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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국정화가 필요한 시기? 1930년대 나치와 일제가 그랬다

등록 2015-10-21 19:46수정 2015-10-22 10:54

국정교과서를 말한다 (하) 일본과 독일의 국정 역사 교과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에 대한 반대가 거세자,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영원히 국정으로 하자는 것이 아니며 바람직한 것은 자유발행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바꾸어 보면 “그렇지만 지금은 국정이 필요한 시기”라는 주장일 것이다. 그렇다면 ‘국정이 필요한 시기’는 어떤 시기였을까? 지난날의 경험에서 찾아보자. 이미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른바 선진국 중에서 국정제를 경험한 나라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그 사례를 찾는 것도 쉽지는 않다. 그나마 일본과 독일에서 국정제가 시행된 때가 있는 정도다.

일본의 교과서 국정화

한국의 근대 학교나 교과서 제도는 일본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 일본에서 국정제가 처음 시행된 것은 1904년이었다. 근대 교육이 시작된 후 일본에서는 교과서 발행과 사용에 별다른 제한 조치가 없었다. 그러나 서구의 자유주의 사상이 들어오고 민권 운동이 일어나자, 메이지 정부는 교과서 내용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교과서 신고제와 검정제가 차례로 시행되었다. 이어 초등학교 교과서 제작은 적어도 국가의 비용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초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런 목소리는 이윽고 국정제 주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아서 주저하던 문부성은 1902년 일어난 일련의 ‘교과서 의혹 사건’을 구실로 국정제를 시행했다. 교과서 의혹 사건이란, 교과서에 천황(일왕)을 모독하는 내용이 들어있다거나, 성풍속을 어지럽히는 내용이 들어 있으며, 채택 과정에서 뇌물이 오갔다는 것이었다. 메이지 정부는 기존의 검정 제도로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다는 방향으로 여론을 몰고 가면서 국정제를 도입했다.

이렇게 발행된 국정 교과서는 천황을 떠받들고 국민들로 하여금 대일본제국과 천황의 충성스러운 신민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때 국정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정된 것이었다. 중등학교 교과서에 대한 통제도 강화되었지만 여전히 검정도서로 발행되었으며, 국정제로 전환하자는 논의도 없었다. 역사 교과서는 오늘날의 교육과정에 해당하는 ‘교수요목’에 의거하여 역사학자들이 집필하고, 도서감수관의 심사를 받았다. 이 때문에 장·절 구성이 거의 비슷하며, 일본사를 바라보는 전체적인 관점의 차이도 없었다.

이러한 교과서 제도의 기본적 틀은 패전 때까지 유지되었다. 그렇지만 전쟁이 본격화되고 국민총동원 체제로 접어들기 시작한 193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 문부성은 직접 학교 교육의 교재를 제작하였다. 1937년 5월에는 <국체의 본의>, 같은 해 7월에는 <신민의 길>을 간행하여 학교와 사회에 보급했다. 일종의 독본용 국정 교과서인 셈이었다. 태평양 전쟁이 한참 진행 중이던 1943년에는 일본사를 정리한 <국사개설>과 세계사 교과서인 <중등역사>를 펴내기도 했다. 세계사를 내용으로 하는 <중등역사> 이외의 다른 책들은 군국주의적 성격이 뚜렷했다. 최고 통치자인 천황을 신과 같은 존재로 떠받들고 침략 정책을 정당화하였다. 중등학교 검정 교과서에서도 황국신민의 정신이 더 강화되었다.

