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을 무시하고 짓밟은 탓에 인류의 양심을 분노하게 한 야만적인 일들이 발생했다.’ 두차례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8년, 전쟁 당시 만연했던 인권침해를 반성하는 뜻으로 프랑스 파리 국제연합총회에서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은 ‘전쟁’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인류의 뼈아픈 반성을 담은 인권선언 이후에도 야만적 전쟁은 주로 강대국의 이익에 따라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대한민국 현대사에는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6·25전쟁)이 있었다. 같은 민족끼리 벌인 전쟁으로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해 250만여명이 사망했고, 이후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로 인한 또 다른 갈등이 우리 사회에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다. 수도 서울 한복판에는 이 전쟁을 ‘기념’하는 곳이 존재한다. 전쟁을 기념한다는 건 승리한 전쟁, 그 전쟁에서의 영웅을 기린다는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곳은 1988년 설립 추진 때부터, 민족이 갈라져 서로를 죽여야 했던 비극을 ‘승리한 반공전쟁’으로 미화하려 한다는 논란을 불렀다. 1994년 개관 당시에도 언론 등에서 치욕의 역사인 동족상잔 전쟁을 기념하는 박물관을 서울 한복판에 세울 필요가 있냐는 비판이 나왔다.
우리 현대사에 한국전쟁뿐 아니라 1948년 제주 4·3 양민 학살 사건, 1980년 5·18 광주항쟁, 2014년 4·16 세월호 참사 등 ‘기억’해야 할 상처가 많다. 아픔은 기념의 대상이 아니다. 야만적인 일들로 인해 받은 상처를 기억하고 다시는 비극을 반복해선 안 된다는 간절한 바람을 가질 때, 자유롭고 정의로운 평화 세상의 토대가 마련되리라 생각한다. 어떤 작은 평화라도, 크게 승리한 전쟁보다 낫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