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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한국의 시험,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요

등록 2017-06-16 20:49수정 2017-06-16 21:07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김미향
사회에디터석 사회정책팀 기자 aroma@hani.co.kr

<한국이 싫어서>(장강명)를 읽은 것은 우연이었을까요. 지난 11일은 한겨레신문사의 신입사원 필기시험일이었습니다. 저는 시험 감독이었죠. 공교롭게도 이틀 전 저는 한국이 싫어서 호주로 떠난 20대에 대한 소설을 읽었습니다.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라고 말하며, 주인공은 국경을 넘습니다.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 시험 장소로 걸어가는 힘겨운 발걸음들을 보면서 속으론 “한국이 싫어서”,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란 소리가 절로 나왔습니다. 초·중·고 12년은 물론 대학을 거쳐 취업하기까지, 시험을 몇 번이나 봐야 밥벌이라도 하고 살 수 있을까.

안녕하세요. <한겨레>에서 교육에 관한 온갖 것들을 쓰는 김미향입니다. 요즘 ‘시험’이 쟁점입니다. 14일 교육부가 9년간 유지하던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를 폐지했습니다. 시험 6일 전 내린 급한 결정이었지만 “과도한 경쟁 교육을 완화하겠다”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교육부의 결정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하루 전 경기도교육감은 2019년부터 경기도 내 외국어고와 자율형사립고를 재지정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요즘은 초등학생 때부터 “외고나 자사고 못 가면 루저”라고 자조하며 고입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좋은 학교’, ‘멋진 직장’에 가기 위해 아주 어릴 적부터 시작되는 시험 인생이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기대해본 한 주였습니다.

그런데 ‘수능’을 빼고 한국 청년들의 시험 인생을 논할 수 있을까요.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꾸겠다고 말해온 사람이 새 정부의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됐습니다.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입니다. 사실 수능 절대평가화는 지난 대선에서 후보자 네 명이 공약할 만큼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습니다. 고3이 되면 교실에서 이비에스(EBS) 틀어놓고 문제집만 푸는 현실을 만족할 사람 누가 있을까요. ‘학생 변별력’(이라 쓰고 ‘점수 줄세우기’라고 읽습니다), ‘수월성 교육’을 중요시하는 보수성향 교원단체도 수능은 절대평가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진보와 보수, 교육에 대한 이념과 상관없이 학생들에게 남보다 더 잘하라고 채찍질하며 경쟁시키는 게 의미 없다는 목소리가 모아진 것이죠.

하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어렵사리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더라도 김상곤 후보자에겐 ‘대학 반발’과 ‘학부모 불안’이란 두 장벽이 놓여 있습니다. 지금도 수능을 절대평가하면 “대혼란이 온다”, “대학은 어떻게 학생 뽑으란 말이냐”며 반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점수 받기 쉬워질 테고, 점수를 잘 받은 학생이 많아지면 대학이 학생을 제대로 뽑지 못할 것이란 걱정이죠. 그동안 우리는 수능원서를 내는 전국 60만명의 학생이 석차 순으로 예쁘게 줄 서 있고, 전국 4년제 200여개의 대학도 속칭 ‘스카이’(SKY)니 ‘인서울’이니 ‘지잡대’니 하며 차례로 줄을 서 있어, 각각 줄을 선 대로 매칭돼야 한다는 생각에 지배돼왔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저출산, 학령인구 감소, 그냥 한국이 싫어서 떠나는 사람들까지. 더이상 이 땅에 줄 세울 학생들이 부족합니다. 이제 아이들이 없는데, 공부 잘하는 애, 못하는 애를 줄 세워 얻는 효용이 무엇일까요. 입학할 학생보다 대학 정원이 더 많아지는 상황이 당장 몇 년 사이 펼쳐지거든요.

수능을 논술형으로 치르는 시대도 머지않아 옵니다. 좋은교사운동, 교육을바꾸는사람들 같은 교육단체는 현 중3 학생들이 치르는 수능부터 서술형 문항을 넣자고 제안합니다. 지금처럼 공부 잘하는 몇몇 학생들만 학원에서 논술을 배운 뒤 대학이 별도로 만든 논술시험을 보게 하지 말고, 학교에서 논술을 가르치고 수능도 논술로 보자는 겁니다. 교육학자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대한민국의 교육이 바뀌려면 시험이 바뀌어야 한다”며 “우리나라 수능도 논술형으로 대대적으로 개편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지난주 23살 청년의 사연이 화제였습니다. 어머니께 “다음 생엔 공부 잘하겠다”는 문자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습니다. 차라리 “한국이 싫어서”,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라고 했으면 나았을 텐데. 실업에 대한 원인을 공부를 잘하지 못한 자기 자신으로 돌리게 하는 교육, 김상곤 후보자는 얼마만큼 바꿀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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