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오랜 기간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최승준(18)군은 시설 원생들과 친분이 깊다. 점심식사를 마친 최군이 원생들과 함께 잠시 틈을 내 농구를 하고 있다. 파주/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표지이야기 고2 승준이의 자원봉사 2년반
“하면 할수록 뿌듯함 같은 걸 느끼니까요.”
최승준(17·서울 광영고2)군이 고3 진학을 코앞에 둔 겨울방학 때이지만 자원봉사를 멈추지 않는, 아니 끊지 못하는 이유다.
스스로 봉사활동에 나선 지 2년7개월째, 그 사이 승준이의 꿈도 좀 더 분명해졌다.
“막연하게 공부 잘해 좋은 대학 가야지 했어요. 이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일, 자원봉사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같이 농사짓고 농구하고… 스스럼없이 다양한 체험
고3되어서도 봉사 계속하고… 대학선 사회복지학 전공 계획
오늘도 다음 봉사일 손꼽아 17일 경기 파주시 적성면에 있는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교남어유지동산(kyonamdongsan.com). 오전 종이 접기에 쓰는 열두 색깔 골판지를 묶어 비닐봉투에 포장하는 일을 마친 승준이에게 한 장애인 ‘형’이 다가왔다. “어, 왔어?” “예, 안녕하세요.” 활짝 웃으며 내미는 손을 승준이도 꽉 쥔다. 다운증후군 등을 앓는 중증 정신지체장애인 46명이 일하는 이곳에 승준이는 2004년 7월 처음 온 이래 여섯번째 들렀다. 서울 강서구 학부모들과 자녀들이 모인 ‘강서 실타래 봉사대’가 봉사하기로 했다. 회장인 어머니 최현(42)씨와 여동생 지혜(9·발산초2)는 물론이고, 처음 보는 친구들도 눈에 띄었다. 초등 1학년 여자아이 윤태오부터 수능 시험을 마친 조다혜 누나까지 학생 14명과 어머니 13명, 이렇게 모두 27명이 승용차 여섯 대로 한시간 반을달려온 터였다. 점심을 맛있게 비우고는 운동장에서 장애인 형들과 농구경기 한 판을 벌였다. 형들은 평균 나이 30대 초반이지만 정신 연령은 어린이 수준이다. 처음 느꼈던 거리낌 같은 건 사라진 지 오래고, 전혀 스스럼 없이 어울린다. 오후 1시 식당에 모여 열두 색깔 골판지 포장에 바삐 손을 바삐 놀리던 어머니들은 왜 자녀와 함께 왔느냐고 묻자 대뜸 떠들썩해진다. “아이들이 오히려 얻는 게 더 많아요.” “보세요, 비뚤어진 아인 한 명도 없죠?” “우리 아이들은 남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살아갈 거예요.” “공부요? 스스로 공부시간을 짜내던데요.” 김충묵(72) 교남어유지동산 원장은 “꾸준히 와 주니 전속(봉사대)이나 다름없다”며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자녀와 함께 가족 단위로 들러줘 더욱 좋다”고 했다. 겨울이라 일감이 적다고는 해도 확 줄어드는 것은 아닌데, 학기 동안 10%를 웃돌던 청소년들의 참여율이 1~2월 2~3%대로 뚝 떨어지는 현실에 비추면 이렇게 꼬박꼬박 들르는 학생 가족 봉사자들은 더욱 반갑다. 청소년들의 자원봉사활동 참여는 날로 늘어 1991년 13.6%에서 지금은 90% 안팎에 이른다. 1996년부터 봉사활동 참가 시간을 학교생활기록부에 써넣고, 2000년부터는 봉사활동을 특별활동의 한 영역으로 교과과정 안에 편성해 운영해 온 영향이 크다. 중1~2 때는 승준이도 ‘시간 채우기’ 봉사를 하던 학생이었다. 학교에서 해 오라는 봉사활동 시간만큼, 동네 우체국이나 양로원에서 청소나 이불 개기 등을 하고 확인증을 받아다 학교에 냈다. 그러다 어머니와 형을 따라 집 인근 노인복지시설 천사요양원을 찾았다. 첫째 셋째 일요일엔 꼭 들러 할아버지·할머니들의 식사를 거들고 말벗을 해 줬다. 어머니 최씨는 재해 구조 방송을 보면서 궁금해하면서도 낯설어 그냥 머물러 있던 주부였는데, 고2였던 큰아들의 학부모 모임이 계기가 돼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승준이는 여동생과 함께 몇 차례 따라다녔더니, 언제부턴가 봉사하는 날을 기다리게 됐다. 방학 때면, 틈나는 대로 들러 중풍·치매를 앓는 어르신들을 만났다. 공항동의 지체장애인 쉼터 ‘작은자들의 집’에도 한 달에 한번 찾아가 목욕·식사·외출을 도왔다. 