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김미향
사회에디터석 사회정책팀 기자 aroma@hani.co.kr 안녕하세요. 저는 사회부에서 교육분야를 취재하는 김미향입니다. 가을날 ‘학교’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제가 초딩 땐, 가을이 되면 한 달 동안 수업 대신 운동회 연습에 매달렸습니다. 뜨겁던 가을 햇볕을 쬐며 먼지가 가득한 운동장에서 ‘꼭두각시’, ‘부채춤’, ‘소고춤’, ‘놋다리밟기’ 따위를 연습했습니다. 마칠 때쯤 다 같이 교가를 불렀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고 열심히 따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20여년이 흐른 뒤, 다시 초등학교 교가를 읽어봤던 건 순전히 ‘재미’ 때문이었습니다. 어른의 시각으로 다시 본 초등학교 교가는 무척 재밌더군요. 서울의 초등학교 누리집에 들어가 몇 개만 살펴봐도 마치 하나의 음악 장르처럼 너무도 비슷했습니다. ‘○○산 △△정기를 받아’, ‘꾹 참고 노력해서’, ‘대한의 일꾼 되자’는 식입니다. 졸업을 해도 취업이 어려운 요즘 같은 시대에 초등학교 교가들은 죄다 ‘일꾼’이 되자고 써 있더군요. 분석한 교가들의 절반은 하나같이 인근의 산 이름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산 이름으로 시작하는 게 뭐가 나쁘냐”는 질문이 나옵니다. 맞습니다. 산 이름으로 시작하는 건 문제가 아닌데요. 다 같이 산으로 시작한다면 문제입니다. ‘교가’, 말 그대로 학교의 노래라면 전국 6000여곳의 초등학교가 저마다의 노랫말을 갖는 게 자연스럽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의 교가는 학교마다 서로 약속한 듯 비슷합니다. 아이들의 개성을 살려주지 못하는 창의성 없는 교육, 아이들의 생각이 반영되지 않는 획일적인 교육이라는 비판이 떠오르는 지점입니다. 여기 한 학교가 있습니다. 올해 3월 서울 송파구에 개교한 혁신학교인데요. 재학생들의 공모를 통해 교가를 만들었습니다. 위례별초등학교는 올 1월 36명의 교사가 모여 ‘모두가 주인이 되는 행복한 자람터’라는 교육 목표로 문을 열었습니다. 학생들이 들어온 3월부턴 실천에 옮겼습니다. 학생이 주인인 학교에서 학생들이 직접 교가를 짓게 한 것입니다. 당시 300여명의 학생들에게 “우리 학교를 잘 나타내는 말을 글로 써보자”고 했답니다. 학생들이 저마다 낸 글짓기 작품 중 2학년 한 학생이 쓴 글이 교가의 뼈대 가사가 됐고, 다른 학생들의 글귀를 보태 최종 가사가 완성이 됐습니다. 딱히 한 사람의 작품이라 할 수 없어 작사가는 ‘위례별 가족’이라고 칭합니다. 이 학교 교가를 보면, ‘대한의 일꾼’이 되자거나 ‘새 나라를 건설하자’는 가사 대신 ‘우리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고 말합니다. ‘큰 꿈’이나 ‘높은 이상’을 가지라고 말하기보다, ‘조금씩 천천히 아름다운 꿈’을 가꾸자고 말합니다. 곡을 쓴 안민호 작곡가는 “큰 꿈을 꾸라고 말하는 다른 교가들을 보면, 아이들이 크면서 겪을 입시 경쟁부터 떠오른다. 조금씩, 천천히, 아름다운 꿈을 꾸자는 노랫말이 새롭고 소중하게 느껴졌고 곡도 그 의미에 어울리게 붙였다”고 전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세검정초등학교도 2년 전 ‘인성로고송’을 아예 새로 만들었습니다. 재학생 4~6학년을 대상으로 ‘협력’에 관한 노랫말을 짓게 한 뒤 교사들이 모아 다듬는 방식으로 완성한 것입니다. 음악 담당 교사가 아이들을 데리고 직접 음원을 녹음했고, 매일 학교에서 2교시가 끝난 뒤 쉬는 ‘중간 놀이시간’에 틀어주는 방식으로 일상의 노래가 됐습니다.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시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시민성’을 알아주자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직접 만들고 가꾸어갈 권리가 있는데, 학교에는 정해진 전통이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들이 많습니다. 교가도 그중 하나입니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은 ‘교복 입은 시민’이란 학생 자치활동 강화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학교에 관한 일들을 학생들 스스로 의논해 정하자는 것인데요. 조희연 교육감은 “요즘 학생들 중엔 ‘결정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많다. 학교에서 무조건 정하고 이에 따르는 식이니 그렇다. 학생은 한 인간으로 태어난 순간 시민으로 존중받으며 자율적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학생이 학교라는 공동체에 적극 참여해 학교가 민주주의 학습장이 되고, 학교도 학생들의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루 일과를 보내는 곳이 학교라면, 적어도 학교에 학생들의 생각이 반영된 것 하나쯤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관련기사]
