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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정권 정당성 위기 때마다 국가홍보 도구로 전락

등록 2015-10-20 20:02수정 2015-10-21 11:02

손에 촛불을 든 시민과 청소년들이 17일 저녁 서울 중구 태평로1가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막는 국민 촛불대회’에서 정부의 일방 강행을 규탄하는 자유 발언을 듣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손에 촛불을 든 시민과 청소년들이 17일 저녁 서울 중구 태평로1가 서울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막는 국민 촛불대회’에서 정부의 일방 강행을 규탄하는 자유 발언을 듣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국정교과서를 말한다 (상) 한국 역사 교과서의 역사
김한종(한국교원대학교 교수·역사교육)
학계와 교육계의 지속적 반대와 사회적 우려에도 박근혜 정부는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동안 주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던 교육부도, 일부 반대하는 사람이 있던 여당도, 학술연구기관을 자처하던 국사편찬위원회도 이제 한목소리로 국정 역사교과서를 ‘올바른 역사교과서’라고 치켜세운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를 읽은 듯하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려고 하는 것일까? 과거의 경험에서 이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국정 역사교과서의 역사를 되돌아보도록 하자.

한국 강제 합병한 조선총독부
초등용은 국정, 중등용은 검정
말기 이르며 국정으로 일원화
국정 재등장한 때는 박정희 정부

유신·새마을·수출증대 등 홍보
‘시련과 극복’ 별도교재 보급해
“삼별초는 무인 기백” 재해석
사회·세계사 교과서도 국정화

80년대 민주화 이후 거센 비판
2011년 한국사 ‘검정’으로 전환
MB정부에서 보수일부 “좌편향”
박근혜 정부 들어 노골적 간섭

일제하 국정 역사교과서 발행

한국에서 국정 교과서가 처음 발행된 것은 일제의 식민지배가 시작되면서였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교육이 시작되면서 학부에서 몇 종의 역사교과서를 펴낸 적은 있지만, 당시에는 교과서 제도가 없었으며, 학부에서 발행한 교과서를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일본은 한국을 강제 병합한 이후, 초등학교 교과서는 조선총독부가 발행했고 중등학교 교과서는 일본의 검정 교과서나 조선총독부가 직접 검정을 한 교과서를 사용했다. 초등학교는 국정, 중등학교는 검정이었던 셈이다. 초등학교 국사교과서는, 신화에 나오는 일본의 건국 정신을 강조하고 천황의 가계를 신성시했으며 일본의 침략전쟁을 합리화했다. 이런 관점으로 역사교과서 내용을 일원화하기 위해 일제 말에는 중등학교 교과서도 국정으로 전환했다.

1942년 3월 조선총독부는 <중등국사>(저학년용)를 발행했다. 이 책은 천황을 사실상 신으로 떠받들고 일본의 건국 정신을 강조했으며, 침략전쟁을 대동아전쟁이라고 미화했다. 불과 몇 달 전에 일어난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이나 싱가포르 점령을 상세히 서술하기도 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조선총독부는 <중등국사>를 <황국사>로 대치하고자 하였지만, 학제의 축소와 전쟁 확대로 인한 재정 문제 등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박정희 정부의 국정 역사교과서 발행

1945년 독립을 하면서 일제하에서 만들어진 역사교과서는 자연히 폐지됐다. 역사교과서 국정제도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미군정이 초등과 중등용 <국사교본>을 발행하기는 했지만, 사용가능한 역사교과서가 없었기 때문에 급히 만든 임시교재였을 뿐이다.

국정 역사교과서가 다시 등장한 것은 1960년대 말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국사교육을 강화하면서, 점차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였다. 먼저 국정으로 발행된 것은 실업계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였다. 실업 교육은 당시 박정희 정부가 힘을 기울였던 분야였다. 국정 실업계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는 1968년 처음 발행되었으며, 1971년 개정되어 사용되었다. 이어 1972년에는 초등학교 5·6학년 국사교과서가 국정으로 발행되었다. 초등학교에서는 이전에 한국사 내용이 사회교과서 속에 들어가 있었지만, 이때에 이르러 별도의 국사교과서를 펴냈다.

이들 국정 국사교과서에는 5·16을 합리화하는 등 박정희 정부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고 정책을 홍보하는 내용이 대폭 들어갔다. “파쟁과 혼란을 일소하고 공산 침략에서 국가와 민족을 건지기 위하여 일어난 것이 5·16 혁명이었다”, “제3공화국은 자주독립, 경제자립, 조국 근대화를 지향하여 다변 외교, 사회 쇄신, 봉건적 잔재의 타파, 문화 발달에 매진하는 한편, 경제 개발 5개년 완수에 총력을 기울였다”(실업계고 국사)라는 식이었다. 1973년 1학기부터 사용된 초등학교 국사교과서에는 벌써 ‘유신헌법과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항목을 두어 10월 유신과 유신헌법을 정당화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우리의 현실에 알맞는 민주 제도를 마련하고, 우리 민족의 과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중략) 이리하여 국민들의 지지로 10월 유신 헌법이 마련되었고, 밝은 내일을 위하여 힘찬 전진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10월 유신을 홍보하는 내용은 곧이어 실업계고 교과서에도 들어갔다.

