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교육부가 시·도교육청에 오는 3월 국정교과서 사용을 희망하는 학교들의 신청을 받아 연구학교 지정을 하라는 공문을 내렸지만, 시도교육청, 시민사회단체, 일선 학교 등에서는 강력 반발하거나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교육부는 11일 ‘역사교육 연구학교 담당자 회의’를 열어 전국 17곳 시도교육청의 연구학교 담당자들을 한 자리에 불렀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교육청 관계자는 “교육부에서는 적극적으로 도와달라는 말을 되풀이했지만, 교육청 담당자들은 법적인 문제점 등을 지적하며 협조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이날 회의에는 애초 전국 17곳 시도교육청 중 6곳의 교육청이 불참의사를 전했다가 뒤늦게 참석하기도 했다.
시도교육청 13곳은 교육부의 연구학교 지정 공문에 협조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이미 밝힌 상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연구학교 지정 요청을 거부할 수 있는 ‘특별한 사유’에 대해, 교육부가 ‘국가 위임 사무’ 관련 대법원 판례를 들어 지자체의 재정 부족 등 사실상의 장애사유만 해당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잘못된 법해석”이라며 “연구학교 지정은 2008년 학교 자율화 조처에 따라 이미 지방에 이양된 ‘자치 사무’이기 때문에 국정교과서의 낮은 품질, 개발 과정의 문제점, 국민 반대 여론 등도 ’특별한 사유’에 해당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전날 “전국 국립대 부설 중·고등학교는 국가 수준의 교육정책을 연구·개발·검증하기 위해 설립된 상설 연구학교이기 때문에, 모두 국정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해 운영한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밝혔지만, 해당 중·고등학교에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서울의 한 국립대 부설고교 교장은 “우리 학교는 이미 성교육 표준안 개발을 2년째 연구하고 있는데 국정교과서를 추가해 두 주제를 연구하기는 벅차다“며 “아직 교육부와 협의하지 않았지만, 학교가 여건이 안 되는데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20여곳의 국립대 부설 중·고교들의 연구주제는 해마다 교육부와 협의를 통해 배정된다.
전국역사교사 모임과 480여개 교육·시민단체가 참여한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도 이날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구학교는 국정교과서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꼼수"라며 연구학교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교육부는 연구학교 본연의 목적까지 더럽히며 학교 현장을 혼란에 빠뜨리지 말고 국정교과서라는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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