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12월1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사회부총리, 외교·국방장관 등 주요 국무위원과 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철학박사)
[한겨레 사설] 탄핵 이후 국정, 내각 아닌 국회 주도로
18대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뒤 열린 10일의 제7차 촛불집회에도 전국적으로 100만명이 넘는 시민이 운집했다. 탄핵안이 이미 가결되었고 날씨가 어느 때보다 추웠으며 계속된 집회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라는 점을 참작하면, 230만명이 모였던 제6차 집회에 뒤지지 않을 만한 열기라고 할 수 있다. 시민의 바람이 단지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 한 사람을 끌어내리자는 데 머물지 않고, 이런 사태를 초래한 정치·검찰·재벌·교육·언론 등에 대한 총체적이고 철저한 개혁에 맞춰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탄핵 이후의 정국이 민심을 배반하는 방향으로 흐를 경우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와 결의의 표현이기도 하다.
10일의 집회에서는 다른 여타 구호보다도 대통령 직무대행을 맡은 황교안 총리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눈에 띄었다. 황 총리가 대통령의 혼용무도한 국정의 조력자이자 부역자였다는 점에서 민심의 당연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당장은 정해진 법 절차에 따라 황 총리가 불가피하게 직무대행을 이어받았지만, 그와 그가 이끄는 내각도 대통령 탄핵과 함께 ‘정치적 탄핵’을 받았다. 황 총리가 얼마나 대행 노릇을 할지 모르지만 이런 준엄한 역사적 평가를 직시하는 것이 출발점이 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안보와 경제도 중요하지만 황 총리가 대행의 첫 업무를 ‘반성과 사죄’가 아니라 현안 챙기기로부터 시작한 것은 염치없는 짓이다. 내각의 일원 중 탄핵당한 대통령과 함께 울었다는 사람은 있어도 ‘내 탓이오’ 하면서 사표 내거나 자책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보고, 어느 누가 이런 내각을 신뢰하겠는가. 황 대행은 거취에 대한 가닥이 잡힐 때까지 죄인의 자세로 자중하면서 ‘완장’ 노릇을 자제해야 마땅하다.
대통령이 공백 상태에 있고 내각이 불신받는 상황에선 민의의 전당이며 선출 권력인 국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국회는 국민의 신뢰를 잃은 대통령 및 행정부를 대신해, 책임감과 소명감을 가지고 국정운영을 주도할 책임이 있다. 마침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이 탄핵안 가결 직후 국정운영의 중심 기구로 ‘국회·정부 정책 협의체’와 ‘여·야·정 협의체’를 제안한 것은 바람직하다. 새누리당의 정진석 원내대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여·야·정 협의체의 가동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다만, 새누리당이 이 협의체에 참여하더라도 대통령의 폭정에 친위대 노릇을 해온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한 친박계는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그래야 협의체의 권위와 정당성이 생긴다.
황교안 대행이 이끄는 내각도 이 기구에 하루빨리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마땅하다. 비상상황을 관리해 나갈 권위와 정통성을 지닌 이 기구를 무시하고, 대행 내각이 섣불리 독자 행동을 하려다가는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민심이 가만히 앉아 있지 않을 것이다.
친박을 배제한 여야가 주도하는 여·야·정 협의체가 대통령 없는 비상 시기에 정책 조정 및 결정을 하고 황 대행이 이끄는 내각이 협의체에서 결정된 사항을 집행하는 일을 한다면, ‘부역자 황교안 총리,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민심도 자제력의 한계 안에 머물 수 있을 것이다. 이젠 촛불의 성숙한 자세에 정치권이 응답할 차례이다.
[중앙일보 사설] 여야, 대선 꼼수 접고 국정안정에 힘 모으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론이 나오고 조기 대선이 치러지기까지 길게는 8개월간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가동된다. 황교안 총리가 박 대통령의 권한을 대신해 내치·외교를 총괄하는 것이다. 이 기간 중 대한민국이 전대미문의 국정 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의 전기를 마련할지, 아니면 혼란만 가중되면서 나락으로 추락할 것인지는 정치권이 하기에 달려 있다.
