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사회에디터석 사회정책팀 기자 aroma@hani.co.kr ‘18살에게도 투표권을 주자’. 청소년들의 참정권 문제가 요즘 이슈입니다. 정치인의 말은 여기저기 난무한데, 10대들의 말이 안 들립니다. 당사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주변의 아는 10대들에게 전화를 돌려봤습니다. 전화기가 꺼져 있거나, 통화음이 끝나도록 받질 않네요. 열명 넘게 전화를 걸어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내 전화기가 고장이 났나, 껐다 다시 켜봐도 분명 멀쩡한데. 문자를 보내자 그제야 한둘 답이 옵니다. “지금 학원인데 이따 독서실에 가야 해서 통화가 어렵습니다”(18살 고등학생 ㄱ), “엄마한테 폰을 빼앗겨서ㅜㅠ 친구 폰으로 문자 보내요”(17살 고등학생 ㄴ), “기자라고요? 왜 우리 애한테 전화를 하시죠?”(18살 고등학생 ㄷ).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10대는 ‘없는 존재’ 취급을 받습니다. 정부의 발표를 보면, 우리나라의 이동전화 보급률은 이미 수년 전부터 100%를 넘겼다는데 여전히 통신의 자유마저 없는 집단이 10대입니다. 학교 앞을 찾아가도 철저히 통제된 생활을 하는 10대들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기자는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데, 교육 현장엔 10대 목소리 대신 그들을 대리한 교사, 학부모, 교육정책가들의 말만 들립니다. 교육담당 기자는 자괴감에 빠집니다. 내가 이러려고…. 일주일 전만 해도 무난히 국회를 통과할 듯 보이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11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법안소위를 통과하고도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의 반대로 전체회의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현재 19살부터 투표할 수 있게 제한된 법을 18살까지 한살 내리자는 건데, ‘표 계산’에 열공 중인 일부 정당들 때문에 국회 통과가 불투명해졌습니다. 그동안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 요구를 어른들은 “몇몇 청소년의 ‘유별난’ 목소리”라고 폄하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런 말이 설득력 없어 보입니다. 10대들이 대입 정보를 주고받는 오르비, 수만휘 같은 유명 입시 사이트에서도 “선거권 갖게 되면 누굴 뽑아야 하나요?”, “첫 투표권 누구한테 주실래요?”, “나도 투표하고 싶다” 등의 글이 올라오고, 유력하게 거론되는 대선 주자들의 평가가 오고 갑니다. 학교에서 선생님 말 잘 듣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범생이’ 학생회장들도 움직이네요. 현재 전국 고등학교 400곳의 학생회장단들이 ‘18살 선거권 확대를 위한 청소년·청년 연석회의’란 이름으로 모여 있습니다. 전국 곳곳의 학생회장연합회 회의 결과를 모은 김시연 부천 부명고 학생회장은 “지금껏 몇몇 청소년단체 위주로 발언했는데, 이제는 청소년들이 직접 뽑은 대표들인 학생회장단들이 이렇게 많이 함께하고 있다”며 “선거권 요구는 청소년 전체의 목소리”라고 말합니다. 10대들의 목소리를 모르는 건 학교뿐입니다. “당연히 학교에 말하면 싫어하죠. 학교는 잘 몰라요. 그래서 ‘○○고’로 참여한 게 아니라 ‘○○고 학생자치위원회’로 참여한 겁니다. 학생자치회 활동은 학생인권조례에도 보장하라고 나오기 때문에 학교가 막을 수 없거든요.” 연석회의에 참여한 학생회장의 말입니다. 논리가 치밀하죠. 바뀌지 않는 건 역시 어른들입니다. 선거 가능 연령을 한살 내린다 해도 10대들은 “정말 고맙습니다^^” 이런 기분이 아니라고 합니다. 고2 소아무개(17)씨는 “친구들 중엔 촛불집회에 나간다고 야단치는 부모님을 둔 친구들도 많았어요. ‘집회’, ‘시위’라는 단어는 위험하다고 하셨대요. 그런 친구들은 부모님한테 말 안 하고 나가는 것 같아요”라고 상황을 전합니다. 모든 국민에게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도 10대들에겐 ‘허락’받아야 하는 일인 것이죠. 청소년 인권 활동가 양지혜씨는 “해묵은 과제인 선거권 연령 인하가 이제라도 실현된다면 환영은 하지만, 대부분의 참정권과 기본적인 인권에서 소외돼 있는 청소년이 18살에 겨우 투표권 하나 갖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18살 선거권’은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학생 절반이 학교를 감옥처럼 느낄 때가 있다는 조사가 있습니다. 2013년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 등이 실시한 전국 초중고 학생 2921명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반수에 가까운 48%가 “학교가 감옥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34.2%는 “학교에 있으면 숨이 막힌다”고도 했습니다. 학교가 여전히 감옥처럼 느껴지는 현실에서 18살 선거권 인정을 놓고 종잇장 뒤집듯 말을 바꾸는 정치인들은 10대들에게 어떤 어른으로 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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