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을 앞둔 이기택 대법관 후임으로 오경미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고법판사가 임명 제청됐다. 오 고법판사가 최종 임명되면 현직 법관 중에서 고법 부장판사를 거치지 않은 첫 대법관이 탄생한다. 오 후보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하는 13번째이자 마지막 대법관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오 고법판사를 대법관 후보자로 임명제청했다고 11일 밝혔다. 오 고법판사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법관에 임명되면, 여성 대법관은 4명으로 늘어난다. 현재 대법원장과 13명의 대법관 가운데 여성은 박정화, 민유숙, 노정희 대법관 등 3명이다. 앞서 2018년 8월부터 김소영, 박정화, 민유숙, 노정희 대법관 등 4명의 여성 대법관이 재직한 적 있으나, 그해 11월 김소영 대법관이 퇴임하면서 3개월만에 여성 대법관의 수는 3명으로 줄었다.
대법원은 “오 고법판사는 사법부 독립과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 대한 의지, 사회적 약자·소수자 보호에 대한 신념 등 대법관으로서 자질을 갖췄고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단 능력과 폭넓은 법률 지식 등을 겸비했다”고 밝혔다.
오 고법판사는 전북 익산 출신으로 이리여고와 서울대 사법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서울지법 판사로 임관해 법원도서관 조사심의관, 사법연수원 교수, 부산지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판사 등을 지냈다. 그는 법원 젠더법연구회 내 소모임인 ‘인터뷰단’과 ‘재판다시돌아보기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또 엔(n)번방 사건 등 디지털 성범죄 연구를 위해 대법원 산하 커뮤니티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맡는 등 이 분야 연구에 성과를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 안에서는 뛰어난 실무능력과 다양한 연구활동으로 실력은 물론 동료 법관들로부터 신망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대법원장이 추진한 ‘대등재판부제도’ 정착에 기여했으며, 지난 2월에는 박상옥 대법관 후임 후보 15명에 들기도 했다.
오 고법판사는 양성애자라는 이유로 체포 등 위협을 받다가 한국에 입국한 우간다 여성의 난민 지위 소송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학내 집단 따돌림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중생 사건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가해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려 주목을 받기도 했다. 화학약품 운반선에서 일한 항해사의 두드러기 증상이 직무상 질병이라고 인정해 화학약품 운반선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2020년 전북지방변호사회의 법관평가에서 우수 법관으로 뽑히기도 했다.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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