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민씨 사건 관련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지난달 1일,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사건 발생 현장 인근에 손 씨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이번 일 억울하게 묻히면, 정민이가 너무 불쌍해서 죄책감 때문에 어떻게 합니까. 우리 모두 부모고 자식입니다”(카카오톡 단체채팅방 ‘정의로운 나라 손정민 추모방’ 회원 ㄱ씨)
“친구 앞날과 인생이 걱정됩니다. 나이도 아직 어린데, 해명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유튜버와 유족이 있는데 그 아이가 앞날을 편히 살 수 있을지…”(카카오톡 단체채팅방 ‘친구 A 보호모임’ 회원 ㄴ씨)
지난 4월, 서울 한강공원에서 숨진 채 발견된 22살 청년 손정민씨의 죽음을 둘러싸고 개설된 두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서 각각 나온 대화의 일부다. 손씨 죽음의 진실을 묻는 사람들이 모인 ‘정의로운 나라 손정민 추모방(이하 추모방·5월10일 개설)’은 개설 초기 회원수가 1천명을 넘었지만 4일 오후 현재 468명이 활동하고 있다. 700명 이상을 웃돌던 ‘친구 A 보호 모임(이하 보호방·5월16일 개설·손씨 실종 전까지 함께 있던 친구 ㄱ씨를 보호해야한다는 모임)’ 회원수도 지금은 294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의 대화는 24시간 열띠게 이어진다. 이들 단체채팅방(오픈채팅방)은 ‘한강 사건’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각각 모여 특정 기사나 유튜브 영상에 실시간으로 반응하고, 경찰 수사 방향 등에 대해 활발하게 토론한다. 친구 ㄱ씨에 대해 극단적으로 갈린 여론과 경찰 수사에 대한 시민들의 마음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다. <한겨레>는 경찰이 “범죄와 관련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5월27일 이후인 6월1일∼29일 사이 손씨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추모방’과 친구 ㄱ씨의 편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보호방’ 이용자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을 분석해 이들이 왜 한강 사건에 몰입하는지 살펴봤다. 시민들은 왜 손씨가 죽음에 이른 경위와 당시 동석했던 친구 ㄱ씨의 행적을 둘러싼 ‘진실찾기’에 이토록 열광적인 반응을 보일까.
■ ‘분노’와 ‘정의감’이 이들을 모이게 했지만…
<한겨레>는 지난 6월1일∼29일 사이 손씨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추모방’과 친구 ㄱ씨의 편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보호방’ 이용자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을 분석했다. 대화방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해 재구성 했다.
‘추모방’과 ‘보호방’ 회원들이 대화방을 찾은 이유는 각각 다르지만, 이들의 마음을 설명하는 열쇳말은 비슷하다. ‘분노와 정의감.’ 추모방 회원은 손씨의 입장에서, 보호방 회원은 친구 ㄱ씨의 입장에서 현실이 정의롭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추모방 회원들은 유족과 유튜버들이 제기해 온 ‘타살 의혹’을 뒤로 한 채 ‘타살 혐의점이 없다’고 보는 경찰 수사와 언론, 무관심한 정부 모두 정의롭지 않다고 비판했다. 지난 6월20일 ‘추모방’ 대화에 참여한 ㄷ씨는 “그동안 정부와 경찰을 믿고 살아왔는데 믿어지지 않는다. 21세기를 살아가는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경찰은 반성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올바른 길을 가기를 촉구한다”고 적었다.
한강 사건의 ‘진실 규명’에 손을 걷어부친 회원들은 손씨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믿음’과 실제 세계가 한강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다르다며 일종의 ‘아노미(혼란)’를 느끼는 모습도 보인다. “이렇게 무서운 세상인 줄 몰랐다. 서울 한복판에서 발생한 일의 진실을 밝히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6월17일)”라거나 “이번 사건의 진실이 안 밝혀지면 2차, 3차 피해자가 생길까 봐 걱정이다. 억울한 죽음을 당해도 무조건 실족사인 이런 나라를 원하느냐고 묻고싶다(6월12일)”는 등의 반응이다.
