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 화원들이 2020년 11월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동문 앞에서 텔레그램 ‘박사방’ 조주빈과 공범 5명에 대해 중형이 선고 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봉규 bong9@hani.co.kr
디지털 게시물을 삭제해주는 업체를 운영하는 이아무개(47)씨는 지난 5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ㄱ씨로부터 성범죄물 삭제 의뢰를 받았다. ㄱ씨는 이씨에게 자신의 모습이 담긴 영상물이 해외 음란사이트에 유포됐는데 이를 삭제를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ㄱ씨의 피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ㄱ씨는 2년 전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산하 디지털 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피해지원센터)를 찾아 국내외 사이트로 퍼진 불법 성범죄물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ㄱ씨는 당시 센터의 작업으로 자신의 영상물이 모두 삭제됐다고 생각했지만, 영상은 이내 해외사이트에서 재유포됐다. 이씨가 상황 파악을 위해 구글에 특정 키워드를 넣고 검색을 해보니, ㄱ씨뿐만 아니라 해외사이트 5곳에서 한국인 여성 10여명의 성범죄물 영상과 사진이 버젓이 올라와 있었다. 이씨는 23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피해자 요청으로 성범죄물 삭제 작업을 진행해도 비교적 제재가 덜한 해외사이트 등을 통해 재유포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가 최근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 현황을 담은 보고서를 발간해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 드러낸 가운데, 지우고 지워도 끝내 사라지지 않는 디지털 성범죄물에 피해자들의 고통은 계속 되고 있다. 텔레그램 박사방의 불법 성착취물 등을 비롯한 불법 성범죄물이 피해자의 삭제 요청 이후에도 해외 사이트에서 재유포되는 경우가 지금도 계속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 생산자와 유포·소비자를 처벌해 불법 성범죄물 유통 고리를 끊고, 피해 지원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한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는 기관 및 시민단체의 설명을 들어보면, 디지털 성범죄물은 최초 유포 뒤 관련 기관이 나서 영상물 삭제에 나서도 재유포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성범죄물 삭제는 한번 유포된 뒤 상업 용도 등으로 유통되면서 불특정 다수가 소지해 삭제를 해도 계속 유포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성범죄물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재유포가 주로 해외 사이트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국내 사이트의 경우 피해지원센터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서 삭제 요청을 하면 자체적으로 삭제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해외 사이트의 경우 사업자가 삭제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 방심위가 자체 심의를 통해 국내에서 사이트 접속 차단을 결정할 수 있지만 가상사설망(VPN)으로 우회 접속하는 경우 접속을 막을 수 없다. 이를 악용해 내국인이 해외 사이트에 성범죄물을 유포하고 판매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방심위가 5개월째 위원회 구성을 하지 못하고 있어 기본적인 역할마저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성범죄물 유포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도록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 성범죄물 유포자와 소지자를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성폭력처벌법이 개정되면서 성인을 대상으로 한 불법 촬영물 등을 소지·구입·저장·시청할 경우 처벌할 수 있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법이 개정된 만큼 수사기관이 피해자 호소 전에 적극적으로 나서 유포자, 소지자, 시청자 등을 적극적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피해자 지원 인력 확충도 필요하단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피해지원센터가 상담 및 삭제 지원을 한 피해자 수는 4973명이고, 삭제 지원 건수는 15만8760건이지만 올해 센터의 인력은 39명에 불과하다. 이 중 22명은 정규직이 아닌 기간제 인력이다. 서 대표는 “피해자는 자꾸 느는데 이를 감당할 인력이 부족하고 기간제 인력이 많아 교육으로 인한 공백도 생기고 전문성도 쌓이지 않는 문제가 있다”며 “초기 대응을 잘해야 재유포 등 피해 확산을 막을 수 있으므로 지원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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