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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한자 덧붙이기보다 풀이말 달아야 이해하기 쉬워

등록 2020-11-16 17:56수정 2020-11-17 09:19

[쉬운 우리말 쓰기]

연재ㅣ박물관 속 우리말 11회
통일신라시대 왕실의 생활문화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국립경주박물관 월지관을 관람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 둘러보고 있다. 신정숙 기자
통일신라시대 왕실의 생활문화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국립경주박물관 월지관을 관람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 둘러보고 있다. 신정숙 기자

국립경주박물관 정문을 들어서니 전시관보다 옆쪽 뜰에 있는 성덕대왕신종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20분마다 한 번 종소리가 울린다는데, 운 좋게 그 소리를 들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깊은 울림이 멀리 퍼져나가며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혀 준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사람도 이 소리를 들으면 구제받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런 이야기가 왜 생겼는지 알 것 같다.

경주박물관은 서울의 중앙박물관에 이어 우리나라 제2의 박물관으로, 하루 만에 다 보기 어려울 만큼 규모가 크다. 상설전시실인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월지관과 특별전시실, 어린이박물관, 신라천년보고 등이 있고, 옥외 전시장도 드넓다. 여유가 있다면 하루 한 전시실씩 돌아보면 좋겠다 싶다.

월지관에서 만난 젊은 엄마와 예닐곱 살쯤 돼 보이는 아이의 대화가 재미있었다. 엄마가 동화책을 읽어주듯 목소리에 변화를 주어가며 아이에게 유물 안내문을 열심히 읽어주었다. “월지에서는 청록색이나 녹황색을 띠는 청자와 순백색의 백자가 출토되었대. 이것들은…” “근데 출토가 뭐야?” “음… 거기서 발견되었다고. 거기서 나왔다는 말이야.” “아하! 근데 엄마 이제 집에 가면 안 돼?” 엄마는 더 읽어주고 싶어 했지만 아이는 저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박물관에서 자주 보는 ‘웃픈’ 장면이다. 아이를 어린이박물관으로 데려가면 좋을 텐데. 그곳에는 유물을 이용한 온갖 재미난 놀이가 있어, 웃고 떠들며 뛰어다니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아이가 유물과 자연스럽게 친숙해지면 그때 어른과 함께 전시관을 찾아도 늦지 않을 테다.

불교미술실을 돌아보니, 안내문에서 어려운 전문용어를 풀이해주는 데에 기준이 잘 정립되어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①통일신라시대에는 삼국 불상의 특징이 조화를 이룬 불상을 만드는 한편, 인도 굽타Gupta 시대 불상양식의 영향을 받은 중국 성당양식盛唐樣式이 도입되어 8세기에는 석굴암 불교조각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 불교 조각사상 절정의 불상을 만들어냈습니다.

②통일신라시대 용무늬 전塼은 역동적이며, 고려시대 용머리 장식기와는 크고 사실성이 뛰어납니다.

③670년, 당의 해군이 신라로 몰려 왔습니다. 명랑스님은 문무왕의 명에 따라 경주 남산에서 유가승(밀교 승려)들과 함께 밀교 의식을 행했고 당의 병선은 풍랑으로 침몰했습니다.

④7세기 중엽에는 자장慈藏(610?~654)을 중심으로 한 계율종戒律宗이 성행하였으며, 밀교密敎 또한 유행하여 병을 고치는 기적을 일으키거나, 외적을 물리치는 이적異蹟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⑤황룡사에서 발굴된 커다란 나발螺髮부처의 머리카락과 손가락은 거대 불상의 흔적입니다.

예문①에서 ‘굽타’ 뒤에 ‘Gupta’라는 로마자를 써주었는데, 이 로마자를 보면 굽타의 뜻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나? ‘성당양식’은 전문용어라 한자보다는 뜻풀이가 필요하다. 예문②의 ‘전’도 한자를 붙일 것이 아니라 안내문 아래쪽에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아주는 것이 좋겠다.

굽타: 4세기 인도의 왕조 이름.

※성당 양식: 중국 당나라를 초당, 성당, 중당, 만당 네 시기로 나누는데, 그중 두번째 시기인 성당 시대에 유행한 불상 양식.

: 벽을 쌓거나 바닥에 깔 때 쓰는 납작한 벽돌.

예문③에는 ‘유가승’ 뒤에 한자 ‘瑜珈僧’을 붙이지 않고 ‘(밀교 승려)’라고 뜻풀이를 해주었다. 훨씬 이해하기 쉽다. 이처럼 뜻풀이가 간단할 때는 낱말 바로 뒤에 풀이말을 달아 주는 것도 좋다. 예문④는 ‘자장’ ‘계율종’ ‘밀교’ 뒤에 한자를 붙이기보다 아래쪽에 간단한 주석을 달고, ‘이적’은 여기서 기적과 같은 뜻으로 썼으므로, ‘병을 고치거나 외적을 물리치는 기적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로 문장 전체를 다듬는 것이 좋겠다. 예문⑤의 ‘나발’은 뒤에 한자와 뜻풀이를 다 썼는데, 한자는 빼도 되겠다.

금강역사金剛力士가 새겨진 돌기둥 4개는 본래 경주 하동鰕洞의 어느 절터에 있던 것입니다. 이 돌기둥은 탑塔의 1층 탑신 귀퉁이에 세웠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금강역사를 탑에 세운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분황사芬皇寺 모전석탑模塼石塔과 미술관 입구 옆에 있는 금강역사가 있던 구황동九皇洞 절터의 탑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금강역사를 탑에 장엄莊嚴하였을까요?

예문⑥은 필요하지 않은 부분에 한자를 넣어 오히려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경우다. ‘하동’ ‘구황동’ 같은 지역 이름 뒤에, ‘탑’처럼 이미 우리말이 된 말 뒤에 굳이 한자를 넣어줄 필요 없다. ‘금강역사’와 ‘모전석탑’ 뒤에는 한자를 달기보다 ‘절이나 탑을 지키는 신’, ‘돌을 벽돌처럼 깎아 쌓은 돌탑’ 정도로 안내문 아래쪽에 주석을 달아주는 것이 낫다.

‘금강역사를 탑에 장엄했다’라는 표현은 그 뜻을 바로 알기 어려운데, 여기 쓰인 ‘장엄하다’는 ‘웅장하고 위엄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매우 아름답고 훌륭하게 장식했다’라는 뜻의 불교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엄했다’도 주석을 다는 것이 좋겠다.

안내문에 어려운 전문용어를 쓰지 않을 수는 없다. 이때 그 낱말이 유물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지, 박물관을 찾는 다양한 사람들의 편에서 한번 더 생각해본다면, 전문용어 뒤에 간단히 한자나 로마자를 붙이는 무성의함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공공기관이 써야 할 말의 기준을 염두에 두면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소중한 유물을 잘 이해하게 도울 수 있을까 좀 더 궁리해주길 바란다.

신정숙 교열부 기자 bom1@hani.co.kr

감수 상명대학교 국어문화원 특임교수 김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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