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학생자치위원회 선거 후보자 공약과 연설문을 사전에 제출받아 검토하고 수정할 것을 지도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13일 “교사가 학생회 선거 후보자 공약과 연설문을 사전에 제출받아 검토하고 수정할 것을 지도한 행위는 표현의 자유 등 학생 인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ㄱ중학교장에게 학생회 선거 시 교사가 후보 공약과 연설문을 검토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교사가 학생회 선거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삭제하는 등 학생회 선거관리규정을 마련해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ㄱ중학교 2021년도 학생회 선거 후보자로 출마한 진정인은 학생생활안전부에서 자신의 공약과 연설문을 사전 검토하면서 공약 일부를 삭제해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당했다고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진정인이 제시한 공약에는 교칙 개정과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학생생활안전부 교사는 “교칙 개정은 절차에 따라 개정할 수 있는 사안인데, 마치 후보자가 당선되면 학칙을 개정할 수 있는 것으로 학생들이 오인할 수 있다”고 판단해 진정인에게 해당 사항을 수정할 것을 권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학교 쪽은 “공약 및 연설문에 대한 검토는 후보자로 출마한 학생이 장차 미래사회 민주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소양을 지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자칫 혼탁해지기 쉬운 선거운동에 대해 사전적 처방을 함으로써 민주적 질서가 지켜지는 공정한 선거가 되도록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교사의 행위가 교육적 차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사실상 후보자의 공약과 연설문 내용을 제한하는 그릇된 관행”이라며 “교육을 빌미로 아동이 누려야 할 표현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인권위는 “선거를 통해 후보자로 출마하거나 유권자로 투표에 참여하는 과정은 학업이나 교과활동을 통해 배우기 어려운 정치사회화 과정으로서 민주시민의 역량을 습득하는 기회가 된다”며 “오늘날 선거에서 후보자가 제시한 공약과 연설문을 유권자가 스스로 판단하듯이, 학생 또한 공교육에서 배운 지식과 정보통신기술을 통해 습득한 정보를 이용해 학생회 선거 후보자의 공약과 연설문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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