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가 처음 시행된 지난해 10월26일 대전교도소 대체복무 교육센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지난해 대체역법(대체역의 편입 및 복무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대체역 편입을 인정받은 이들은 교도소 등 대체복무기관에서 36개월 동안 합숙복무를 할 수 있게 됐다. 사진공동취재단
‘양심’을 지키는 길은 처절하다. 헌법재판소가 2018년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기소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재판과 제도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다. 병무청 대체역 심사위원회(심사위)가 출범했지만 현재 재판을 받는 이들에게는 대체역 편입신청이 쉽지 않은 선택인 만큼, 이들의 재판 절차를 중단하고 일률적으로 심사위의 심사에 맡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입영일이나 소집일 5일 전까지 대체역 편입을 신청할 수 있다. 심사위 조사관의 사실조사와 심사위원의 사전·전원심사를 거쳐 편입 여부가 결정된다. 인용 결정이 나면 대체복무를 하게 되지만, 기각되면 행정소송을 내거나 현역 복무를 해야 한다. 현역 복무도 거부하면 병역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 심사위는 지난해 6월 출범했다. 2018년 헌재 결정 이후 병무청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상대로 한 고발을 멈췄다.
문제는 2018년 헌재 결정에 앞서 병역거부 혐의로 기소된 이들이다. 이미 1심이나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병역거부자들은 대체역 편입신청을 하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법원과 심사위의 이중 심사를 받아야 하는데다, 심사위에서 대체역 편입이 결정된다 하더라도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 복역한 뒤 출소해 재복무하는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병역거부로 실형을 살았는데, 현역 복무기간(18개월)의 2배인 36개월의 대체복무를 중복으로 하게 될 수 있는 구조다.
이에 심사위는 지난해 8월 대체역 심사를 받는 병역거부자 가운데 유죄 판결 뒤 상소심이 진행 중인 이들의 대체역 심사를 보류하고, 1심 선고 전이나 무죄 판결 뒤 검찰이 상소한 이들에 대해선 공소를 취소하거나 상소를 취하하는 내용의 검토서를 법무부에 전달했다. 같은 해 7월 기준, 병역거부로 경찰 수사 중인 사건은 3건, 재판 중인 사건은 281건이었다. 유균혜 심사위 사무국장은 “검찰이 공소 취소 또는 상소 취하할 수 있는 사람은 심사위가 대체역 편입 여부를 심사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재판 절차를 중단할 수 있는지를 일률적·기계적으로 결정할 수 없다”며 “개별 사건의 구체적 사정을 고려해야 하고, 그 권한은 담당 재판부에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을 받는 이들 가운데 대체역 편입신청을 한 병역거부자들의 이중 심사가 1년째 이어진 이유다.
전문가들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재판이 아니라 심사위에서 ‘양심’을 심사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가 양심적 병역거부의 길을 마련하지 않은 병역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순간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할 근거는 사라졌다”며 “헌재 결정 이후 이들에 대한 모든 수사와 재판을 중지하고 심사위의 심사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법안에 명시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연구팀이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 연구용역을 맡아 제안한 대체복무 관련 법안 부칙에는 “법 시행과 동시에 병역거부자에 대한 재판 절차를 중지한다”,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사면과 복권, 전과기록 말소 등의 조처를 하고 특별재심 기회를 부여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전향적인 법원 판결이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남신향 판사는 지난달 양심적 병역거부자인 오수환(32)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병역거부자 가운데 처음으로 심사위에서 대체복무 대상자로 인정받았다. 남 판사는 “헌재 결정과 대체역법 제정 취지에 비춰 보면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 기회를 부여하지 않고, 병역법을 적용해 처벌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체역으로 복무할 수 있는지 심사받을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병역법을 적용해 처벌하는 것 또한 헌법에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분단국가인 한국의 현실과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징병제를 유지하는 일부 국가 사례도 참고가 될 수 있다. 징병제를 유지하는 오스트리아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민간복무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징병 대상자가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고 민간에서 복무하길 원한다고 신청하면 응급구조, 장애인 지원, 노인복지 지원 같은 사회복지 분야에 주로 투입된다. 복무기간은 현역(6개월)보다 1.5배 긴 9개월이다. 그리스도 1997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권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그리스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또한 공공서비스 분야에 주로 종사하며, 대체복무기간은 육군(9개월)보다 1.67배 긴 15개월이다. 중국과 군사적 긴장 관계에 있는 대만은 2000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 경찰, 소방, 의료,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체복무자를 활용하고 있다.
조윤영 신민정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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