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지역 여성 활동가들은 현대적 관점에서 트로트의 노랫말을 다시 살피는 ‘대중가요(트로트) 가사 분석 연구’ 모임을 꾸렸다. 지난 13일 이 모임의 연구자 다섯명이 충남 논산시 부적면 한 교회에 모인 모습. 사진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 “귀하는 트로트의 가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충남풀뿌리여성네트워크는 최근 시민 400여명을 대상으로 트로트와 이를 소재로 한 음악 프로그램들에 대한 인식 조사를 시작했다. 40~50대 여성들로 구성된 ‘대중가요(트로트) 가사 분석 연구’ 모임을 중심으로 노랫말에 숨은 성차별적 내용을 찾아 분석하고 이를 모아 연구자료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트로트의 노랫말이 모든 세대와 성별을 아우르는 다양한 정서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만나봤다.
“에어컨 바람이 너무 찬 거 같네. 잠깐 끌까요?”
“지금 분석하는 노래들에 의하면 우리는 이렇게 추워도 참아야만 해. 여자이니까.”
“노랫말을 보면 죄다 여자는 참고 기다려야 하고, 남자는 여자를 지켜줘야 한다고 나와요. 이거 참….”
일찌감치 불볕더위가 찾아온 지난 13일. 충남 논산시 부적면에 있는 동네 예배당에 일요일 오후를 맞아 40~50대 여성 다섯이 모였다. 이들은 한 손에는 냉커피, 다른 손엔 아이스크림을 든 채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마흔한살부터 쉰여덟살까지 다양한 나이의 여성들로 구성돼 있지만, 관심사는 비슷했다.
“다들 분석해보니 어땠어요? 나는 그냥 듣는 거랑, 알고 듣는 거랑 달랐어요. 한줄한줄 곱씹다 보니 ‘이런 숨은 뜻이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가사 하나하나 보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들이 참 많아요.”
“그러게요. 2021년에 이런 가사를 불러야 하나 싶어요.”
“요즘 트로트 가요 방송을 안 하는 방송사가 없다는 거지. 무지하게 많아요. 티브이 어디를 틀어도 트로트가 나와요.”
“우리, 코로나 풀리면 노래자랑도 엽시다. ‘성차별 아닌 트로트 부르기 노래자랑’ 말이죠. 이런 가사가 있는데 근절해야 한다는 식으로 우리가 설명을 하는 거죠. 개사를 해서 직접 불러볼까요?”
“그거 참 좋네요.”(웃음)
이들이 머리를 맞댄 것은 최근 방송가의 ‘대세 트렌드’로 자리잡은 트로트 노랫말 때문이다. 한데 모인 이들은 탁자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최근 유행하는 여러 트로트 영상을 틀었다. 이들 역시 몇년 전부터 거세게 불어온 트로트 열풍 속에서 무수히 많은 노래를 무심코 흥얼거려왔다. 하지만 노랫말을 하나하나 따져본 뒤, 트로트 가사 속에 성차별적인 내용이 적지 않다는 걸 발견할 때마다 손바닥으로 무릎을 쳤다. 10대부터 30대까지 ‘영페미니스트’들을 중심으로 시작해 최근 몇년간 우리 사회에 크게 불어닥친 ‘페미니즘 리부트’ 열기가 중년 여성에게까지 와닿은 것이다.
연구목적: 대중가요(트로트) 가사 속에 숨어 있는 성차별 문화를 분석하여 남성에 의한 소극적인 여성의 삶이 아닌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상을 찾고 성평등 문화를 지역 내 확산하고자 함.
현대적 관점에서 트로트의 노랫말을 다시 살피는 ‘대중가요(트로트) 가사 분석 연구’ 모임이 지난달 충남 지역에서 꾸려졌다. 공주, 논산, 보령, 홍성 등 인근 지역에 사는 40~50대 시민 여성 활동가들이 모인 것이다. 충남풀뿌리여성네트워크 활동가인 차경선 논산시의회 의원을 비롯해 신경미 공주여성인권회 활동가, 최미자 충남다문화가정협회 지회장, 정미선 <충남정치경제신문> 기자, 박선영 논산시장애인단체연합회 팀장, 장경아 지역 활동가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트로트 노랫말 중에 수동적 여성상을 그대로 구현하거나, 불평등한 성 역할을 강조하는 표현들을 간추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여성에 대한 외모 묘사가 지나치게 선정적인 노랫말도 가려내는 대상의 하나다.
