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사관학교가 1학년 사관생도의 이성교제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생도들을 징계한 것이 인권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24일 “해군사관학교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1학년 이성교제 금지규정' 위반을 이유로 생도 47명에게 징계처분을 내린 것은 개인의 행복추구권 및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등을 중대하게 침해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해군사관학교장에게 징계처분을 취소하고, 1학년 생도와 타 학년 생도 간의 이성교제 및 1학년 생도 간의 이성교제를 금지하는 ‘사관생도 생활예규’ 규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해군사관학교 생도인 진정인은 해군사관학교가 지난해 11월4일부터 올해 1월6일까지 1학년 이성교제 금지규정 위반을 이유로 생도 47명에게 징계처분을 내린 것은 인권침해라는 진정을 제기했다. 피해자들은 인권위 조사에서 “이성교제를 했다고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라며 “징계 수위도 과실점 300점을 부과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다. 추후 해외유학, 파견, 졸업포상, 타 대학 위탁교육 등에 상당한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징계 결정 이후 매주 반성문을 제출해야 했고, 매일 지정시간에 전투복 착용 상태로 집합해 단체자습을 해야 했다. 마치 범죄자로 낙인이 찍힌 기분이었다”라는 진술도 나왔다.
이에 대해 해군사관학교 쪽은 △1학년 생도의 생도생활 조기 적응 △강요에 의한 이성교제로부터 1학년 생도 보호 △상급학년 생도의 1학년 지도·평가 시 공정성 확보 등을 위해 1학년 이성교제 금지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해군사관학교의 1학년 이성교제 전면금지는 학교 밖에서의 사적인 만남 등 순수한 사생활 영역까지도 국가가 간섭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강압에 의한 이성교제’를 엄격히 금지하는 규정이 예규에 이미 존재하고, 상급학년 생도에 대한 하급학년 생도의 ‘공정성 평가’ 비중 확대 등 기본권을 덜 제한하는 대안적 조치를 시행할 수 있다”며 “1학년 이성교제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또 규정에서 제한하는 ‘이성에게 교제를 목적으로 개인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행위의 의미가 분명하지 않아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되고, 타 사관학교와 달리 경과실 처분을 내릴 여지가 없어 비례의 원칙에도 반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피해자들에 대한 징계과정에서도 △훈육위원회 개최 전 대리인 선임권 미고지 △예규상 감경사유 미고려 및 일률적으로 과중한 징계처분으로 인해 비례의 원칙 위반 △주 1회 반성문 작성·제출 지시로 양심의 자유 침해 △징계처분 결과 시달 시 생도의 학번 노출로 인한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 등의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