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를 위한 대학생 대책위원회’ 및 ‘대학생 겨레하나’ 대학생들이 전날 있은 부산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철거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한겨레 사설] 시민의 ‘소녀상’에 보복으로 답한 일본의 적반하장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관련 ‘평화의 소녀상’이 부산의 일본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데 항의해 주한 대사와 부산총영사를 자국으로 불러들였다. 대사와 총영사를 송환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강경 조처다. 일본은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 중단과 고위급 경제 협의 연기도 발표했다.
일본의 이번 조처는 부적절함을 넘어 적반하장에 가깝다. 부산에 설치된 소녀상은 촛불시민들이 12·28 위안부 문제 합의 1주년을 맞아 자발적으로 세운 것이다. 민간 차원에서 벌인 일에 반발해 대사를 본국에 소환하고 경제협력 활동을 중단하는 조처까지 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일본의 이런 강경 조처는 한국에서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다음 정부에서 12·28 합의 재협상 움직임이 일 것에 대비해 미리 쐐기를 박으려는 계산속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문제의 근본 원인이 12·28 합의 자체에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합의 당시 일본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법적 책임 인정을 비롯해 꼭 필요한 조처를 거의 취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용으로 10억엔을 내놓는 것으로 위안부 문제가 불가역적·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했다. 소녀상 설치가 일본의 책임 회피와 역사 외면에 대한 한국 시민들의 항의임을 일본 정부가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근본 문제에는 눈감은 채 소녀상을 철거하라며 초강경 보복행위를 하는 것은 참회와 정의를 외치는 목소리를 힘으로 짓누르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본의 강경 조처에 빌미를 제공한 우리 정부의 무책임과 외교력 부재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애초 우리 정부가 10억엔 출연으로 사실상 모든 책임을 면제하는 합의를 해준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더구나 합의 직후부터 우리 정부가 10억엔을 받는 대가로 소녀상을 철거한다는 이면합의를 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일본 정부는 이번에도 소녀상 문제와 관련해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근혜 정부가 자초한 외교 굴욕이다.
일본 정부가 보복 근거로 삼은 12·28 합의는 정의의 원칙을 훼손한 것인 만큼 원천적으로 잘못됐다. 일본은 보복 조처를 즉각 거둬들여야 마땅하다. 마침 법원은 12·28 합의와 관련한 협상 문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정부는 이제라도 합의 내용을 모두 밝히고 국민의 뜻에 맞는 선택을 해야 한다.
[중앙일보 사설] 부산 위안부 소녀상 갈등…국익 중심으로 풀어야
부산 일본 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설치를 놓고 한·일 관계가 급속히 얼어붙은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한·일 양국은 동쪽에선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차기 행정부가, 서쪽에선 자국의 안보를 위해 시진핑 정권이 조여오는 압박을 받고 있다. 북핵 위협도 함께 마주하고 있다. 이런 두 나라가 손잡기는커녕 과거사 때문에 다시 으르렁거리는 것은 이유가 어떻든 무척 안타깝다.
이번 갈등을 둘러싼 대응을 보면 양쪽 다 잘못을 저질렀다. 우선 부산 동구청은 우왕좌왕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소녀상을 빼앗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너무도 뻔했다. 그럼에도 비난이 쏟아졌다고 불과 이틀 만에 소녀상을 돌려준 건 어설프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아베 정권이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들였다고 바로 똑같은 조치를 취한 우리 외교부도 사태를 키우는 잘못을 저질렀다.
일본 정부는 좀 더 신중히 대응하는 게 바람직했다. 부산 소녀상 설치를 주도한 것은 한국 정부가 아닌 시민단체다. 부산 동구청을 포함, 우리 당국은 이를 막으려다 폭발 직전의 여론에 밀린 것이다. 이를 감안하지 않고 즉각 일본 대사 소환이라는 초강경수를 둠으로써 일본 정부는 양국 간 갈등을 부채질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건 과거사 청산도 중요하지만 외교관계에서 궁극적인 최고의 선은 따로 있다는 점이다. 바로 국익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일 관계도 미래지향적으로 가져가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기에 대권주자 등 정치인들은 이번 갈등을 부추겨서는 안 되며 민족 감정을 대선 전략으로 악용해서도 안 된다.
과거엔 이런 일이 터지면 양국 중진 인사들이 닦아놓은 물밑 채널이 가동돼 난제들이 풀리곤 했었다. 하지만 갈수록 지한파·지일파 인사들이 사라져 소통이 힘들어졌다. 그나마 일본 측과 원만한 관계를 맺어온 주일대사 출신의 이병기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한일의원연맹 한국 측 회장인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 모두 최순실 사건으로 곤경에 처했다. 이번 사태로 또 한번 절감하지만 양측 모두 원활한 소통을 위해 물밑 채널 복원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추천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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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사설] 2015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 타결 2015년 12월28일, 한국과 일본은 외교장관 회담을 열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 합의했다. 합의문에서 일본 측은 위안부 문제에 당시 일본군이 관여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했으며,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하였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의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을 설립하면,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거출하여 모든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나아가, 이러한 조치들이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일본이 자신들이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합의를 통해 일본 정부와 함께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방향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나아가 한·일은 국제 관계에서 위안부 문제를 놓고 상호 비판, 비난하는 것을 자제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러한 합의는 타결 직후부터 ‘졸속’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정작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담기지 않았을뿐더러, 북핵 문제에 대한 대응, 중국에 대한 견제를 위해 한·일 간의 군사적·경제적 협력을 바라는 미국의 바람에 밀려 성급하게 결론을 맺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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