아이디어는 차경선 의원에게서 나왔다. 최근 다시 유행하는 트로트 노래들을 들어보니, 남녀관계를 시대착오적으로 그리는 노래가 많더라는 것이다. 남녀가 함께 연애를 하는데, 여성의 태도가 유독 수동적으로 그려지는 경우도 많았다. 차 의원은 이런 가사의 노래를 21세기에도 계속 따라 부르는 현상에 답답함을 느껴 분석 모임을 꾸리게 됐다고 했다.
“지난 1월 시의회에 의사일정이 없어서 티브이를 보게 됐어요. 트로트 방송이 여기저기 많았어요. 그런데 ‘오빠 한번 믿어봐’, ‘나는 여자라서 행복해요’ 같은 노랫말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게다가 트로트 경연대회에 나이 제한이 없잖아요. 어린 지원자들이 나와서 트로트를 열심히 부르고 있는데, 그 안에 담긴 노랫말 내용이 심각한 거예요. 지금이 2021년 맞나?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충남여성정책개발원이 내놓은 소규모 연구 공모가 있어서 트로트 노랫말을 연구하고 싶다고 지원했던 거죠.”
차 의원은 4월 충남여성정책개발원 공모사업에 ‘대중가요(트로트) 가사 분석 연구’를 지원해 연구비 300만원을 따냈다. 연구책임자인 차 의원을 포함해 지역여성 여섯명이 연구자로 참여하기로 했다. 이들은 6개월간 활동하고 분석 결과를 내놓게 된다. 지난달 첫 모임을 열었고, 올해 10월 최종 자료집을 내는 것을 목표로 활동 중이다. 충남지역 주민 400여명을 대상으로 한 ‘트로트 가요와 트로트 음악 방송에 대한 충남도민 인식 조사’도 다음달 시작한다.
지난 13일 부적면 한 교회에 이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21일 중간 연구결과 발표를 준비하는 예비모임이다. 개인 일정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 장경아 활동가를 뺀 다섯명의 연구자는 각자 분석해 온 노래들을 놓고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제가 분석한 음원차트 트로트 부문 21~40위 노래들을 보면 내용이 참 애틋해요. 부모님에 대한 사랑, 자식에 대한 사랑을 그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좋다고 봐야 하죠?”(정미선)
“아니죠. 희생을 강요하는 거죠. 가수 송가인이 부른 ‘엄마 아리랑’을 봐요. 처음에 볼 땐 엄마의 사랑으로 봤는데, 자세히 보면 엄마는 자식을 위해 ‘천년만년 지지 않는 꽃’이라고 나와요. ‘아들딸아 잘되거라 밤낮으로 기도한다’, 아주 희생을 강요하죠. 요즘 이야기가 아니에요.”(차경선)
이들은 한 음악콘텐츠 업체 음원차트 트로트 부문 상위 1~100위곡(5월21일 기준)과 2021년 발표된 트로트 최신곡 20곡 등 총 120곡을 대상으로 노랫말을 분석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제목, 발표 연도, 원곡자, 리메이크한 가수명 등을 표로 정리한 뒤 세가지 분석 요소를 적용한다. 첫째, 애정 관계에서 남성은 적극적, 여성은 수동적으로만 그리지 않는지, 둘째, 성별을 상징하는 표현 등에서 성차별적인 내용은 없는지, 셋째, 노골적인 외모 묘사의 대상으로만 여성을 그리지 않는지 등이다. 이에 더해 어린이·청소년 가수들이 부른 노래들을 몇곡 더 추가해 분석한다.
트로트 가요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텔레비전 채널을 장악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실제 여론조사업체 한국갤럽이 18살 이상 전국 성인 1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매달 발표하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면,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내일은 미스트롯2>(티브이조선)가 석달 연속 1위를 차지했다. 4월에도 프로그램만 달라졌을 뿐, 역시 트로트 가요 방송인 <사랑의 콜센타>(티브이조선)가 1위에 올랐다. 지난해에도 줄곧 트로트 프로그램이 1위를 차지했다.
