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과 관련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배임교사 혐의를 추가로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판단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불기소 결론을 내렸지만, 수사팀이 기소 강행 의지를 보이면서 수사심의위 무용론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검찰 수사심의위는 지난 18일 백 전 장관의 배임·업무방해 교사 혐의 추가 기소 타당성을 심의해, ‘백 전 장관을 추가로 재판에 넘기지 말고,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위원 15명 가운데 9명이 불기소 의견을, 6명이 기소 의견을 냈고, 수사 계속 여부를 두고서는 만장일치로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의결했다.
하지만 대전지검 수사팀은 24일 대전지법 형사11부(재판장 박헌행)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불과 6일 전 수사심의위 결론과 달리, 백 전 장관을 배임교사 혐의로 추가 기소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수사팀은 이날 재판에서 “기본적으로 검찰수사심의위 권고를 존중하지만 수사팀은 수사심의위 결정 전이나 후나 백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가 있다면 배임교사 혐의도 인정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다만 “공소장 변경 여부는 검찰 내부에서 상의해 의사결정이 필요한 사안이다. 확정 여부는 답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수사팀이 추가 기소를 강행할 경우, 이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던 김오수 검찰총장과 마찰을 빚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앞서 수사팀은 지난 6월 백 전 장관에게 직권남용 혐의와 더불어 배임교사 혐의를 추가 적용하려 했다. 하지만 검찰 지휘부는 배임교사 혐의 적용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고, 김 총장은 해법을 찾기 위해 직권으로 수사심의위를 열었다. 이어진 수사심의위는 불기소를 권고했지만, 수사팀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과거 검찰이 수사심의위 의결을 뒤집고 기소를 강행하거나 수사를 이어간 사례는 여러 차례 있었다. 수사심의위는 지난해 6월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삼성 합병 의혹 사건에서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 수사중단 및 불기소 의견을 내렸지만, 검찰은 보강 수사를 펼친 뒤 그해 9월 이 부회장을 기소했다. 채널에이(A) 검언유착 의혹 사건에서도 수사심의위는 한동훈 검사장(사법연수원 부원장)에 대해 수사중단을 의결하고 권고했지만,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휴대전화 유심칩 압수수색 집행에 나선 바 있다. 이 사건은 지금 수사 중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수사심의위 ‘무용론’과 함께 존속을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사심의위 결론을 검찰이 무조건 따라야 할 이유는 없지만, 검찰권에 대한 시민 통제 차원에서 이 제도가 마련된 만큼 결론이 엇갈릴 경우 이에 대해 국민들과 피의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18년 문무일 검찰총장이 도입한 수사심의위는 검찰이 무리한 수사와 기소로 권한을 남용했다는 비판을 받자 자구책으로 내놓은 제도다. 대검찰청이 정한 외부 전문가 150∼250명 가운데 무작위로 뽑은 현안 심의위원 15명이 수사 계속, 구속영장 청구, 기소 여부 등을 심의·의결한다.
대검 검찰개혁위원을 지낸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협회장은 “수사심의위 결론과 검찰 행보가 계속 엇갈리면 무용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수사심의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지금의 제도를 정비해 최소한의 구속력을 부여해야 한다. 검찰이 수사심의위 권고를 따르지 않을 경우 피의자나 국민들을 납득할만한 수준의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법으로 규정한 검찰 기소 권한에 대한 통제는 대검 지침이 아닌 법령으로 규정해야 형평성이 맞다. 수사심의위 권한 등을 법령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