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한 물류센터에서 물품 포장 업무를 하는 ㄴ씨가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근무를 마친 뒤 퇴근해 찍은 티셔츠 모습. 계속 흐른 땀 탓에 소금기가 피어올랐다. ㄴ씨 제공
연일 폭염 경보를 알리는 안전 안내 문자가 울리는 가운데,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코로나19로 늘어난 물량을 처리하며 선풍기에 의지해 더위와 싸우고 있다. 열기로 가득 찬 물류센터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누구 하나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19일 <한겨레>가 만난 쿠팡 동탄·인천·고양물류센터 소속 노동자들은 주·야간 근무 시간과 상관없이 마스크를 쓴 채 30도가 넘는 고온의 노동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주간조에서 근무하는 계약직 노동자 ㄱ씨는 천장에서 돌아가는 실링팬과 중대형 선풍기 바람에 더위를 버텨보려 하지만 그마저도 ‘그림의 떡’일 때가 많다고 했다. 실링팬과 선풍기로는 열기가 쉽사리 빠져나가지 않고, 업무에 따라 선풍기 바람이 닿지 않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ㄱ씨는 “상하차 업무를 하는 1층은 공간이 바깥으로 뚫려 있어서 바람이 불어 그나마 낫다. 하지만 2∼4층은 모두 막혀 있는 구조라 열이 그대로 갇혀 있다. 원래 창문도 못 열게 했었는데 노동자들이 요구해서 열게 해 줬지만 그마저도 효과는 없었다”며 “진열된 물건을 수시로 꺼내 와야 하는 공정을 맡은 사람들은 몇만보를 걸어 다녀야 하니 마음 놓고 선풍기 바람을 쐴 수도 없다. 물건이 쌓인 선반들 틈에서 진열 작업을 하는 근무자들은 바람이 닿지 않아 선풍기가 그림의 떡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끼리는)차라리 누가 쓰러지면 회사에 에어컨 설치라도 요구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농담도 나눌 정도”라고 씁쓸해했다.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일하는 야간조 근무자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자들은 한낮에 물류센터 내부에 축적된 열기가 야간까지 지속된다고 토로했다. 민병조 쿠팡 물류센터 지회장(동탄물류센터 소속)은 “(야간조가) 들어갈 시점에도 이미 현장은 찜통이다. 선풍기로는 더운 열기를 못 빼내는데 철판으로 된 구조물 때문에 복사열이 빠져나가질 못하는 것 같다”며 “동탄 센터는 최근 덕평센터 화재 뒤 멀티탭을 없애면서 원래 꽂혀 있던 에어서큘레이터를 쓰지 못하는 직원들도 많아졌다”고 전했다. 물류센터 야간 근무자 ㄴ씨도 “밤 10시20분 시작되는 식사 시간을 마치고 오면 물량이 쏟아질 정도로 많이 쌓여있지만 휴게시간은 밥 먹을 때 말고는 없다. (이 시간대에) 일을 하다 보면 두통에 무기력증 등 열사병 증세까지 느껴진다”고 말했다.
10여개의 축구장이 들어설 정도로 규모가 큰 물류센터에서 더위에 가장 취약한 곳은 한 층을 여러 층으로 쪼개 복층 구조로 만든 진열대 구역이다. ㄷ씨는 “복층에는 택배 물량이 두 배 이상 더 많이 들어가지만 구조물이 모두 철판으로 돼 있어 열이 순환되질 않는다. 천장형 선풍기와 실링팬으로 더위를 식히곤 있지만 역부족”이라며 “마스크를 쓰고 일하느라 숨이 턱턱 막혀 더 힘들다. 더위 때문에 중간에 조퇴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대부분 계약직 신분인 이들은 일하는 중에 잠시나마 멈춰 선풍기를 쐬고 싶어도 “눈치가 보인다”고 털어놓는다.
휴게실에는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만 휴게시간 자체가 빠듯해 더위를 식히기엔 역부족이다. 노동자들은 손 선풍기라도 반입이 허용되길 바라지만, 안전 등을 이유로 그동안 제한됐다. 다만 최근 고양물류센터의 경우 한달 반(7월16일∼8월30일) 동안 끈 없는 선풍기와 방풍조끼, 이온음료 반입을 허용했다. 민병조 지회장은 “동탄은 지난주부터 탈수방지를 위해 0.5리터 얼린 생수를 지급한 것이 전부”라며 “지난 봄 방풍조끼를 지급하겠다며 회사에서 사이즈 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뒤로는 감감무소식”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쿠팡은 “실외노동자들에게는 밀짚모자나 냉매조끼 등을 지급한다. 실내외 노동자에게는 쿨스카프, 넥선풍기, 쿨토시, 얼음물, 포도당, 선크림 등을 지급한다. 실내 냉난방설치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또 “물류센터 현장에는 선풍기, 에어서큘레이터 등 수천여개 시설이 가동 중이며, 개폐 가능한 창문은 모두 열어두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온의 실내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정부 차원의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안전 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보면 주로 옥외노동이나 고열작업을 하는 노동자에 대한 작업 관리와 휴식 제공 내용이 담겨 고온 환경에 노출된 실내 노동자를 위한 대책은 부족한 실정이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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