▶‘21세기’ 초등학교 운동회에 ‘70년대식 교가’ 넘친다
▶리라초 교가 “공부 잘해 성적도 제일 높이 올리리라~
사회에디터석 사회정책팀 기자 aroma@hani.co.kr 안녕하세요. 저는 사회부에서 교육분야를 취재하는 김미향입니다. 가을날 ‘학교’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제가 초딩 땐, 가을이 되면 한 달 동안 수업 대신 운동회 연습에 매달렸습니다. 뜨겁던 가을 햇볕을 쬐며 먼지가 가득한 운동장에서 ‘꼭두각시’, ‘부채춤’, ‘소고춤’, ‘놋다리밟기’ 따위를 연습했습니다. 마칠 때쯤 다 같이 교가를 불렀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고 열심히 따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20여년이 흐른 뒤, 다시 초등학교 교가를 읽어봤던 건 순전히 ‘재미’ 때문이었습니다. 어른의 시각으로 다시 본 초등학교 교가는 무척 재밌더군요. 서울의 초등학교 누리집에 들어가 몇 개만 살펴봐도 마치 하나의 음악 장르처럼 너무도 비슷했습니다. ‘○○산 △△정기를 받아’, ‘꾹 참고 노력해서’, ‘대한의 일꾼 되자’는 식입니다. 졸업을 해도 취업이 어려운 요즘 같은 시대에 초등학교 교가들은 죄다 ‘일꾼’이 되자고 써 있더군요. 분석한 교가들의 절반은 하나같이 인근의 산 이름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산 이름으로 시작하는 게 뭐가 나쁘냐”는 질문이 나옵니다. 맞습니다. 산 이름으로 시작하는 건 문제가 아닌데요. 다 같이 산으로 시작한다면 문제입니다. ‘교가’, 말 그대로 학교의 노래라면 전국 6000여곳의 초등학교가 저마다의 노랫말을 갖는 게 자연스럽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의 교가는 학교마다 서로 약속한 듯 비슷합니다. 아이들의 개성을 살려주지 못하는 창의성 없는 교육, 아이들의 생각이 반영되지 않는 획일적인 교육이라는 비판이 떠오르는 지점입니다. 여기 한 학교가 있습니다. 올해 3월 서울 송파구에 개교한 혁신학교인데요. 재학생들의 공모를 통해 교가를 만들었습니다. 위례별초등학교는 올 1월 36명의 교사가 모여 ‘모두가 주인이 되는 행복한 자람터’라는 교육 목표로 문을 열었습니다. 학생들이 들어온 3월부턴 실천에 옮겼습니다. 학생이 주인인 학교에서 학생들이 직접 교가를 짓게 한 것입니다. 당시 300여명의 학생들에게 “우리 학교를 잘 나타내는 말을 글로 써보자”고 했답니다. 학생들이 저마다 낸 글짓기 작품 중 2학년 한 학생이 쓴 글이 교가의 뼈대 가사가 됐고, 다른 학생들의 글귀를 보태 최종 가사가 완성이 됐습니다. 딱히 한 사람의 작품이라 할 수 없어 작사가는 ‘위례별 가족’이라고 칭합니다. 이 학교 교가를 보면, ‘대한의 일꾼’이 되자거나 ‘새 나라를 건설하자’는 가사 대신 ‘우리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고 말합니다. ‘큰 꿈’이나 ‘높은 이상’을 가지라고 말하기보다, ‘조금씩 천천히 아름다운 꿈’을 가꾸자고 말합니다. 곡을 쓴 안민호 작곡가는 “큰 꿈을 꾸라고 말하는 다른 교가들을 보면, 아이들이 크면서 겪을 입시 경쟁부터 떠오른다. 조금씩, 천천히, 아름다운 꿈을 꾸자는 노랫말이 새롭고 소중하게 느껴졌고 곡도 그 의미에 어울리게 붙였다”고 전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세검정초등학교도 2년 전 ‘인성로고송’을 아예 새로 만들었습니다. 재학생 4~6학년을 대상으로 ‘협력’에 관한 노랫말을 짓게 한 뒤 교사들이 모아 다듬는 방식으로 완성한 것입니다. 음악 담당 교사가 아이들을 데리고 직접 음원을 녹음했고, 매일 학교에서 2교시가 끝난 뒤 쉬는 ‘중간 놀이시간’에 틀어주는 방식으로 일상의 노래가 됐습니다.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시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시민성’을 알아주자는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직접 만들고 가꾸어갈 권리가 있는데, 학교에는 정해진 전통이니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들이 많습니다. 교가도 그중 하나입니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은 ‘교복 입은 시민’이란 학생 자치활동 강화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21세기’ 초등학교 운동회에 ‘70년대식 교가’ 넘친다
▶리라초 교가 “공부 잘해 성적도 제일 높이 올리리라~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