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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1948년 건국’은 국격 스스로 걷어찬 꼴이다

등록 2015-11-08 22:18수정 2015-11-09 10:11

국정교과서 위험한 질주
① 1948년 대한민국 수립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으로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으로 기술된 역사 교과서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마치 국가가 아니라 정부단체가 조직된 것처럼 의미를 축소하는 반면, 북한은 ‘정권 수립’도 아닌 ‘국가 수립’으로 건국의 의미를 크게 부여해 오히려 북한에 국가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의미를 왜곡 전달하고 있습니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고시’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국정 교과서 편찬기준은 이달 말께 발표될 예정이지만,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기하는 건 학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미 교육부가 지난 9월 ‘2015 교육과정’ 고시 때 확정한 사안이다. 그런데도 이날 황 총리가 다시 이 문제를 꺼내들며 ‘1948년 8월15일 건국절’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자 교육부는 지난 6일 “국정 교과서에서 ‘건국절’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현행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규정이 없는 탓에 교과서에 건국절을 사용할 순 없다. 하지만 뉴라이트 세력들이 2000년대 들어 건국절 주장을 확대재생산하고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또한 광복절 축사(그래픽 참조)에서 ‘건국’을 언급하며, 사실상 건국절과 대한민국 수립은 ‘이음동의어’가 되어버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대한민국 정부 수립→대한민국 수립(건국절)’ 추진 일지
이명박·박근혜 정부 ‘대한민국 정부 수립→대한민국 수립(건국절)’ 추진 일지

헌법 가치와 충돌 우려
‘3·1운동으로 대한민국 건립하여…’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정 법통 계승’
제헌 헌법·현행 헌법 일관된 규정

이런 배경 때문에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대한민국 수립’이란 표현이, 북한 대신 남한이 계승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적 정통성’을 박근혜 정부 스스로 부정하는 조처로 ‘반헌법’ 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우선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보는 건 헌법 가치와 충돌할 우려가 높다. 1948년 제헌헌법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1919년)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했다고 명시했다. 현행 헌법 역시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돼 있다.

전 국사편찬위원장인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발표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글에서 “제헌헌법과 현행 헌법 모두 ‘3·1운동을 통해 독립을 선포했고, 그 독립의지로 건국된 것이 대한민국’이라고 밝히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대한민국 건국 후에 국가를 운용하기 위한 정부를 수립(조직)해야 하는데, 일제가 국토를 강점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안에 정부를 세울 수가 없었고, 그래서 해외에 정부를 세워 이를 임시정부라고 했으며, 이런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1948년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하고 정식 정부를 선포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근거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기록·사진에도 ‘건국 아닌 정부수립’
이승만, 1948년 제헌국회 축사서
‘임정 계승, 대한민국 30년’ 밝혀
8월15일 ‘정부수립 축하식’ 펼침막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이 ‘국격 저하’에 해당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시정부의 법통은 북한이 아닌 남한이 이어받았다는 게 지금까지 일관된 현대사 서술의 관점이었다. 북한과 건국 연도를 맞춘다며 대한민국 수립을 1948년으로 하면, 남한이 계승한 자랑스러운 임시정부의 법통을 스스로 걷어차는 셈이 된다.

각종 역사적 기록과 사진들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증거한다. 뉴라이트 세력이 찬양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도 1948년 5월31일 제헌국회 개원식 축사에서 “이 국회에서 되는 정부는 기미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임시정부의 계승”이라고 밝히고, 연호를 ‘대한민국 30년’이라고 못박았다. 1948년 8월15일 당시 중앙청 앞엔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 축하식’이라는 펼침막이 내걸렸다. 같은 해 9월1일 새 정부에서 간행한 ‘관보 1호’에서도 발행일자를 ‘민국 30년 9월1일’이라고 밝혔다. 이후 모든 정부가 1948년 8월15일을 정부 수립일로 사용해왔다.

전문가들은 이런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대한민국 수립’을 고수하는 배경으로 친일에 가담했다가 독립 이후 건국 주도 세력으로 참여한 친일파와 그 후손들을 ‘건국 공로자’로 둔갑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를 의심한다. 건국절 주장 속에는 현재의 대한민국은 독립운동의 결과가 아니라는 해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1948년 건국절’ 주장 의도는…
좌우투쟁속 반공국가 탄생에 의의
친일파·후손들 ‘건국 공로자’ 둔갑
독립운동 평가절하, ‘테러활동’ 폄훼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은 ‘뉴라이트 교과서의 친일문제 인식과 문제점’에서 “대한민국을 항일투쟁을 통해 성립한 자주독립국가로 상정하기보다, 1945년 8월15일 이후 3년간의 좌우투쟁 속에서 한반도의 반쪽이라도 지켜낸 반공국가이자 자본주의 국가의 탄생이라는 점에 건국의 근본 의의를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대한민국 건국은 일제에 맞서 싸운 항일운동의 역사와 관계가 없고 임시정부 의미도 빛이 바랜다. 과거 주도적으로 친일에 참여했더라도 해방 후 반공애국투사이자 건국 공로자로 거듭날 수 있다.

이준식 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은 “건국절을 주창하는 이들 가운데 친일파의 후손들이 많으며, 2000년대 중후반 이후 <친일인명사전>이나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등에 대응해 건국절 주장이 나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반대로 남북 분단 정부를 반대한 김구, 김규식, 여운형 등의 독립운동가들은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된다. 뉴라이트의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는 역사학계가 ‘의열 투쟁’이라고 쓰는 김구 선생의 독립운동을 ‘테러 활동’으로 소개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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