우 끊임없는 사실 오류 및 편향성 논란이 제기돼 왔다”고 지적했다. 양국 모두 현재 자국의 역사 교과서에 대해 ‘자학적’이며 ‘편향적’이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해 이를 고쳐야 한다는 공통 인식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실제 양국의 개입 방식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노골적으로 국정제 회귀를 선택한 한국과 달리 일본의 개입은 좀더 은밀하고 우회적이다. 일본에서 교과서 국정화가 처음 결정된 것은 러-일 전쟁(1904~1905) 직전인 1903년부터다. 이후 일본 소학교 교과서는 전쟁에 나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잃은 ‘육탄 3용사’ 등 다양한 전쟁 미담을 실어, 학생들을 일왕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지는 군국소년으로 키워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일본에선 1948년 검정제가 도입된 뒤 국가가 교과서를 통해 국민들의 생각을 통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게 된다. 다와라 요시후미 ‘아이들과 교과서 전국네트워크21’ 사무국장은 “1962년 교과서의 무료 배포를 시작하는 것을 계기로 자민당 내부에서 국정화 요구가 나왔지만 실현되지 못했고, 교육재생실행본부에서도 그런 목소리가 있었지만 채택되지 못했다. 일본 국민들이 이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때문에 아베 정권은 2012년 12월 집권 뒤 학습지도요령 해설서 등 교과서 집필 관련 기준을 바꾸거나 우익 교과서의 채택률을 높이는 등 여러 간접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로 인해 내년부터 사용되는 중학교 교과서엔 “독도는 일본의 영토이다. 한국에 의해 불법 점거되어 있다”는 등의 기술이 포함되는 등 전체적인 역사 서술이 크게 후퇴했다. 이와 함께 우익 교과서인 ‘이쿠호사’ 교과서의 채택률은 4년 전 4%에서 올해 6.2%(역사)로 높아졌다.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전환 발표가 이뤄진 12일 오후 대학생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전환 발표가 이뤄진 12일 오후 대학생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박근혜 정부의 한국사 국정화 결정은 그동안 세계 무대에서 힘들여 쌓아 올린 한국의 국격에도 큰 상처를 입힐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특위’ 위원장은 “유엔(UN)마저 2013년 제68회 총회에서 다양한 교과서로 역사교육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역사교육 지침’을 밝혔는데 박 정부는 끝내 역사의 시계를 과거로 되돌렸다. 국제사회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세계의 교과서 제도를 연구해온 방지원 신라대 교수의 연구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17개국이 자유발행제, 4개국이 인정제, 13개국이 검정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 교수는 “세계에서 국정제를 근간으로 교과서를 발행하는 나라는 북한과 방글라데시 및 일부 이슬람 국가 정도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사 국정화가 한국 사회 내부의 이념 논쟁을 넘어 한-일 관계 전반에도 장기적으로 큰 부담을 안길 수 있다. 이신철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교수는 “그동안 한국의 시민사회가 일본 교과서에 대한 국가 개입을 비판해 왔는데 이번 일로 비판의 근거가 크게 상실될 위기에 놓였다. 양국에서 국가주의적인 역사 기술이 강화되면 역사 기술은 점점 더 나빠지고 동아시아 평화에 걸림돌이 된다”고 말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전정윤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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