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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밀린 임금 주세요” 말 꺼냈다가 ‘추방’ 몰리는 이주노동자들

등록 2021-08-12 04:59수정 2021-08-12 07:11

태국인 노동자들, 수천만원 체불로 노동부 진정
노동청에 들이닥친 경찰, 사장이 절도혐의로 신고
구금·추방되면 떼인 임금 받을 길 ‘막막’
“구금·추방조치 전 구제받을 기회 보장해야”
경기도 한 공장에서 작업 중인 이주노동자.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한겨레> 자료사진
경기도 한 공장에서 작업 중인 이주노동자.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한겨레> 자료사진

한국에서 3년여 동안 일한 태국인 ㄱ(30)씨는 지난 4월 사업주에게 퇴직금을 달라고 했다가 충격을 받았다. ㄱ씨가 취업비자 없이 일한 ‘불법체류자’이니 퇴직금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ㄱ씨가 ‘밀린 임금을 받게 해달라’며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넣자, 사업주는 ㄱ씨가 노동청에 진술하러 나오는 날 그를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ㄱ씨가 취업비자 없이 한국에 머문 사실을 확인하고 그를 외국인보호소로 넘기겠다고 통보한 상태다. ㄱ씨는 노동부 조사가 끝나기 전에 추방돼 돈을 받지 못하게 될까봐 불안해하고 있다.

ㄱ씨처럼 임금 체불로 노동부에 권리구제를 요청했다가 사업주 신고 등으로 불법체류 사실이 드러나 추방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해, 이주노동자들이 관련 조사를 받는 동안 구금·추방 등을 유예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1일 <한겨레>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ㄱ씨 등 태국인 이주노동자 4명은 지난 5월 노동부 천안지청에 충남 천안의 한 농산물 가공 공장 사장 ㄴ씨를 임금체불로 신고했다. 천안지청에 제출된 진정서를 보면, 이들은 각각 1~3년가량 이 공장에서 일한 뒤 올 4월 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만뒀다. 이들 4명이 주장하는 체불액은 퇴직금·연차수당·최저임금 등 모두 약 7천만원에 이른다. 이들을 돕는 장혜진 노무사(노무법인 승리)는 “취업을 알선했던 브로커가 지난 5월 ‘노동부에 체불 사실을 알리면 출입국관리소에 너희를 신고해 불법체류자로 추방시키겠다’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노동자와 사업주의 첫 대질조사가 있던 지난 10일 천안지청에 경찰이 들이닥쳐 ㄱ씨를 ‘체포하겠다’고 통보했다. 경찰을 부른 것은 사쪽이었다. ㄱ씨가 말린 고추 등 회사의 생산품을 몰래 팔아넘겼다며 절도 혐의로 신고한 것이다. ㄱ씨가 불법체류 중인 사실을 안 경찰은 노동청 대질 조사가 끝난 직후 그를 외국인보호소로 넘긴 뒤 추방 절차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알렸다. ㄱ씨를 돕는 변호사와 노무사 등이 “불법체류 외국인을 임의동행이 아닌 현행범 체포로 외국인보호소로 인계하는 것은 형사소송법상 적법하지 않은 절차다”라고 항의한 끝에 경찰들은 2시간 뒤에 돌아갔다. 천안지청 관계자는 “양쪽의 입장차가 크다. 사업체가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것은 물론 출퇴근기록 등을 남기지 않아 대질조사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는데 이날 조사를 거의 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ㄱ씨가 노동청에 출석한 것을 본 ㄴ씨의 일행이 경찰을 부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ㄱ씨 쪽은 ㄴ씨가 이주노동자들의 추방을 유도해 체불 사건 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경찰 신고를 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ㄱ씨는 절도 혐의를 부인하는 데다, 그가 회사에 재직한 3년여 동안에는 사쪽이 ㄱ씨 등에게 절도 혐의를 제기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ㄴ씨는 “장물업자가 ㄱ씨 등으로부터 (도난된 회사) 물건을 받았다고 주장해 신고하게 됐다. 정확한 피해액 등은 장부를 정리해봐야 할 수 있으며 (정확한 사실관계는) 경찰에서 밝혀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장 내 폐회로 텔레비전(CCTV)에는 이들이 (저녁 6시가 아닌) 3시까지 일한 장면만 찍혀 있다. 오후 3시를 기준으로 임금을 산정하면 체불액은 없다”고 주장했다.

불법체류 외국인을 고용한 사업주들이 체불 사건이 불거질 경우 노동자들의 불법체류 사실을 경찰 등에 알려 임금 지불을 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피해 노동자가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거나 본국으로 추방되면 정확한 노동시간과 체불 규모를 파악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노동부의 한 근로감독관은 “사실상 조사를 방해하려는 목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근로기준법 상으로는 이런 행위를 저지할 수가 없어 답답하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경찰이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임금 체불을 구제받을 수 있도록 이들의 신분을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통보하지 않는 ‘불법체류 통보의무면제 제도’의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등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조영관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현행법상 통보의무면제 제도는 (폭행, 성범죄 등) 범죄 피해자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있다. 임금, 퇴직금 체불 등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침해당한 사유들도 적용 대상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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