이듬해 여름방학 때 참여한 강서구 자원봉사센터의 ‘청소년 자원봉사 리더십 아카데미’에서 현장 실습을 통해 교남어유지동산을 알게 되면서 또다른 자원봉사 세계를 만났다. 고추 따기, 벼논 잡초 뽑기 등 난생 처음 농삿일을 하며, 순수하고 경계심 없는 어린이 같은 마음을 지닌 정신지체 장애인 형 누나들과 어울렸다. 노인·장애인이 있는 곳의 활동과는 꽤 달랐다. 계절마다 농삿일이 달라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장애인 형과 누나들이 도움만 받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산활동을 하며 봉사자들을 궁금해하고 기다려 주는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나와 장애인들의 땀이 합해져 큰 열매를 맺는 것에 보람을 느꼈어요. 꼭 어른이 되어가는 기분이죠.” 지난해 5월 개교기념일이나 수능 시험일에 여러 학교 친구들 손도 끌어당긴 것도, 거리가 멀어 하루를 꼬박 내야 하는 봉사이지만 그런 보람을 공유하고 싶어서였다. 승준이의 ‘자원봉사자수첩’엔 200여 차례의 활동 기록이 빼곡하다. 고3 때도 봉사를 계속하고 대학에선 사회복지학을 전공할 작정이다. 은행서 일하는 아버지를 보며 경영학을 공부할까 했는데 이젠 바뀌었다. 어머니 최씨는 “책임감도 더 생기고 어려운 이웃을 열린 눈으로 대하는 것 같아 기특하다”며 대견해 했다. “봉사한다고 성적이 떨어지진 않더라”면서도 공부를 게을리 해선 안 된다고 다잡는 건 여는 어머니와 다를 바 없다. 사회복지가 유망한지는 잘 모르지만, 앞으로 사회가 짊어져야 할 숙제이고 또 개척해가야 할 분야일 수 있다며 밀어줄 생각이다. 덕분에 승준이는 1월 초 인도로 해외 자원봉사를 다녀올 수 있었다. 10박11일 동안 들린 콜커타 인근 ‘마더 테레사의 집’에선 색다른 봉사 모습을 봤다.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전세계 곳곳에서 온 봉사자들은 저마다 제 할 일을 찾아 도와주고 있었다. 누가 맡기거나 시키는 일은 없다고 했다. 승준이는 친구들과 함께 우리말로 노래를 불러주며, 꼭 다시 봉사하러 찾아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고 했다. 자원봉사로 일어난 승준이의 이런 변화에, 청소년위원회와 한국청소년자원봉사센터는 최근 ‘제3회 대한민국 청소년 봉사상’ 최우수상을 줘 격려했다. △부모 따라 봉사를 시작했지만 자발적으로 가족·친구와 적극 참여했고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정기적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진로를 사회봉사 쪽으로 굳히게 된 점 등을 높이 샀다.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고3되어서도 봉사 계속하고… 대학선 사회복지학 전공 계획
오늘도 다음 봉사일 손꼽아 17일 경기 파주시 적성면에 있는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교남어유지동산(kyonamdongsan.com). 오전 종이 접기에 쓰는 열두 색깔 골판지를 묶어 비닐봉투에 포장하는 일을 마친 승준이에게 한 장애인 ‘형’이 다가왔다. “어, 왔어?” “예, 안녕하세요.” 활짝 웃으며 내미는 손을 승준이도 꽉 쥔다. 다운증후군 등을 앓는 중증 정신지체장애인 46명이 일하는 이곳에 승준이는 2004년 7월 처음 온 이래 여섯번째 들렀다. 서울 강서구 학부모들과 자녀들이 모인 ‘강서 실타래 봉사대’가 봉사하기로 했다. 회장인 어머니 최현(42)씨와 여동생 지혜(9·발산초2)는 물론이고, 처음 보는 친구들도 눈에 띄었다. 초등 1학년 여자아이 윤태오부터 수능 시험을 마친 조다혜 누나까지 학생 14명과 어머니 13명, 이렇게 모두 27명이 승용차 여섯 대로 한시간 반을달려온 터였다. 점심을 맛있게 비우고는 운동장에서 장애인 형들과 농구경기 한 판을 벌였다. 형들은 평균 나이 30대 초반이지만 정신 연령은 어린이 수준이다. 처음 느꼈던 거리낌 같은 건 사라진 지 오래고, 전혀 스스럼 없이 어울린다. 오후 1시 식당에 모여 열두 색깔 골판지 포장에 바삐 손을 바삐 놀리던 어머니들은 왜 자녀와 함께 왔느냐고 묻자 대뜸 떠들썩해진다. “아이들이 오히려 얻는 게 더 많아요.” “보세요, 비뚤어진 아인 한 명도 없죠?” “우리 아이들은 남과 더불어 사는 사회를 살아갈 거예요.” “공부요? 스스로 공부시간을 짜내던데요.” 