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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만화는 지식의 주메뉴가 아니라 맛보기

등록 2006-02-05 15:19수정 2006-02-06 15:07

국내 만화소비시장은 약7500억원 규모. 이 가운데 절반가량을 어린이 교양학습만화가 차지한다. 매달 수십 종의 신간이 출간되고 있는 책들 가운데 어떤 책이 우리 아이에게 유익할지 엄마들은 고민이다.
국내 만화소비시장은 약7500억원 규모. 이 가운데 절반가량을 어린이 교양학습만화가 차지한다. 매달 수십 종의 신간이 출간되고 있는 책들 가운데 어떤 책이 우리 아이에게 유익할지 엄마들은 고민이다.
만화 다시 보기-2.교양학습만화의 허와 실
어린이 교양학습만화가 서점가를 장악하고 있다. 2000년 초, 그리스 신화 열풍과 맞물려 <만화 그리스 로마신화>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일기 시작한 학습만화 열풍은 <살아남기 시리즈>와 <마법 천자문>, <사고치기 시리즈>에 이르러 대세를 이루고 있다. 또, ‘메이플 스토리’나 ‘카트라이더’ 같은 인기 게임의 캐릭터를 활용한 오락만화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만화소비시장은 약 7500억원 규모라고 한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을 어린이 교양학습만화시장이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그만으로 국내 음반시장의 규모를 훌쩍 앞선다. 베스트셀러가 나타나면 그를 쫒는 후발 기획들이 쏟아지게 마련. 매달 수십 종의 신간이 출간되고 있어 어떤 만화를 아이들에게 읽힐 것인가가 엄마들에게 당장의 고민이 된다.

오락·학습 조화된 ‘에듀테인먼트’

어린이들을 위한 만화의 기능은 건전한 오락의 측면과 가치 있는 학습의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어린이들도 휴식과 놀이의 시간이 필요하고, 나름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건전한 오락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만화로 만든 작품들도 의미가 있다. 그런데 최근 어린이 학습만화의 트렌드는 놀이와 학습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구성을 선호하고 있다. 재미있게 만화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학습의 효과도 거둘 수 있다면 엄마나 아이들에게 모두 행복한 일이 아닌가. 만화를 고르는 기준을 놀이와 학습의 조화, 즉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콘텐츠로서의 가치에 두면 큰 낭패는 없을 것 같다.

지난 글에서 만화의 장르적 특성이 객관주의 교육과 구성주의 교육에 공히 적용될 수 있음을 살펴보았는데, 서점에는 재미와 지식 두 마리 토끼를 잡아 이러한 교육이론들을 구현하고 있는 어린이 교양학습만화가 얼마든지 있다. 객관주의 교과학습을 도와주는 만화는 교과과정에서 소재를 선택한 만화들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작품은 <마법 천자문>(아울북), <판타지 수학대전>(민서각), <만화 조선왕조실록>(휴머니스트) 등이 있다. 교과과정의 소재는 아니지만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실용정보를 담은 작품도 있다. <살아남기 시리즈>(아이세움)는 북극이나 빙하, 곤충을 무대로 해당 소재의 학습정보를 엮어냈다.

구성주의 교육에 적합한 만화들은 교과암기를 도와주는데 머무르고 있는 객관주의 학습만화의 아쉬움을 넘어서고자 애쓴다. 지식의 맥락을 이해하게 하고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데 주력한다. <사고치기 시리즈>(한솔수북)와 <황석영 만화 삼국지>(애니북스) 같은 만화들은 하나의 사건, 사물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고 계몽적인 결론보다는 스스로 고민하는 자극제 역할을 한다.

객관주의 교육과 구성주의 교육의 조화는 우리 어린이들의 장래를 위해 무척 중요하다. 어린이 교양학습만화 역시 객관주의를 구현하는 만화와 구성주의를 구현하는 만화를 균형 있게 읽을 수 있도록 지도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만화의 에듀테인먼트로서의 가치를 평가할 때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만화는 지식의 전채요리이지 주 메뉴가 아니다. 어린이들이 어떤 지식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고 거부감 없이 입문하게 도와주는 것이 만화의 역할이란 뜻이다. 어떤 지식에 대한 본격적인 가르침은 교과서나 관련서적의 몫이다. 만화로 얻은 지식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책으로 이끌도록 가정과 학교에서 지도해야 한다. 만화와 교과서의 역할을 혼동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 어린이들을 지식과 생각의 장으로 이끄는 좋은 만화를 두고도 그것을 가볍다거나 깊지 않다고 오해하기 십상이다. 한자 만화에 나오는 한자는 스무 자도 안 되지만 어린이들이 재미를 느껴 스스로 공부할 한자는 천 자이고, 생각 만화가 보여주는 지식은 열 가지 주제도 안 되지만 어린이들이 스스로 생각해 깨닫게 될 것은 세상의 이치이다.

물론 서점에 깔린 모든 어린이 교양학습만화가 양서는 아니다. 우선 성공한 기획을 따라한 만화들은 쉬이 믿음이 가질 않는다. 성공한 작품들은 저마다의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데 아류들은 노하우를 쌓기 위한 고민 없이 검증된 길을 쉽게 가려 한다. 흥행작의 그늘에 안주하는 태작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금방 가려낼 수 있다.


읽고 나면 어떤 과목을 정복할 수 있을 것처럼 광고하는 만화들도 의심해봐야 한다. 청강문화산업대학 박인하 교수의 지적처럼 ‘학습효과’를 앞세우는 만화들일수록 급조된 기획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만화는 애피타이저라고 했다. 만화는 일등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똑똑한 아이를 만들어 줄 따름이다.

성공한 기획 베낀 졸작 피해야

또 최근에는 싼 인건비와 빠른 작업속도 때문에 중국이나 베트남 등의 인력을 고용하여 단기간에 여러 권을 쏟아내는 작품들이 많아지고 있어 우려스럽다. 이런 만화들은 대부분 현지에 작업실을 차려 원고를 제작해서 국내 시장에 내놓는다. 현지 인력의 창작능력 수준도 문제이지만, 철저한 기획으로 만화의 재미와 지식정보를 조화롭게 구성하는 작업이 어린이 교양학습만화의 핵심인데, 현지 작가들에게 과정의 대부분을 맡겨두는 이런 만화들이 책임 있는 내용을 확보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허술한 구성과 낡은 그림체, 조잡한 색감의 해외제작 만화들이 대형 출판사의 밀어내기로 시장에 나오고 있기까지 하다. 공을 들여 좋은 만화를 골라주는 엄마의 배려가 필요한 때이다.

박성식/한솔수북 편집장,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 앰배서더 hojenhoo-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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