트로트 가요를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은 우후죽순 생겨났다. 현재 방송되는 트로트 프로그램을 보면, <내일은 미스트롯2>, <내 딸 하자>, <사랑의 콜센타>, <뽕숭아학당>(이상 티브이조선), <트롯 전국체전>, <트롯매직유랑단>(이상 한국방송), <트로트의 민족>(문화방송), <트롯파이터>(엠비엔) 등 무려 여덟개에 이른다. 이밖에 <전국노래자랑>, <가요무대>(이상 한국방송) 등 기존 음악 프로그램에도 트로트가 약방 감초처럼 등장하고 있다.
트로트가 전 국민적으로 큰 인기를 얻으면서 과거 유행했던 노랫말도 다시 호출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 노랫말을 젠더 관점에서 꼼꼼히 들여다보면 걱정스러운 면이 적지 않다. 특히 연인 사이의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한 많은 트로트 가요에서 남성은 주도적으로 다가가는 모습으로, 여성은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사랑을 기다리는 존재로 표현된다.
올해 초 텔레비전에 방영된 트로트 경연대회에서 한 어린이 참가자가 불러 인기를 끌었던 가수 이미자의 노래 ‘여자의 일생’이 대표적이다. 1968년 발표된 이 노랫말을 살펴보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 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아 참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역시 어린이 참가자가 다시 불러 화제가 된 가수 금잔디의 2012년 노래 ‘오라버니’의 가사 또한 여성을 지나치게 의존적인 존재로 그린다. “나는 정말 여자라서 행복해요. 오라버니 사랑한다 말해주세요. 정신을 못 차릴 거야. 오라버니 목소리에 울고 웃어요.”
여성만의 문제도 아니다. 최근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리메이크해 대중의 반향을 다시 얻은 노래들 가운데 과거의 감수성을 반영한 시대착오적인 노랫말이나 성별 고정관념이 포함된 노랫말이 상당히 많다. 가수 장민호가 최근 다시 노래한 조항조의 곡 ‘남자라는 이유로’(1997)를 보면 “언제 한번 가슴을 열고 소리 내어 울어볼 날이 남자라는 이유로 묻어두고 지낸 그 세월이 너무 길어요”라고 말한다. ‘남자는 소리 내어 울 수 없다’는 식으로 남성에게 씌워진 고정관념이 드러난다.
연구자들의 분석을 보면, 요즘 만들어진 노래라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가수 임영웅의 ‘이제 나만 믿어요’(2020)는 얼핏 보면 연인을 지켜주는 믿음직스러운 남성상을 그리는 듯하지만 한발 더 들어가보면, 여성을 남성만 믿으면 되는 존재로 그린다. 남성은 “그대 우산이 될게 그댄 편히 걸어가요”라고 다짐하는 강한 존재이자, 여성을 지켜주는 존재로 묘사된다. 이 노래는 지난달 21일 현재 지니뮤직 음원차트에서 트로트 부문 1위에 오를 만큼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밖에도 트로트 노랫말 속에 등장하는 여성상은 남성의 사랑을 그저 기다리거나, 자식에게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어머니, 즉 고전적 여인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들딸아 잘되거라 밤낮으로 기도한다 엄마 아리랑”(송가인 ‘엄마 아리랑’, 2019)
“어머니의 끝도 없는 자식들 사랑 그 누가 어찌 다 아랴 시집장가가 자식 낳아봐야 그제야 그 사랑을 알겠지”(임영웅 ‘뭣이 중헌디’, 2017)
“비가 오면 우산 들고 마중 나와 주시고 눈이 오면 넘어질까 걱정을 하시네. 사랑으로 안아주고 기죽을까 감싸며 울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신 할무니”(김호중 ‘할무니’, 2020)
초등생 가수가 부르는 성차별 가사
가사 분석 연구 모임 여성들은 오디션 형식 트로트 경연대회에서 10대 초반의 어린이들이 성차별적인 노랫말을 가진 트로트 가요를 연습해 무대에 오르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도 강하게 드러냈다.
“아홉살, 열두살…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부른 노래들을 찬찬히 분석해봤어요. 아이들이 부른 노래가 어른들이 부른 것보다 더 심각해요. 가수 이미자가 불렀던 ‘여자의 일생’을 아이들이 부르면 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 노래를 부르는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냐는 거지요. 말 한마디 못 하고 그냥 무조건 참아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도 심사위원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귀엽다, 잘한다, 그러는데 나는 정말 못마땅해요.”(차경선)
연구자들은 “여자 어린이에게 ‘여자이기에 참아야 한다’고 노래하도록 하는 게 문제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어린이·청소년 가수 지망생들이 감정 연기에 매진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사 내용을 내면화하게 되는 건 아닌지, 어린이들이 트로트를 즐겨 부르면서 어릴 때부터 성차별적인 인식을 갖게 되지 않을지 걱정된다고도 했다.