김충묵(72) 교남어유지동산 원장은 “꾸준히 와 주니 전속(봉사대)이나 다름없다”며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자녀와 함께 가족 단위로 들러줘 더욱 좋다”고 했다. 겨울이라 일감이 적다고는 해도 확 줄어드는 것은 아닌데, 학기 동안 10%를 웃돌던 청소년들의 참여율이 1~2월 2~3%대로 뚝 떨어지는 현실에 비추면 이렇게 꼬박꼬박 들르는 학생 가족 봉사자들은 더욱 반갑다. 청소년들의 자원봉사활동 참여는 날로 늘어 1991년 13.6%에서 지금은 90% 안팎에 이른다. 1996년부터 봉사활동 참가 시간을 학교생활기록부에 써넣고, 2000년부터는 봉사활동을 특별활동의 한 영역으로 교과과정 안에 편성해 운영해 온 영향이 크다. 중1~2 때는 승준이도 ‘시간 채우기’ 봉사를 하던 학생이었다. 학교에서 해 오라는 봉사활동 시간만큼, 동네 우체국이나 양로원에서 청소나 이불 개기 등을 하고 확인증을 받아다 학교에 냈다. 그러다 어머니와 형을 따라 집 인근 노인복지시설 천사요양원을 찾았다. 첫째 셋째 일요일엔 꼭 들러 할아버지·할머니들의 식사를 거들고 말벗을 해 줬다. 어머니 최씨는 재해 구조 방송을 보면서 궁금해하면서도 낯설어 그냥 머물러 있던 주부였는데, 고2였던 큰아들의 학부모 모임이 계기가 돼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승준이는 여동생과 함께 몇 차례 따라다녔더니, 언제부턴가 봉사하는 날을 기다리게 됐다. 방학 때면, 틈나는 대로 들러 중풍·치매를 앓는 어르신들을 만났다. 공항동의 지체장애인 쉼터 ‘작은자들의 집’에도 한 달에 한번 찾아가 목욕·식사·외출을 도왔다. 이듬해 여름방학 때 참여한 강서구 자원봉사센터의 ‘청소년 자원봉사 리더십 아카데미’에서 현장 실습을 통해 교남어유지동산을 알게 되면서 또다른 자원봉사 세계를 만났다. 고추 따기, 벼논 잡초 뽑기 등 난생 처음 농삿일을 하며, 순수하고 경계심 없는 어린이 같은 마음을 지닌 정신지체 장애인 형 누나들과 어울렸다. 노인·장애인이 있는 곳의 활동과는 꽤 달랐다. 계절마다 농삿일이 달라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장애인 형과 누나들이 도움만 받는 것이 아니라, 함께 생산활동을 하며 봉사자들을 궁금해하고 기다려 주는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나와 장애인들의 땀이 합해져 큰 열매를 맺는 것에 보람을 느꼈어요. 꼭 어른이 되어가는 기분이죠.” 지난해 5월 개교기념일이나 수능 시험일에 여러 학교 친구들 손도 끌어당긴 것도, 거리가 멀어 하루를 꼬박 내야 하는 봉사이지만 그런 보람을 공유하고 싶어서였다. 승준이의 ‘자원봉사자수첩’엔 200여 차례의 활동 기록이 빼곡하다. 고3 때도 봉사를 계속하고 대학에선 사회복지학을 전공할 작정이다. 은행서 일하는 아버지를 보며 경영학을 공부할까 했는데 이젠 바뀌었다. 어머니 최씨는 “책임감도 더 생기고 어려운 이웃을 열린 눈으로 대하는 것 같아 기특하다”며 대견해 했다. “봉사한다고 성적이 떨어지진 않더라”면서도 공부를 게을리 해선 안 된다고 다잡는 건 여는 어머니와 다를 바 없다. 사회복지가 유망한지는 잘 모르지만, 앞으로 사회가 짊어져야 할 숙제이고 또 개척해가야 할 분야일 수 있다며 밀어줄 생각이다. 덕분에 승준이는 1월 초 인도로 해외 자원봉사를 다녀올 수 있었다. 10박11일 동안 들린 콜커타 인근 ‘마더 테레사의 집’에선 색다른 봉사 모습을 봤다.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전세계 곳곳에서 온 봉사자들은 저마다 제 할 일을 찾아 도와주고 있었다. 누가 맡기거나 시키는 일은 없다고 했다. 승준이는 친구들과 함께 우리말로 노래를 불러주며, 꼭 다시 봉사하러 찾아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고 했다. 자원봉사로 일어난 승준이의 이런 변화에, 청소년위원회와 한국청소년자원봉사센터는 최근 ‘제3회 대한민국 청소년 봉사상’ 최우수상을 줘 격려했다. △부모 따라 봉사를 시작했지만 자발적으로 가족·친구와 적극 참여했고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정기적으로 활동하며 △자신의 진로를 사회봉사 쪽으로 굳히게 된 점 등을 높이 샀다. 이수범 기자 kjls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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