패전 이후 국정제는 폐지되고 초등학교 교과서도 검정제로 돌아갔다. 이전에 사용되던 교과서들도 모두 폐기되었다. 국정제와 이에 따라 만들어진 교과서는 군국주의 정책의 산물로 나온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군국주의 일본은 1930년대
직접 교재를 제작해
침략전쟁을 정당화했고
독일 히틀러는 집권하자마자
국정도서를 개발했다
자신의 이념을 담는 수단으로

이들이 국정제를 추진한 건
사회분쟁이 심한 때가 아니었다
특정집단이 권력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시기였다
자신의 이념을 사회에 전파하고
권력을 굳건히 하기 위해

나치 독일의 교과서 국정 교과서

독일은 유럽 국가들 중에서는 학교 교육과 교과서에 대한 중앙 통제가 가장 강한 나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근대 이전 독일 교육에는 교회가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근대 교육이 틀을 잡으면서 국가가 교육권을 장악했다. 독일 제국은 검정제를 시행하여 교과서 구성과 내용에 직접 개입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성립한 바이마르 공화국은 사회제도의 민주화를 추진했다. 헌법은 교재 발행의 자유를 규정했다. 그러나 새로운 교과서들이 금방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검정으로 발행된 기존 교과서들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집권을 한 히틀러의 나치 정권에게 이런 정도의 교과서는 못마땅한 것이었다. 히틀러는 집권을 하자 곧바로 교과서 통제를 강화했다. 나치 정권은 자신의 이념을 담고 권력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교과서를 만들어 학교에서 가르치도록 했다. 모든 과목에 걸쳐 국정 도서가 개발되었다. 이 중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독본과 역사교과서였다. 학생들이 글을 배우는 독본 교과서로 1939년 <영원한 민족>을 만들었다. 이 책은 게르만족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다른 민족을 배척하는 인종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히틀러를 우상화하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나치는 역사가 인간을 만든다고 생각하여 역사교육에 힘을 쏟았다. 1940년대 나온 <영원한 길>과 <제국주의로의 길>은 나치정권의 역사관을 잘 보여주는 국정 교과서였다. 독일사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한 <제국주의로의 길>은 대표적인 역사교과서로 꼽힌다. 이 책은 당시 독일, 즉 나치 독일의 국가사회주의를 최고의 인간 발달 단계로 여기고, 독일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런 국가로 성장했는지 서술하였다. 지난날의 반성 없이 현재 사회를 발전의 관점에서만 보고, 이런 과정만을 서술해야 한다는 ‘긍정의 역사관’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의 교과서 제도는 검정제로 다시 바뀌었다. 동·서독으로 분단이 되고 냉전의 한복판에 놓였지만 국정제 논의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근래에 들어서는 검정 절차도 갈수록 완화되어 자유로운 교과서 발행의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외국 사례로 본 국정제의 목적

독일과 일본에서 국정제가 시행한 것은 파시즘이나 군국주의 정부였다. 그밖의 선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국정제를 시행하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황우여 장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그리스나 터키가 국정제를 시행하는 것은 민족분쟁과 종교분쟁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도 여기에 해당한다는 주장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과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이 국가가 교과서 국정제를 추진한 것은 사회적 분쟁이 심한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특정 집단이 권력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들이 자신의 이념을 사회에 전파하고 권력을 굳건히 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국정제였다. 그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 국가에 대한 충성과 사회 통합이었다.

북한은 해방 직후인 1945년 11월 국어, 역사, 지리를 비롯한 여러 과목 교과서 편찬을 시작했다. 교육국이 발행하는 국정제였으며, 교과서 내용의 정치성을 심의하는 과정이 포함되었다. 이후 교과서는 계속 국정으로 발행되었으며, 제도의 개편도 논의되지 않았다. 국정 교과서는 북한 주민을 이념적으로 하나로 통합하는 도구가 되었다.

김한종(한국교원대학교 교수·역사교육)
김한종(한국교원대학교 교수·역사교육)
역사 교과서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일본이나 독일에서 국정제가 도입되는 과정은 우리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 추진과 비슷하다. 국정 도서는 정부의 정책을 관철시키는 통로이며, 국정제는 국가 권력의 성격을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여러 가지 이유를 붙이지만, 국정도서의 발행 동기는 비교적 명확하다.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교과서 국정제를 추진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정 교과서를 발행하는 것이다.

김한종(한국교원대학교 교수·역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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