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한 물류센터.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물류센터 노동자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면담조사 한 번 뒤 ‘괴롭힘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처리한 쿠팡풀필먼트서비스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직접 조사에 나섰다. 고용노동부가 직장 내 괴롭힘 진정에 대해 재조사 권고 등에 그치지 않고 직접 조사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2일 <한겨레> 취재 결과, 고용노동부 인천북부지청은 쿠팡 인천4물류센터 계약직 노동자 백아무개씨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 대한 쿠팡의 대처가 미흡했다고 보고 이르면 다음달 해당 사건을 직접 조사할 방침을 검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회사가 신고자와 피신고자를 한 번씩만 면담한 뒤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는데, 조사에 미흡한 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가해자와의 업무 분리 등 피해자 보호 조치를 적극 검토하라’는 내용의 행정지도 공문을 회사에 보낸 뒤 조사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은 조사 의무가 회사 쪽에 있지만, 인천북부지청은 쿠팡 물류센터를 관리하는 쿠팡풀필먼트서비스가 백씨의 신고 내용을 충분히 살펴보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사가 시작되면 노동청은 괴롭힘 피해 여부를 현장조사 하고, 필요하면 디지털 포렌식(분석) 등을 통해 진정인의 출근 기록 등을 살펴보게 된다.
앞서 지난달 13일 백씨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에 대해 쿠팡 본사가 조사에 나서도록 권고해달라’는 내용의 진정을 인천북부지청에 냈다. 백씨는 지난 2월 노동조합 설립을 의논하는 네이버 밴드 대화방에 가입한 뒤 현장 반장 등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백씨는 인천북부지청에 낸 의견서에서 “밴드 활동을 시작한 지 불과 5일 만에 현장 총관리자로부터 ‘네가 노조하면 뭐라도 된 것 같으냐’는 등의 조롱을 듣거나, ‘(노조) 밴드에 글 쓰지 마라’는 강요를 받았다”고 썼다. 또 평소 포장된 물건을 나르던 업무를 하다가 야외 차량유도 업무로 돌연 전환 배치되고, 이전까지 쓴 적이 없던 사실관계 확인서 작성을 강요받았다고 진술했다. 백씨는 “사내 공식 절차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했지만 윤리위원회도 열리지 않은 채 조사가 끝났고, 가해자와 업무공간을 분리해달라는 요청도 거절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쿠팡은 백씨의 신고 뒤 백씨와 가해자로 지목된 현장 반장을 각각 한차례 면담조사 한 뒤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고용노동부가 직장 내 괴롭힘 신고에 대해 직접 조사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이다. 괴롭힘 사건에 대해서는 관할 노동청이 회사에 사건을 조사할 것을 권고한 뒤 종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장혜진 노무사(노무법인 승리)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쿠팡의 조사나 피해자 보호 노력이 부족했음을 감독 당국도 인정한 것으로 풀이된다”며 “회사가 신고를 이유로 백씨의 계약 연장 등에 불이익을 주는 추가 가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쿠팡 쪽은 “백씨가 노조 활동을 이유로 사실관계확인서 작성 강요 등 괴롭힘을 당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백씨는 기본적인 안전수칙 위반이 반복돼 확인서를 작성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쿠팡은 직장 내 괴롭힘 등을 신고할 수 있는 윤리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접수된 사안에 대해서는 철저히 조사 후 무관용 원칙으로 대처한다”고 밝혔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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