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무엇이 문제인가/연쇄 기고]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지금의 국정화와 관련된 논의는 비정상이다. 교과서 편찬의 절차와 방법에 관한 논의에만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현 정권이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려 생각했다면 우선 국정화의 ‘절차와 방법’이 검인정의 그것보다 더 좋은지 아닌지를 국민에게 물었어야 옳다. 하지만 정부는 정도가 아닌 샛길을 택했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현 교과서는) 이념적 편향성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 많아 학생들에게 역사인식에 대한 혼란을 주고 나아가 국론 분열과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고 발언하고 나섰다. 현재의 검인정 교과서에 ‘좌편향된 교과서’라는 정치적 낙인을 찍고 국민들 사이 이념갈등을 부추기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절차와 방법의 논의로는 그들이 원하는 국정화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도달한 민주적 성장과 국민의 역사인식 수준에서 볼 때 국정화는 역사에 역행하는 길이다. 절차와 방법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내용적 다양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상식이다.
교과서 국정화는 정권 결정이니
국민들은 꼼짝 말고 가만히 있으란 것 아닌가
침몰하는 세월호처럼
우리 민주주의가 침몰하더라도…
역사교과서의 이념적 우편향 내지 학생들의 혼란이 국정화가 불러올 가장 큰 폐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정화가 야기할 수 있는 근본적인 폐해는 더 큰 민주주의의 틀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념갈등을 조장하든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하든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 행태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국정화 과정이 야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정권이 국민의 요구나 입장과 상관없이 마음만 먹으면 독재적 권력운용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정치적 실험의 효과’이다. 그러한 실험이 성공적이라고 판명이 나면, 정권은 비슷한 방법을 동원하여 점점 더 그들의 비뚤어진 권력운용의 역량을 키워나갈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겪을 고통은 아마 어떠한 언어로도 표현이 부족할 것이다.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집안의 소중한 물건이 강탈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처럼, 국민들은 권력의 횡포 속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패배주의와 무력감만 쌓아 갈 것이다.
‘가만히 있으라’고만 반복적으로 외치던 세월호의 방송이 떠오른다. 국정화는 ‘가만히 있으라’의 교과서 판이다. 교과서 국정화는 정권의 결정 혹은 명령이니 국민들은 꼼짝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 아닌가. 침몰하는 세월호처럼, 설령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없이 바닷속으로 침몰하더라도 말이다. 국정화의 진행 과정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현 정권이 아무런 자기 성찰과 반성도 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내준다. 물론 정부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각종 이념논쟁과 이해관계 속에 묻혀버렸던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처럼, 지금 국정화 논의에서도 좌우를 가르는 이념갈등 속에 우리는 무엇이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문제인지 헷갈리고 있다. 침몰하는 배를 눈앞에 두고 정녕 ‘가만히 있’고자 하는 것인가. 이미 사회에 불신과 패배주의가 가득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집중해서 구조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 간다면 정권에 의해 강요된 비민주적인 절차뿐 아니라, 단일 교과서를 통해 정권이 담고자 하는 일방적인 역사해석과 생각의 방식 속에 온 국민은 “가만히 있어야”만 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에 따르는 것은 독재로의 길을 눈 뜨고 바라보는 시작점일 수도 있다. 현 정권에서 이러한 ‘무리수’를 두는 것은 장기집권의 전망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아버지의 영예를 드높이고자 하는 ‘효녀’라고 해도, 겨우 몇년간 사용할 교과서를 위해서 국정화를 시도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앞서 국정화가 현 정권의 정치적 실험이라고 말했듯이, 박정희가 이러한 경험을 쌓아 ‘10월 유신’을 강행하였고 결국 독재의 끝닿은 곳까지 치달았던 역사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지금 겪고 있는 이 과정은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넘어 궁극적으로 우리가 지금까지 일궈온 민주주의의 파괴이자 독재의 서곡일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역사인식에서 이념논쟁은 중요하다. 하지만 국정화 논의에서는 치졸하고 비열한 이념갈등의 덫에 빠지지 말자. 편가르기식 선동은 바로 그들이 목적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우리는 교과서 국정화를 결정짓는 비민주적인 과정과 폭력적인 통치의 방식에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또한 교과서 편찬의 절차와 방법의 문제를 넘어서, 국정화 사태는 우리에게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과연 개인의 역사인식 내지 사상의 형성과 관련된 문제를 교육부라는 행정부서의 일방적인 결정권에 맡겨 두는 것이 옳은가. 자유롭고 다양하게 생각할 권리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다. 그러한 권리는 교육을 통해 보호되고 독려되어야 한다.<끝>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국민들은 꼼짝 말고 가만히 있으란 것 아닌가
침몰하는 세월호처럼
우리 민주주의가 침몰하더라도…
황교안 국무총리가 3일 오전 11시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와 관련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고 있다. 황 총리의 입장 발표가 끝난 뒤 교육부는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안을 고시한다. 김봉규 선임기자bong9@hani.co.kr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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