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제4기 저출산 고령사회위원회 3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보일 교사(배문고 국어교사)
[한겨레 사설] ‘보육대란’ 속에 내놓은 허망한 저출산 대책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10일 위원장인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회의를 열어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년)’을 확정했다. 2005년 위원회 출범 이후 대통령이 기본계획 심의를 직접 주재한 건 처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당장 피부로 체감하는 정부 정책에서 저출산 극복 의지가 보이지 않는데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게 무슨 의미인지 묻고 싶다.
박 대통령은 5살 이하 보육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며 누리과정(만 3~5살 무상보육) 지원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보육 문제는 출산을 고민하는 부부가 현실적으로 부닥치는 가장 큰 장애물로, 저출산 극복을 위한 핵심 과제의 하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집권 이후 대통령 공약인 누리과정 예산을 지방교육청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내년에도 또 ‘보육 대란’이 일어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국공립 어린이집은 1995년 전체의 11.3%에서 올해 5.7%로 떨어졌고 유치원도 공립에 들어가는 건 ‘로또’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새도시의 공립 유치원 설립을 오히려 축소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는 등 학부모 요구에 귀를 닫고 있다. 이처럼 사방에서 ‘아이 기르기 힘들다’는 한숨소리가 들리는데 어떻게 출산율이 높아지기를 기대할 수 있겠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그동안 내걸었던 ‘국가책임보육’에서 ‘일자리·주거 등 만혼·비혼 대책’으로 초점을 옮기겠다고 한다. 물론 후자도 중요하지만, 보육의 국가 책임을 희석시켜서는 안 된다. 누리과정을 둘러싼 당장의 혼란부터 정부가 정리하는 등 국가가 보육을 진심으로 지원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게 저출산 대책의 기본이다.
장기적인 만혼·비혼 대책에서도 정작 중요한 점이 강조되지 않고 있다. 그저 일자리 개수만 늘린다고 청년들이 일찍 결혼해 출산까지 할 것으로 기대하는 건 매우 단선적인 생각이다. 불안한 비정규직 일자리는 아무리 늘려봐야 소용없다. 또한 취업이 늦어지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1차 노동시장(대기업·정규직)과 2차 노동시장(중소기업·비정규직)의 격차다. 1차 시장 진입에 매달리기 때문인 것이다. 결국 어떻게 하면 그 격차를 줄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것인지가 핵심인데, 이번 기본계획은 물론 정부의 전반적인 노동정책 기조에서도 그 해답은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앙일보 사설] 저출산 대책 일부 진전 … 과감성 부족은 여전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계획(2016~2020년)이 확정됐다. 앞으로 5년 동안 200여 개 대책에 약 200조원을 들여 출산율을 1.5명(지난해 1.21명)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다. 1, 2차 계획보다 40~50개 가짓수를 줄여 선택과 집중을 하고 아이 양육 지원에서 혼인 장려로 방향을 튼 것은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10월 중순에 공개된 3차 계획 시안에서 보지 못했던 손에 잡히는 대책이 눈에 띄어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시안에서는 혼인을 촉진하기 위한 주거 대책으로 신혼부부 전세자금 2000만원 상향 조정을 제시했다가 조롱 섞인 비난을 샀다. 이번에는 신혼부부 전용 투룸형 행복주택 5만3000가구를 공급하고 서울 오류동, 하남·성남·과천 등지에 신혼부부 특화단지를 조성하는 방안을 내놨다.
그동안 저출산 대책은 ‘확대·상향·완화’ 등의 단어투성이였다. 기존 대책 확대판에 불과했다. 이번에 나온 신혼부부 특화단지는 발상의 전환으로 평가할 만하다. 수도권 4곳의 특화 지역에 공급되는 신혼부부 전용 주택이 4800가구에 불과해 양은 그리 많지 않지만 국가가 결혼을 적극 지원한다는 시그널을 주는 효과는 낼 수 있다. 일·가정 양립의 사각지대인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를 위한 대책도 눈여겨볼 만하다. 최초 육아휴직자가 생기는 중소기업 사업주에게 월 2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했으나 2017년부터 40만원으로 올리고, 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 중소기업 육아휴직자의 대체인력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긴 것도 잘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번 대책은 여전히 한계를 안고 있다. 신혼부부 특화단지 같은 창의적 발상이 다른 분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2020년부터 베이비부머(1955~63년 출생자)가 노인이 된다. 그때까지 5년은 인구 보너스 기간이다. 5년간 200조원을 쓴다고 해도 무상보육·기초연금·반값등록금 등 덩치 큰 대책을 빼면 새로 쓰는 게 34조원에 불과하다. 매년 6.5% 정도 늘어날 뿐이다. 37만 개의 청년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면서 이번에도 노동개혁과 연결했다. 446만 명에 이르는 경력 단절 여성의 국민연금 보험료 추후 납부를 허용하겠다고 했는데, 이 역시 개정안이 국회에서 행방불명 돼버린 상태여서 공허하게 들린다. 국회를 설득하고 국민 여론을 움직이려는 노력이 먼저다. 레토릭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10월 당정협의 때 새누리당이 학제 개편과 부모보험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이번 대책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를 실현하는 데 걸림돌이 많다는 비판을 받긴 했지만 이런 파격적인 대안도 논의 테이블에 올려놔야 한다. 20, 30대 젊은이들이 체감할 수 있는 과감한 대책이 아쉽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회의를 주재하면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을 보강하도록 지시했다. 매번 비슷한 사람이 모여 대책을 만드는 방식에서 탈피해 저출산을 극복한 선진국의 전문가를 초빙하는 것도 방안이다.
[추천 도서]
[키워드로 보는 사설] 다른 나라의 저출산 대책 선진국들은 1930년대부터 저출산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출산 장려 정책을 펴고 있다. 프랑스는 1919년부터 가족정책 위주의 출산 장려책을 펼쳐, 최근 5년간 연평균 1.89명의 비교적 높은 합계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2명 이상의 자녀를 둔 가정에 ‘가족수당’이 지급되고 있으며 3세 이하 자녀 또는 임신 5개월 이상 임산부가 있는 가정에는 ‘영유아 수당’을 준다. 프랑스는 혼외출산 아이를 차별하지 않는다. 2006년 혼인 부부의 출산과 혼외 출산을 구별하는 규정을 폐지했다. 미혼이어도 자녀를 양육하고 있다는 조건만 갖추면 직장 내 각종 수당과 휴가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프랑스의 합계출산율은 1993년 1.65명에서 2012년 2.01명까지 상승했다. 스웨덴은 1975년 여성에게만 적용되던 출산 휴직 제도를 남성도 자녀 양육 차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부모휴가법’을 제정했다. 육아 휴직도 남녀에 따른 우선권 적용 없이 부모가 평등하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프랑스·스웨덴 등은 일·가정 양립을 사회정책적으로 지원하고 공공 보육 기반을 구축해 저출산 국가에서 고출산 국가로 성공적으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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