이러한 생각은 타살 의혹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유튜버들이 ‘정의로운 존재’라는 인식으로 연결된다. 6월25일 ㄹ씨는 “(유튜버들이) ‘정의’를 밝혀주고 실험도 해주고 뛰어다니면서…집회도 열어줘 (이를) 감동 있게 본 사람이다. 관심 사라지지 않게 구독도 하려고 한다”고 했다.
반면 친구 ㄱ씨를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호방’의 회원들은 추모방과 반대로 수사기관의 수사를 신뢰하고, 법에 따른 원칙과 이성을 유독 강조했다. 이를 수용하지 않은 채 ㄱ씨에게 책임을 묻는 유튜버와 일부 시민들을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회원이 들어올 때마다 ‘방장봇(운영 로봇)’은 ‘이 방은 법치주의 국가의 정신을 준수한다’며 ‘무죄추정의 원칙, 증거재판주의에 따라 친구를 신상털기, 명예훼손, 모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공지를 안내한다. 6월27일 처음 보호방에 들어온 ㅁ씨는 “타살과 실족설 중 어디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중립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한강에서 친구를 상대로 ‘범인몰이’를 하는 집회를 보고 이들이 선을 넘었다고 판단해 보호모임에 참여했다”고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겨레>는 지난 6월1일∼29일 사이 손씨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추모방’과 친구 ㄱ씨의 편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보호방’ 이용자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을 분석했다. 대화방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해 재구성 했다.
‘추모방’ 회원들의 대화는 유튜버들이 한강공원 일대와 손씨와 친구가 오간 편의점, 진입로 등을 비춘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분석한 내용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집중됐다. 더는 경찰 수사결과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눈으로 직접 확인이 가능한 영상을 신뢰한다. 이들이 경찰서와 방송국, 한강공원을 오가며 ‘CCTV 전면 공개’를 요구하는 것도 경찰이 ‘숨긴’ 정보를 찾아 진실을 찾겠다는 의도와 맞물린다. 6월15일 한 회원이 “유튜버(○○○)의 분석을 추천한다”며 “경찰이 작정하고 정보를 틀어쥐고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온전한 정보가 없는 유튜버와 시민들은 부분적 정보를 토대로 추측하면서 궁리할 수밖에 없다. 프락치나 몇몇 유튜버가 혼동을 주면서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어 더 넓게 열어두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것도 경찰에 대한 짙은 불신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흐릿한 영상 속 불특정 다수의 움직임을 ‘해석’ 하고 영상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의 공백을 메꾸는 과정에서 사건과 관련 없는 인물들의 사진이 유포되거나 신상이 공개되는 일도 꾸준히 발생했다. 손씨가 실종된 당일 토끼굴을 오가는 행인들의 동선을 쫓은 사람들이 손씨 일행과 동선이 겹쳤던 한 남성의 시시티브이 행적을 제시하며 그가 손씨의 죽음에 연루됐다는 추정을 내놓은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이를 믿은 회원들은 손씨 주변 인물 중 해당 남성과 닮은 사람들을 찾아내려 애썼고, 사건 관련성도 확인되지 않은 남성의 옷차림을 따 별칭으로 부르며 그의 사진을 수일간 지속적으로 올렸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추측에 근거한 신상유포 등의 행위를 ‘디지털 자경주의’의 한 형태로 설명한다. 법과 규칙을 위반하거나 비난받을 행동을 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스스로 심판하거나 응징하는 ‘자경단’이 사이버 공간에 출현했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 발달로 시민들이 손쉽게 의견을 내고, 국민청원과 같이 참여 활동을 할 수 있는 수단이 많아진 현실 속에서 ‘자경단’ 성격을 띠는 활동들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흐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추모방 회원들은 “우리도 유튜버 거를 줄 안다, 몇몇 아주머니들이 ‘유튜브만 믿는다’고 말한 것 가지고 모두가 유튜브만 믿는다는 식으로 한 건 너무 짜증났다(6월1일)”고 하거나 “각 유튜버마다 역할이 있고, 그게 (나와) 방향이 다르다고 해서 비방하는 건 소모적이다. 각자 믿기 싫은 유튜버 의견은 안 믿으면 된다(6월25일)”며 자신들을 과도한 의혹 제기를 하는 일부 유튜버와 동일시하는 것에 거부감을 보인다.
