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 교과서 현장검토본 공개를 하러 브리핑룸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박근혜 정부가 국정 역사교과서를 28일 기어이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국정 교과서는 그동안 역사학계와 교육계에서 우려했던 대로 뉴라이트 계열의 사관을 대폭 수용해 친일파 기술을 축소하고, 박정희 정부의 성과를 강조하는 등 편향성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국민들의 국정 교과서에 대한 반발이 더욱 커지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이 교과서가 내년 3월 학교 현장에 일괄 배포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한국이 검인정을 넘어 자유 교과서로 나아가는 세계적 추세를 거스르려 한 국가로 기록된 것은 분명하다.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 여러 종류의 역사교과서가 있지만 대부분이 편향된 이념에 따라 서술돼 있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하게 됐다”며, 중학교 <역사1> <역사2>와 고등학교 <한국사> 등 총 3권의 국정 교과서 현장검토본(시안 형태)을 공개했다. 정부는 12월23일까지 의견 수렴을 한 뒤 현장 적용 방식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공개된 국정 교과서를 보면 박정희 정부에 대해서는 산업화와 경제성장 쪽에 방점을 뒀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자세히 설명했고, 새마을 운동에 대해서도 “2013년 유네스코가 새마을 운동 관련 기록물을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했다”고 긍정적인 면을 최대한 부각했다. 5·16 쿠데타 세력이 내세운 6개 항목의 ‘혁명 공약’도 교과서에 담았다.
뉴라이트 등 보수 일각에서 꾸준히 주장해온 건국사관이 반영돼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정부’가 빠진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됐다. 친일파 기술 부분은 대폭 축소됐다. 중학교 <역사2>에는 친일파에 대한 내용은 10줄에 불과하고, 친일 인사도 이광수, 노천명, 최린 단 3명만 실명을 들었다. 고등학교 한국사에서는 ‘친일파’ 대신 ‘친일 인사’ ‘친일 세력’으로 기술했다. 이광수, 박영희, 최린, 윤치호, 한사룡, 박흥식 등을 언급했지만 기존 검정 교과서처럼 각자의 구체적인 친일 행위를 설명하는 대신 뭉뚱그려 “징병 권유, 친일 단체 좌담회 적극 참여” 등으로만 서술했다. 이날 교육부가 함께 공개한 집필진 31명엔 원로급 명예교수, 뉴라이트 계열 학회 회원, 역사 비전공자 등이 다수 포함됐다.
한상권 덕성여대 교수(사학)는 “이번 국정 교과서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쿠데타와 독재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뉴라이트 역사인식이 고스란히 담겼다”며 “내년 박정희 탄생 100주년을 위해 박근혜 정부가 ‘박정희 위인전’을 내놨다”고 비판했다.
이날 공개 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14곳이 불채택 방침을 밝혔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성명을 내어 “공개된 국정 교과서는 박정희 치적을 강조하는 ‘박근혜 교과서’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와 항일독립운동사를 축소시킨 ‘친일 독재 미화 교과서’”라며 “당장 폐기하라”고 밝혔다. 전국 484개 교육시민단체가 연대한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도 “국정 교과서도 박 대통령과 함께 탄핵받아야 한다”고 반발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