한데 여야 정치권은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대선을 겨냥한 정쟁에 골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친박계 이정현 대표가 탄핵안 가결에도 불구하고 버티기로 일관하며 비대위 구성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중을 드러내고, 반발한 비박계가 독자 비대위 구성 논의에 들어가는 등 내전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집권당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국정공백 최소화에 전력을 기울여도 부족한 마당에 당 주도권을 놓고 내분만 가열되고 있으니 더 이상 실망할 구석도 찾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도 문재인 전 대표가 탄핵 가결 직후 박 대통령의 즉각하야를 요구하고, 추미애 대표가 “황 총리도 탄핵감”이라 주장하는 등 나라는 안중에 없고 조기 대선에만 눈이 먼 노골적인 모양새다. 당 지도부가 이런 비판을 받아들여 “황 총리 체제를 지켜보겠다”고 물러서긴 했지만 안희정 충남지사·이재명 성남시장 등 당내 잠룡들이 속속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민주당의 ‘조기 하야’ 요구는 언제든 재연될 개연성이 있다. 국민의당 역시 탄핵안 가결 직후 김동철 비대위원장이 박 대통령의 즉시 퇴진을 요구하고 황 총리 체제에 거부감을 표시하며 조기 대선 욕심을 드러낸 바 있다.
대한민국이 초유의 위기를 맞은 지금 정치권의 급선무는 때이른 대선 레이스 시동이 아니다. 황 총리 대행체제를 도와 국정이 안정을 회복하도록 힘을 보태 주는 노력이 절실하다. 그래야 대선도 제대로 치러져 당선인이 정통성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최순실 게이트 이후 두 달 가까이 방치되다시피 한 경제는 초당적 대처가 시급한 핵심 과제다. 가계부채가 1300조원을 넘고 수출·투자·소비가 위축되며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안보 역시 상황이 엄중하다. 특히 내년 1월 20일 취임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의 조기 정상회담이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은 권한대행 체제의 가장 큰 리스크다.
두 야당이 이런 지적들을 받아들여 지난 주말을 고비로 민생모드를 염두에 둔 ‘여·야·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 새누리당은 즉각 내분을 멈추고 이에 호응해야 한다. 당장 12일 열릴 3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논의를 개시해 조속히 협의체를 출범시켜야 할 것이다. 12일부터 30일간 소집될 임시국회 역시 경제·외교·민생이 핵심의제가 돼야 한다.
대통령이 식물상태인 가운데 국정의 주축이 된 정치권 역할의 중요성은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특히 정국의 주도권을 쥔 거대 야당의 역할이 핵심이다. 이제는 탄핵 투쟁을 넘어 나라를 안정적으로 이끄는 모습을 보이고, 대안을 제시해야만 수권정당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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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사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 지난 9일, 국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국회는 이날 탄핵의결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하고 그 등본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이와 동시에 박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국정을 대신 하게 되었다. 이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통과된 이후, 헌정사에서 두 번째로 맞는 비극이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올 때까지 국정은 총리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기존의 대통령 권한이 고스란히 총리에게 넘어가는 것이다. 앞으로 황 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로 국무회의를 비롯한 여러 회의를 주재하고 부처 보고를 받으며 정책을 결정하게 된다. 나아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며 외교와 안보도 챙기며 외국 사절도 접견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국가를 대표해 정상회담에도 참여해야 한다. 권한대행은 국정을 운영함에 있어서 청와대와 국무조정실 모두에게 보좌를 받는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를 비추어볼 때,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의 업무는 청와대로부터,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업무는 국무조정실의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권한대행의 직무 역할을 두고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법령에 대통령 권한대행의 직무 범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권한대행의 역할은 국가운영을 위한 통상적인 업무 수준에서 그쳐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총리직은 선거 결과로 검증된 국민의 뜻에 따라 정당성을 부여받은 선출 권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 탄핵 당시 권한대행으로 국정을 꾸려간 고건 총리도 제한적인 업무만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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