■ ‘추모방’ 활동에 분노…“친구 위해 고소 도와주자”
반대로 친구 ㄱ씨가 부당한 공격을 받고 있다고 여기는 보호방은 ㄱ씨를 비난하는 이들을 비난하고, 명예훼손성 댓글이나 게시글을 수집해 ㄱ씨 쪽에 소송 자료로 제공한다. 이 또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행위가 매우 부적절하다고 여길 때 행동을 취하는 ‘디지털 자경단’의 성격을 가진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특히 5월31일을 기점으로 친구 ㄱ씨 쪽 변호인이 나서 ㄱ씨 가족 등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에 엄정 대응한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뒤부터는 보호방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ㄱ씨와 관련된 각종 커뮤니티 게시글과 댓글 및 유튜브 영상 자료를 수집하는 활동이 본격화됐다. 이에 ㄱ씨 쪽 변호인이 받은 악성 댓글 등에 대한 제보 메일은 2300여건에 달한다. 보호방 한 회원이 “이 정도 수준도 고소 될까요? 꼭 처벌받게 하고 싶어요. 실명 깐(밝힌) 건 당연히 피디에프(파일로) 땄고요”라는 질문에 “저 정도면 당연히 보내요 저는. 저거보다 낮은 수위도 다 보냈어요”라며 제보를 독려하고, “제가 가는 비공개 카페들도 모두 피디에프 따고 있다. 극소수 악질 코난(만화 <명탐정 코난> 주인공)들이 물 흐리는 걸 더 못 봐주겠다”며 ‘사이버 레커’(이슈가 터졌을 때 실시간으로 영상을 만들어 조회수를 올리는 유튜버)와 악성 댓글 게시자들에 대한 ‘응징’을 예고하는 답들이 이어졌다.
‘반포한강사건 진실을 찾는 사람들(반진사)’ 회원들이 지난 5월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경찰서 앞에서 고 손정민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경찰에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을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개인들이 심판과 응징에 나서는 과정에서 일부 회원들 사이에서는 ‘혐오 정서’가 발견되기도 한다. 친구 ㄱ씨에게 유리한 댓글을 쓰는 작성자는 ‘조선족’이고, 손씨 사건을 움직인 권력의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음모론’은 ‘추모방’에서 주기적으로 등장했다. 6월 중순 한 회원이 한강 사건 수사 종결을 요구하는 누리꾼의 댓글을 공유하자 “(악플을 단) 사람들 정말 한국인일까요. ‘중국인이나 조선족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드네요”라고 하거나 “조선족이랑 무슨 대화를 하겠나, 지긋지긋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손씨 타살설을 부정하는 집단은 모두 ‘조선족’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다.
‘오픈채팅방’ 이라는 동일한 플랫폼에 모인 추모방과 보호방 회원들은 서로의 방을 염탐하며 동향을 파악하고, 때론 ‘조롱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혐오발언’은 더욱 거세진다. 추모방 회원들이 보호방 회원들을 향해 “저 방 (사람들) 모두 조선족에 (댓글) 파트타임 알바를 하는 것”이라고 조롱하면, 보호방 회원들은 손씨 타살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중년 여성’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식이다. 6월초 ‘보호방’ 성향으로 추정되는 한 회원은 추모방에 들어와 회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중 “40대 XXX들은 답이 없다. 그러니까 너네가 ‘맘충’인거야”라는 욕설을 내뱉은 뒤 방을 퇴장했다.