이와 함께 당시 문교부는 <시련과 극복>이라는 중·고등학교 독본용 역사교과서를 보급했다. 이 책은 1·2부로 나뉘는데, 1부에서는 국난극복 정신과 민족 주체의식을 강조하고 1971년 국가비상사태 선언과 1972년 10월 유신을 정당화하고 새마을운동을 홍보했다. 2부는 ‘국난을 이겨 낸 겨레의 슬기’라는 제목으로 고조선부터 현대까지의 대외 항쟁사를 서술했다. 삼별초의 항쟁을 ‘고려 무인의 전통적 기백’으로 표현하는 등 무인 정신을 강조했으며, 끝부분에는 다시 5·16과 새마을운동, 10월 유신을 홍보했다.

1970년대 들어 박정희 정부는 본격적으로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 내용에 개입했다. 그 귀결점은 국정화였다. 문교부는 1973년 유신 정신 반영, 새마을운동과 수출 증대 보강, 급변하는 국제사회에의 적응, 국사교육 강화 등의 방향으로 교과서를 개편하라는 지시를 했다. 수정 지시가 너무 광범위하지만 거부할 수 없었던 출판사들은 이를 받아들여 검정 교과서를 한 종류로 통일해 수정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단일본 검정 교과서 편찬 작업에 들어갔다. 정부의 요구대로 교과서 내용을 써서 단일본으로 발행하고자 한 것이므로 국정 교과서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럼에도 박정희 정부는 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해 1974년 1학기부터 사용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아직 개정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국정 국사교과서는 정부 시책의 홍보뿐 아니라 학계의 통설이 아닌 특정 해석을 싣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역사적 사실의 설명에서 차이가 있는 등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문교부와 국정 교과서를 발행하는 검인정교과서협회 사이의 유착관계도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박정희 정부는 ‘국정’이라는 말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고 비판을 완화하려 이름을 ‘1종’으로 바꾸었다. 1종은 문교부가 교과서를 발행하되 전문연구기관이 펴내는 도서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국가가 직접 펴내는 단일한 교과서라는 점에서 국정 도서였다. 실제 교과서 편찬의 실무작업도 정부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맡았다. 이번에 국사편찬위원회가 국정 한국사 교과서의 발행을 주관하는 전례가 된 것이다.

주목할 점은 1979년에는 국사교과서뿐 아니라 중학교 사회와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도 국정으로 발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모든 역사교과서가 국정이 되었다. 세계사 교과서에도 어김없이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는 내용이 들어갔다. 세계사 내용을 담은 중학교 <사회2>의 끝부분에는 ‘우리의 나아갈 길’이라는 단원을 두어 “10월 유신을 단행하고 민족의 활로를 찾기 위한 새마을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서술했다. 이 서술은 전두환 정부가 들어선 다음에는 “경제발전과 자주국방을 바탕으로 한 평화통일의 민족적 과업의 달성을 위하여, 민주·정의·복지 사회를 지향하는 제5공화국을 출범시켰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가 추진되면서 국정 국사교과서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이후 교과서가 개정되면서 노골적으로 정부를 홍보하는 내용이 일부 바뀌었다. 그러나 지배층 위주의 역사 서술, 특정 계층의 역사 해석 반영, 사회주의계 민족운동 배제, 지나친 반공주의에 입각한 역사 서술 등에 대한 비판도 계속되었다.

검정 역사교과서의 등장과 국정화 재추진

김한종(한국교원대학교 교수·역사교육)
김한종(한국교원대학교 교수·역사교육)
역사교과서의 이런 성격은 검정 교과서가 발행되면서 비로소 달라졌다. 필수과목인 ‘국사’ 교과서는 여전히 국정이었지만, 2003년부터 고등학교 선택 과목인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검정으로 발행됐다. 근현대사 내용이 이전 국사교과서보다 훨씬 자세한데다, 국가가 아닌 민간 출판사에서 여러 학자와 교사들이 참여해 펴낸 교과서의 관점과 역사인식은 이전 국정 국사교과서와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자 사회 일부의 보수세력은 검정 역사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고 공격하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교육부도 이러한 비판에 가세했다. 그러나 교과서의 검정화는 사회의 흐름이었다.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2011년부터는 그동안 국정으로 남아 있던 고등학교 국어, 한국사, 도덕 교과서가 모두 검정이 되었다. 그러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이들의 불만은 한국사 교과서로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도 이들의 비판을 받아들여 출판사에 수정을 지시하고 압력을 가했다. 여기에 굴복한 출판사는 교과서 내용을 지시대로 고쳤다. 그러나 저자들이 수정 지시를 취소하라는 소송을 내며 강하게 반발하는 등 사회적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이런 과정에서 만족할 만큼 검정 역사교과서 내용을 고치지 못하고 수정의 어려움을 느낀 정부는 아예 교과서 발행 자체의 국정화를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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