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지청천 선생의 외손자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이 29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 촉구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 28일 공개된 박근혜 정부의 국정 역사교과서가 친일독재 미화 논란과 사실관계 오류 등으로 2014년 채택률 0%대를 기록하며 사실상 교육현장에서 퇴출당한 교학사 <한국사>교과서보다도 박정희·이승만 정권에 대해 더 편향적인 기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가 29일 고등학교 <한국사>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과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2013년 8월30일 교육부 검정, 2014년 3월1일 초판 발행본)를 비교분석해보니, 국정교과서는 교학사 교과서보다도 박정희 정권에 대한 불리한 내용이 빠지거나 축소돼 실려있었다.
교학사 교과서는 324쪽에서 5·16 군사쿠데타를 서술하며 “대통령 윤보선은 쿠데타를 인정하였다. 육사 생도도 지지 시위를 하였다” 등 쿠데타를 긍정할만한 편향적 사실관계를 열거하면서도 “박정희를 중심으로 일부 군인들이 쿠데타를 단행하였다. 5·16 군사정변은 헌정을 중단시킨 쿠데타였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국정교과서는 5·16을 ‘군사정변’으로 표현하며 이에 대한 어떠한 평가도 담지 않았다. 국정교과서는 261쪽에서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일부 군인들이 정변을 일으켜 주요 인사들을 체포하고 방송국을 비롯한 주요 시설들을 장악하였다. 그들은 사회적 혼란과 장면 정부의 무능, 공산화 위협 등을 정변의 명분으로 내세웠다”라고만 기술했다. 5·16 쿠데타 직후 군복을 입고 중앙청 앞에 서 있는 박정희 당시 소장의 사진도 교학사 교과서에는 실려있으나, 국정교과서에는 이 사진 대신 서울 도심에 나타난 쿠데타 세력의 ‘탱크’ 사진을 담았다.
유신체제에 대해서도 교학사 교과서는 상대적으로 명확히 기술하고 있었다. 교학사 교과서는 “10월 유신은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해 주었다.(…) 이는 자유 민주주의 정도에서 벗어난 비상 체제인 동시에 독재였다”(325쪽)라고 서술했다. 하지만, 국정교과서는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한 독재체제였다”(265쪽)고 평가하는 데 그쳤다. 박정희 전 대통령 1인이 부각되는 ‘독재’란 표현 대신 사회구조를 뜻하는 ‘독재체제’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이승만 정권과 관련해 교학사 교과서는 ‘자유당 정부의 긴장 조성’이라는 제목 아래 이 전 대통령를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다가 폐간당한 <경향신문>과 조봉암 진보당 당수의 사형 사건을 ‘자유당 정부의 긴장 조성’이라는 제목 아래 비교적 자세히 설명(323쪽)하고 있지만, 국정교과서는 조봉암과 이승만과의 관계에 대한 설명 없이 단순히 “조봉암을 간첩 혐의로 사형에 처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신문을 탄압하였고…” 등으로 기술하는 데 그쳤다. 이병철, 정주영 회장 등을 구체적으로 소개한 서술은 국정교과서에만 담겼다.
교학사 교과서는 보수진영이 ‘역사교과서가 편향됐다’며 2013년 제작한 것으로 뉴라이트 성향의 학자들이 대표 집필한 교과서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교과서연구팀장은 “친일·박정희 미화 등 편향된 서술로 비판받는 국정교과서가 근현대사 일부 서술에 있어서 교학사 교과서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국정교과서가 그만큼 졸속으로 제작됐다는 뜻”이라며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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