‘상대편(추모방)’을 향한 조롱은 보호방 대화의 주요한 주제다. 보호방 운영자가 “특정 세대나 성별에 대한 일반화는 이 방 구성원들 간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며 경고를 주는 등 자정 노력을 보이기도 했지만 혐오성 발언을 차단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이들은 추모방 회원들을 향해 ‘타살충(손씨 타살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벌레로 깎아내리는 말)’이나 ‘아줌마(손씨 사건과 관련해 관심도가 유독 높은 중년 여성들 대상)’로 수시로 조롱한다. 한 회원은 보호방에서 손씨 사망을 둘러싼 가설을 비판하며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아줌마들 망상이다. 드라마를 많이 봐서 상상력이 풍부해서 그런다”라고 말해 다른 회원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 ‘타살 혐의점 없음’ 발표됐지만…끝나지 않는 대화방
경찰은 손씨 사망에 타살 혐의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수사는 계속 진행중이다. 6월29일 내·외부위원이 참석한 변사심의위원회(심의위)에서 손씨 사건을 내사종결하기로 했지만, 앞서 6월23일 손씨의 유족이 친구 ㄱ씨를 폭행치사·유기치사 혐의로 고소하면서 수사는 계속된다.
6월29일 심의위 결정에 두 오픈채팅방은 정반대로 갈렸다. 추모방 회원들은 분노하며 “국민을 우롱한 것이다”, “아버님이 얼마나 아프고 속상하실지 세상 욕을 다 해도 모자랄 정도로 화가 난다”, “무능력한 서초(경찰)서가 손을 떼고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보호방 회원들은 “친구와 친구 가족분들 고생 많이 하셨다. 이제 적극 대응하길 바란다”고 적거나 손씨 유족이 친구를 고소한 것과 관련해 “고소의 의도가 매우 의심된다”, ”설령 검찰이 수사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반응했다.
두 오픈채팅방 회원들의 ‘전쟁’은 계속된다. 6월29일 이후에도 ‘보호방’ 회원들은 “이제 친구가 상처를 딛고 일상을 찾았으면 한다”고 안도하면서도 지금까지 나온 가짜뉴스, 유튜브 영상 등을 공유하며 ‘감시 활동’을 이어갔다. 반대로 ‘추모방’에서는 “(진실을) 숨기려는 자들을 보고 있으니 너무 화가 난다”며 비난 의견이 빗발쳤다. 경찰 수사가 끝나지 않은 만큼 지속적으로 사망 경위를 추론하는 커뮤니티 게시글과 영상은 물론 집회 참여와 국민청원 주소를 올리며 꾸준한 관심을 촉구했다.
이들의 공격이 무고한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기존 언론과 수사 기관에 대한 불신을 심화하는 것으로 연결되는 건 경계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박영흠 협성대학교 교수(미디어영상광고학 전공)는 “우리 사회는 언론, 수사기관에 대한 신뢰가 낮은 저신뢰 사회이기도 하다. 이런 불신에 더해 유튜버가 시민들이 품고 있던 의혹의 불씨를 키우고 부채질한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디지털 자경주의는 자신과 대립하는 적에 대한 증오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주관적이고 임의적인 기준으로 벌이는 자의적 심판은 정당화될 수 없고, 군중심리에 휩쓸려 끔찍한 혼란과 피해를 양산할 수 있다”고 짚었다.
지난 3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반포한강사건 진실을 찾는 사람들’ 주최로 열린 ‘경찰 최종 수사보고서 대국민 공개 및 서초경찰서장 사과 요구’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 유튜브 채널 ‘종이TV’ 갈무리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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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 관련 경찰 설명자료(5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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