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조아무개씨가 군 생활 중 작성한 일기장. 강경화씨 제공
“국가에서 아들을 데려갔으면 다시 건강하게 돌려보내 줘야 할 책임이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군대는 아들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며 자기 조직을 보호하는 데만 급급한 것 같아요.”
19일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강경화(55)씨의 목소리는 떨렸다. 2년 전 군에 보낸 아들을 잃은 그는 이날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서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결정을 받아낸 참이었다.
아들 조아무개씨는 대학에 다니다 2019년 1월 육군에 입대했고, 3월 자대 배치됐다. 배치받은 지 채 넉 달이 지나지 않은 7월6일, 휴가를 나온 조씨는 다음날 새벽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같은 해 12월 육군본부 전공사상심사위원회는 조씨의 죽음을 ‘일반사망’으로 결론 내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일반사망’이라는 군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머니는 조씨가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것은 군 복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입대 전엔 대학에서 친구들이랑 곧잘 어울렸고, 집에서도 밝은 모습이었어요. 군대에 간 뒤 제게 ‘간부들이 병사들에게 화를 내고 괴롭힌다’, ‘간부라고 해서 마시는 물도 내가 떠다 줘야 하나’, ‘잠을 잘 못 자고 있다’는 말을 종종 했어요.” 조씨가 군 생활 중 작성한 일기장에는 ‘7월 중 휴가 가면 정신과 가봐야겠다. 진짜로’, ‘어제 텐션 높았는데 기적같이 우울해졌다. 물론 다 군대 때문이다. 망할 군대. 케이블타이로 묶여 막혀있는 느낌이다’, ‘낮잠이든 밤잠이든 편하게 잘 수 없다. 여기서 불면증 얻어나가는 것만은 아니었으면’, ‘몸은 쉬었어도 정신이 편치 못했으니 자존감이 정말 바닥이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에 강씨는 “피해자가 부대원과 간부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해왔다”며 “사망의 근본 원인은 군의 병력관리 소홀이므로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군 복무 중 사망한 피해자의 사망을 일반사망이 아닌 순직으로 판정해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해달라”고 지난 4월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이날 “입대로 인한 피해자의 환경 변화, 정신적·심리적 어려움 가중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표면적으로 나타난 피해자의 직무수행 상황만 고려해 피해자를 일반사망으로 판정한 것은 국가가 장병의 생명과 안전의 보호 등 기본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며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기간 중 사망한 피해자의 명예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국방부 장관에게 피해자의 순직 여부를 재심사할 것을 권고했다.
조사 결과 인권위는 군 간부들이 피해자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 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피해자는 2019년 1월 시행한 육군훈련소 복무적합도 검사, 4월 시행한 자대 복무적응도 검사에서 양호 판정을 받았지만 ‘잠재적 스트레스’가 식별됐다. 6월 시행한 관계유형검사에서는 ‘대인관계 어려움’이 식별돼 본부대장과 면담을 했으나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상담 등의 추가 조처는 없었다. 해당 부대는 병영생활전문상담관을 배치하지 않고 있다가 조씨 사망 뒤인 11월에야 1명을 채용했다.
인권위는 “피해자가 입대 전인 2017년 5월 대학교 상담센터에서 실시한 인성검사에서 ‘심리적으로 두드러지거나 위험 가능성은 없음’의 결과를 받았음을 고려해보면, 피해자의 심리적 어려움은 입대 후 발생했거나 강화됐다고 볼 수 있다”며 “이와 같은 상황에도 군은 피해자의 자살위험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고, 병영생활전문상담관마저 인력 운용상의 이유로 사고 이후 배치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권위는 △피해자가 6월 당직근무를 3회 연속 부과받아 피로감을 느끼고 이를 일기장 등에 기록한 점 △생활관 내 햇살로 인한 수면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블라인드 커튼 교체를 요청했지만 군이 응하지 않은 점 △피해자가 일기장에 군 복무 이행 관련 고립감과 우울감 등 힘든 내용을 기재한 점 등도 인정했다. 다만 인권위는 피해자가 부대원과 간부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진정에 대해서는 이를 인정할 객관적인 사실이나 정황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각하했다.
강씨는 “아들이 정신적 고통을 상담할 병영생활전문상담관이라도 있었다면, 생활관의 환경이 개선돼 잠이라도 제대로 잘 수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며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