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6학년 사회 과목에는 ’사회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보기’라는 주제가 있어, 불법촬영 금지 및 2차 가해 방지에 대한 수업을 준비했다. 이예원 교사 제공
요즘 한창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는 이슈가 있다. 마약·특수강간 등 각종 의혹을 받고 있는 한 클럽에서 비롯된 사건이 그것이다. 아이들에게도 친숙한 연예인들이 불법촬영 및 공유·유포와 연루돼 연일 포털사이트 메인을 장식한다.
그래서일까, 쉬는 시간에 이런 말이 들려왔다. “야, ○○○한테 영상 찍힌 애 □□랑 △△래.” “헐, □□랑 △△라고?” 삽시간에 복도를 가득 메운 대화 속에는 피해자일 수 있는 연예인들이 그저 가십거리가 돼 있었다.
마침 6학년 사회 과목에는 ‘사회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보기’라는 주제가 있어 불법촬영 금지 및 2차 가해 방지에 대한 수업을 준비했다. 친구가 수련회에서 내가 잠든 사이 사진을 찍은 경우, 친구만 보라고 보낸 영상을 다른 곳에 올린 경우 등 아이들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예로 들며 왜 문제가 되는지 알아봤다.
본인이 피해자가 되어버린 다양한 사례를 듣자 아이들은 “불법촬영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며 상대의 허락을 맡거나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한다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아이들이 피해자가 아닌 제삼자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친구가 다른 친구의 ‘재미있는 영상’을 내게 보낸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아까와 달리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극단적인 두 예시를 들었다. 하나는 “이거 누구야?” “진짜 웃기다”라며 본인의 호기심에 충실한 사례, 다른 하나는 “허락받고 올린 거야?” “지우고 사과해”와 같이 찍힌 친구의 입장을 생각하는 예시였다. 그러자 아이들은 방향을 잡았고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에 십분 공감했다. 덧붙여 피해자 신상을 캐묻는 것, 영상을 보거나 저장·유포하는 것은 모두 2차 가해 행위라고 알려줬다.
이제는 사회문제 해결 방법을 떠올릴 차례. 아이들은 배운 내용을 널리 알려야 사회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며, 미술 시간에는 불법촬영 금지 및 2차 가해 예방을 위한 포스터를 만들었다. 어떤 학생들은 열연을 펼치며 불법촬영 금지를 주제로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아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길 원했다. 포스터는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영상은 유튜브에 올렸다.
수업이 끝난 뒤 아이들에게는 어떤 인식 변화가 있었을까. 영화를 만든 학생들은 왜 불법촬영을 하는지 영상을 만들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며, 커서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 많은 아이들이 피해자 대신 가해자에게 초점을 맞춰야겠다고 하거나 2차 가해가 꼭 사라졌으면 좋겠다고도 답했다. 어제만 해도 복도에서 피해자 신상을 ‘소비’하던 아이들이, 오늘은 피해자 입장을 헤아려 2차 가해를 막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는 달라야 한다. 피해자의 이름을 앞세운 ‘○○○ 동영상’으로 죄 없는 여성 연예인들이 줄줄이 ‘해명’을 하게 만드는 사회여선 안 된다. 사회 수업 한번으로도 아이들은 성장했다. 어른들도 이제는, 피해자를 향한 그릇된 호기심이 아닌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때다.
이예원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 교사, <예민함을 가르칩니다> 공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