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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항일 투사들의 꿈 ‘삼균주의 이념’ 알리려 평생 분투하셨죠”

등록 2021-07-11 18:40수정 2022-03-17 12:06

[가신이의 발자취] 조만제 삼균학회 이사장을 보내며

지난 9일 세상을 뜬 조만제 삼균학회 이사장. 사진 유족 제공
지난 9일 세상을 뜬 조만제 삼균학회 이사장. 사진 유족 제공

삼균주의 만든 조소앙 후계자이자

48년 남북협상 참여 유일 생존자

지난 9일 98살 일기로 세상 떠

삼균주의 학생 대표로 남북협상에

협상 결렬 뒤 삼균주의청년동맹 설립

백범 암살 뒤 조소앙 권유로 일 밀항

75년 학회 만들어 ‘삼균 사회’ 꿈꿔

삼균주의 정치이데올로기를 만든 일제강점기 항일지사 조소앙(1887~1958) 선생의 후계자이자 1948년 남북협상 참여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조만제 삼균학회 이사장께서 7월9일 향년 98살로 생을 마감하셨다. 고인은 서울대 상대 재학 시절 만난 조소앙 선생에 감화되어 평생 그의 유지를 받들고 선양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냉전의 남북 분단 상황 속에서 잊힌 정치사상이 되어 버린 삼균주의를 끝까지 지키고 고군분투하며 사신 분이 세상을 뜬 것이다.

고인은 1948년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단독 선거가 추진되자 이를 반대한 김구, 김규식, 조소앙 선생들과 함께 평양에 올라가 남북협상에 참여한 열혈 청년이었다. 그의 죽음으로 이제 해방정국의 남북대화는 기록으로만 남게 됐다. 당시 삼균주의 사상에 매료된 청년층이 만든 삼균주의학생동맹 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한 대학생 2명 중 한 명이 조만제였다.

그는 남북협상이 좌절된 뒤 분단 조국에 각기 단독 정권이 수립되자 조소앙 선생의 지시에 따라 삼균주의청년동맹을 결성하고 통일정부 수립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1949년 6월에 백범 김구가 암살되고 임시정부 요인들 모두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에서 조소앙은 숙질 관계이자 가장 아끼던 조만제에게 후일의 도모를 위해 몸조심을 당부해, 그해 10월 일본으로 밀항한다. 일본에서 도쿄대학 경제학부에 편입한 조 이사장은 1953년 졸업했지만 귀국할 수 없었다. 이승만 정권에 대항할 소지가 있는 인물로 찍혔기 때문이다.

고인은 1960년 4·19혁명 뒤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그가 조국에 없던 10여년은 전쟁과 독재, 그리고 존경하던 스승 조소앙의 납북(북 표현은 ‘모시기 작전’)과 북에서의 사망 소식 등으로 점철된 세월이었다. 다시 스승의 유지를 이으려 정치, 경제, 교육이 균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삼균주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던 중 5·16 쿠데타가 터져 또다시 암흑 세상이 됐다. 삼균주의의 ‘삼’자도 꺼낼 수 없던 엄혹한 시절에도 그는 삼균이 실현되는 사회를 꿈꾸며 보냈다. 그 결실이 1975년 개천절을 기해 창립된 삼균학회였다. 학술연구단체여야 독재 정권의 감시 눈을 벗어날 수 있었기에 선택한 고육책이었다.

이후 삼균주의 이데올로기 연구는 상대적으로 위험성이 덜한(?) 역사학에 집중되었고 정치사회운동으로는 확대하지 못했다. 1979년 나온 <소앙선생문집>과 1983년부터 해마다 발행한 <삼균주의연구논집> 등은 모두 고인의 손때가 묻은 성과물들이었다. 고인은 지난 2006년 독립지사 후손들의 평양 성묘 방문 때 조소앙 선생의 유족을 대표해 신미리 애국열사릉의 소앙 선생 무덤 앞에서 펑펑 우셨다는데, 그 회한을 누가 알 수 있을까.

필자가 조 이사장을 처음 뵌 것은 1980년대 후반 석사 논문을 준비하던 때다. 어디서 주워들은 조소앙, 삼균주의 그리고 삼균학회라는 단편적인 지식만 가지고 을지로 인쇄 골목 안 깊숙한 곳에 위치한, 4층인지 5층인지, 컴컴한 인쇄기 옆에 책상만 놓고 있었던 삼균학회 사무실에서였다. 인자한 표정의 고인은 당시 조소앙 직계 후손들과 함께 경영하던 인쇄소 한쪽을 삼균학회의 사무 공간으로 사용하며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의 인자한 눈 속에 숨어있는 아픔과 슬픈 마음이 당시 보여서인지, 이후 조소앙과 삼균주의는 나의 학문적 화두가 되었다.

고인으로부터 우리 현대사의 이면을 들으면서 교과서 밖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남쪽에서는 사회주의라고 공격당하고 북에서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라고 평가절하된 삼균주의는 남북 모두로부터 외면당한 불우한 정치사상이었다. 그러나 바로 80여년 전 중국 내 독립전선에 나섰던 수많은 좌·우파 독립운동단체들이 한결같이 수용한 정치이념은 오로지 삼균주의였다. 그만큼 좌우익 모두가 수용 가능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는 것이다. 경직된 사고가 아닌 유연한 사고와 이면을 읽을 수 있다면 삼균주의는 여전히 통일 이데올로기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고인이 평생 꿈꿨던 세상은 바로 조소앙이 꿈꾼 세상이고 항일지사들이 희망한 독립된 조국의 미래상이었다. 마침 올해 11월28일은 조소앙이 기초한 임시정부의 건국강령 제정 80주년이다. 조 이사장께서 반드시 그날 단상에서 힘차게 건국강령을 낭독하시며 못난 후배들을 독립지사를 대신해 꾸짖어 주셔야 했는데….

이제 고인의 꿈은 후손들에게 넘겨졌다.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넘어서 개인 간의 균등, 민족 간의 균등과 국가 간의 균등이 실현되어 세계일가(世界一家)가 실현되는, 인류 모두가 희망하는 세상 말이다. 다행히 4년 전에 창립된 조소앙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 조인래) 중심으로 소앙문집의 재출간과 전집 발행의 기획이 추진되고 있어 완성되면 영전에 바칠 수 있게 되었다. 부디 조 이사장님 하늘에서 평생 흠모해 오셨던 소앙 선생님 만나셔서 그동안의 성과도 보고하시고 후배들이 대를 이어 노력하고 있음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한 시대의 질곡을 헤쳐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이젠 마음 편히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임형진/삼균학회 회장,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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