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사회적교육위원회 회원들이 ‘수능절대평과 전환 및 입시경쟁교육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수능 시험을 절대평가로 전환해야 한다”며 “입시경쟁교육 폐지를 향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대수술에 들어갔다. 교육부는 현재 중3 학생들이 치를 2021학년 수능 개편을 8월 말까지 확정한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2일 출입기자단 오찬 간담회에서 “2021학년도 수능 개편 초안인 교육부 안을 8월 초까지 완성하고 국민 여론을 수렴해 8월 말 최종 고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능체제 개편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건, 절대평가 전환 여부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은 박근혜 정부가 2015년 9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발표하며 예고했고, 문재인 정부가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교육정책이다. 교육부는 “지금 우리 교육은 단순 암기를 강조하며 한 줄 세우기식 평가 중심으로 이뤄진다”며 절대평가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사와 영어에 이어 모든 과목을 절대평가로 일괄 전환하면 변별력이 떨어져 대학 입시의 공정성을 해친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최근 주요 대학은 절대평가로 전환하더라도 단계적으로 하자고 정부에 의견을 제시했다. <한겨레>는 이메일 설문을 통해 14명의 교육전문가에게 △수능 절대평가에 찬성하는지 △‘단계적 전환’과 ‘전면 전환’ 중 어느 것이 나은지 △변별력 약화 등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등을 물었다.
“수능 상대평가는 비인간적 무한경쟁” 전문가 14명 가운데 12명이 절대평가 전환에 찬성했다. 수능 상대평가가 고교 교육을 단순 반복 문제풀이로 전락시키고 비인간적인 무한경쟁을 일으켰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이현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은 “수능은 형식적 공정성에도 불구하고 주입식-강의식 교수법과 암기-문제풀이 학습법을 부추겨 교육을 왜곡하고 학생의 장래를 어둡게 했다”고 진단했다. 이은주 평등교육실현전국학부모회 인천 대표는 “상대평가 탓에 학생들은 순위만 신경 쓰고 제대로 배우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실패자를 양산한다”고 비판했다. 박정근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 회장(수원 화홍고 교사)은 “친구들 간 협력 학습을 저해해 참된 소통과 공감 능력, 공동체적 사고를 함양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안연근 서울진학지도교사협의회 회장(잠실여고 교사)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를 양성하려면 상상력, 비판력, 창의력이 필요한데 <교육방송(EBS)> 문제집을 단 한 문제라도 더 맞히기 위한 경쟁을 조장하는 수능 상대평가로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경범 서울대 교수(서어서문학과)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아이들이 창의력, 상상력, 의사소통능력 등을 키우지 못하면 그 장래가 암담하다”며 “미래 사회를 살아갈 역량을 가르치는 새로운 학교 교육을 향한 출발점이 수능 절대평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입시업체 관계자 2명은 수능이 입시 도구로서 변별력을 상실한다며 반대했다. 이만기 유웨이교육평가연구소장은 “수능 변별력이 약화하면 균일하지 않은 고교 내신의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고 대학이 정시를 축소해 내신이 좋지 않은 수험생이 피해를 본다”고 우려했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또 다른 변별력 도구 출현이 불가피하다”며 “내신, 면접 등 신종 사교육이 발생해 수험생 부담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수능 단계적 전환은 풍선효과만” 전문가 14명 중 11명이 ‘단계적 전환’보다 ‘전면 전환’을 선호했다. 단계적 전환은 풍선효과를 낳아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이현 소장은 “상대평가로 남은 특정 과목만 몰입교육해 학습 균형이 완전히 깨질 수 있다”고 했고, 김경범 교수는 “단계별 전환은 현재 기형화된 수능을 더욱 기형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수능 절대평가 전환에 반대하는 이만기 소장도 “어차피 (절대평가를) 실시해야 한다면 전면 (전환) 쪽”이라며 “하나의 시험에 두 개의 평가 기준이 있는 것도, 상대평가 과목의 비중이 너무 커지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수능 절대평가와 더불어 교과 성취평가제(내신 절대평가)를 도입해야 고교 교육이 정상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는 “수능과 내신이 호응을 이룰 때 절대평가라는 여백의 공간에서 학생들이 공동체성, 협업 등 미래 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우 좋은교사운동 대표도 “일정 수준을 넘는 학생들에 대해 세밀한 변별을 하지 않아야 과도한 경쟁을 완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정근 회장은 “학교 현장 준비 상황을 고려해 2021년에 진로선택 과목, 2022년엔 일반선택 과목, 2023년엔 모든 과목을 순차적으로 절대평가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보면, 고 1학년은 국어, 영어, 수학, 한국사, 사회·과학 등 공통·통합 과목을, 고2, 3학년은 진로선택의 ‘경제 수학’ ‘영미 문학 읽기’ 과목이나 일반선택의 ‘확률과 통계’ ‘정치와 법’ 과목 등을 골라서 배운다. 반면 안연근 회장은 “대입 선발에 숨통을 터주기 위해서 내신 절대평가는 점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공과목 참고해 수능 변별력 확보해야” 수능 절대평가의 문제점으로 꼽히는 ‘다수의 동점자’와 ‘대입 변별력 상실’을 극복하는 방안도 전문가들은 다양하게 제안했다. 교육부의 ‘2015~2017학년도 수능 절대평가 적용 시 영역별 1등급 현황 자료’를 보면 국·영·수 기준 1등급 비율(90점 이상)은 최소 4.77%에서 최대 15.8%로 나타났다. 송인수 대표는 “자기소개서를 통한 약식 면접이나 전공 관련 내신과목을 참고하면 입시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진우 대표는 “추첨제나 학교생활을 질적으로 평가하는 면접을 도입할 것”을 제언했다. 이현 소장은 “학생부 교과 전형을 확대하고 검정고시 출신이나 재수생은 수능 점수 또는 상대적 비율(백분위 등)을 입시자료로 활용하도록 하자”고 말했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영국 에이레빌, 프랑스 바칼로레아, 독일 아비투어 등과 우리나라 수능을 비교해보면 얼마나 다른 능력을 평가하는지 한눈에 보인다”며 “절대평가, 문·이과 통합, 고교학점제, 객관식 없는 전 과목 논술 등은 이미 교육선진국에서 수십 년 전부터 정착됐다”고 설명했다.
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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