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한겨레> 자료 사진
법무부가 국정농단 사건으로 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9일 가석방하기로 결정한 것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경제상황과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말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전통적 지지층의 반발에도 이 부회장의 사면 및 가석방을 요구해온 재계의 요구에 응답함으로써, 투자와 고용을 끌어내 임기 말 국정동력을 회복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통령 고유 권한인 특별사면과 달리, 가석방은 법무부 장관의 결정 사항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이 덜하다는 점도 이번 결정의 배경으로 꼽힌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이날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결정하며 밝힌 표면적인 이유는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국가적 경제상황과 글로벌 경제환경 악화’로 요약된다. 박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가적 경제상황과 글로벌 경제환경에 대한 고려 차원에서 이 부회장이 (가석방) 대상에 포함됐다”며 “사회의 감정과 수용생활 태도 등 다양한 요인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혜 시비를 의식한 듯 “복역률 60% 이상의 수용자들에 대해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가석방 심사의 기회를 부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진보 진영의 반발에도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결정한 것을 두고 ‘결코 불리할 게 없다는 정치·경제적 셈법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기 말 경제 활성화가 중요한 상황에서 기업들의 협조가 절실한데다, 세계적으로 반도체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한국의 대표적 기업인 삼성전자의 국가경쟁력 등을 정부가 고려하지 않을 순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장기화로 국민들의 피로감이 커진 상황에서, 정부가 이 부회장 가석방을 통해 경제 살리기에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도 전략적 판단의 요소가 됐을 것”이라며 “지금보다 경제가 더 나빠지면 여권은 대선에서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사면에 견줘 정치적 부담이 덜하다는 점도 가석방 이유로 거론된다. 사면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어서 대통령이 책임을 피할 수 없지만, 가석방은 법무부 장관 소관인 만큼 정치적 책임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과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 요구는 대통령 입장에서 부담이 있지만, 가석방은 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이 부회장의 가석방 결정을 앞두고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아온 것도 이런 분석에 무게를 더한다.
이날 가석방심사위원회와 법무부 장관의 결정으로 이 부회장이 오는 13일 가석방되지만, 그가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5년간 취업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경영 복귀를 하기 위해선 법무부 특정경제사범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박 장관은 이날 취업 승인과 관련해 “생각해 본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또 가석방은 형을 면제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거주지 제한 등 일정한 준수 사항이 따르고 통상 보호관찰을 받게 된다. 가석방 상황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가석방 효력은 정지되고 다시 형이 집행될 수 있어, 이 부회장의 남은 재판 결과가 또 다른 변수가 될 수도 있다.
손현수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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