“감정을 살려야 하니까 연습을 무지하게 해요. 어떤 참가자는 노래 부르기 전에 그 노래에 나온 장소를 가본대요. 어떤 마음으로 이 노랫말을 지었을까, 생각하기 위해서요.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준결승, 결승할 때 보면 노랫말을 다 뽑아서 분석하는 장면이 나와요. 어디서 어떤 감정이 들어가야 하는지, 어디서 웃어야 하고 어디서 울어야 하는지, 다 분석해서 부르지 절대 그냥 부르지 않아요.”(차경선)
이들은 트로트 가요 노랫말의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다음달부터 충남지역 주민 4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다. 조사 항목에는 평소 즐겨 듣는 대중음악 장르는 무엇인지, 트로트 음악 프로그램을 얼마나 자주 시청하는지, 시청하지 않는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등의 질문을 담았다. ‘트로트 가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세부 항목으로는 ①젊은 세대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 ②성차별적인 내용, 전통적인 여성상과 남성상이 포함되어 있다 ③구시대적인 남녀 간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등을 제시했다. 응답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부터 ‘매우 그렇다’까지 열개 구간으로 나눠 응답할 수 있도록 했다. 이어 ①다양한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담은 트로트가 필요하다 ②좀 더 성평등한 내용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 등 트로트 가사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묻는다. 연구자들은 다음달 보령중앙시장, 논산시민공원, 홍성농협 앞 등에서 간이 탁자에 펼침막을 내걸고 설문조사 참가자를 모집할 예정이다.
연구를 지원하는 김영주 충남여성정책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노래 몇곡의 가사를 사례로 드는 것만이 아니라 결과가 수치로 나오는 양적 분석도 포함할 것이다. 예를 들면, 120곡 중 ‘남성은 적극적, 여성은 소극적’으로 그리고 있는 노래가 몇곡인지 수치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아이디어가 의미있는 연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트로트 노랫말을 성평등 관점에서 다시 보는 충남풀뿌리여성네트워크의 ‘대중가요(트로트) 가사 분석 연구’ 연구자들이 13일 오후 논산시 덕은감리교회 교육실에서 노래를 들으며 가사를 분석하고 있다. 논산/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영화에는 ‘벡델 테스트’라는 게 있다. 1985년 미국 여성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영화계에 남성 중심적 작품이 얼마나 많은지 수치화해보려고 만든 테스트다. 벡델 테스트의 기준은 간단하고 분명하다.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 출연자가 두명 이상 나올 것, 이들이 서로 대화하는 장면이 나올 것, 이들의 대화 내용에 남자와 무관한 내용도 포함할 것, 이 세 기준을 통과했는지만으로도 그 영화가 최소한의 성평등 관점을 지녔는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과하기 어렵지 않을 것 같지만, 뜻밖에 많은 영화들이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영화의 주인공은 남성이고, 여성이 주인공인 경우라도 그들이 ‘남성 중심 사회의 이야기’를 하는 게 현실이다. 벡델 테스트는 얼마나 많은 영화들이 남성의 시선으로 제작되는지,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은연중에 얼마나 남성 중심 사회로 점점 더 고착화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이들의 연구는 ‘대중가요판 벡델 테스트’의 기초작업으로 쓰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첫째, 가사에 여성에 대한 외모 평가가 들어가지 않을 것. 둘째, 가사에 여성의 희생과 헌신, 인내를 권장하는 내용이 들어가지 않을 것. 셋째, 애정 관계를 ‘남성=적극, 여성=소극’이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로 묘사하지 않을 것.
김영주 연구위원은 “트로트 가사 내용의 성차별성을 분석하는 이번 연구의 문제의식은 단지 트로트 노래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많은 대중가요를 성평등 관점에서 분석하는 연구로 충분히 확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중가요의 가사를 보면 사랑과 이별 등 남녀 관계를 그리는 노래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데, 10~20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그때 음원차트 상위 1~100위곡들을 지금의 분석 결과와 비교해본다면 시대의 변화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논산/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