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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계획, 언제 누가 결정했나?

등록 2021-09-07 14:21수정 2021-09-07 14:33

이재용의 법정을 기록하다 ⑧
삼성 미전실 출신 처음으로 증인 출석
‘모직-물산 합병’ 계획 시기 놓고 공방
삼성 “2015년 4월 제일모직 쪽이 제의”
검찰 “2012년 보고서에 합병 계획 언급”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5월26일 발표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언제, 누가 결정했을까? 삼성은 2015년 4월 말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에 합병을 처음 제안했다고 주장한다. 김종중 전 삼성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 전략1팀장(사장)이 2017년 7월24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재판에 나와 증언한 내용을 보면, 두 회사의 합병은 2015년 4월 제일모직 윤주화 사장이 삼성물산 최치훈 사장에게 처음 제안해 이뤄졌다고 한다. 패션·바이오산업 등을 꾸려나가는 제일모직이 국외 인프라가 강한 삼성물산과 합병해 시너지 효과를 내려 했다는 설명이다. 두 회사는 합병 발표와 함께 “합병사의 2020년 매출이 연 60조원일 것”이라는 전망을 함께 내놨다.

반면 검찰은 두 회사의 합병이 2015년 4월보다 훨씬 전인 2012년을 앞뒤로 계획됐다는 증거가 있다며 삼성의 주장은 거짓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합병의 목적은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지배권 승계였고, 합병을 결정한 주체도 당사자인 제일모직·삼성물산이 아니라 이 부회장 및 미전실이라는 것이다. 제일모직 최대주주인 이 부회장이 그룹 주요 계열사인 삼성물산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고자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진행한 합병인 만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에 해당한다는 것이 검찰 주장이다.

지난달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부장판사 박정제·박사랑·권성수)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및 삼성 전·현직 임원 10명의 그룹 지배권 불법승계 의혹 12번째 공판에 처음으로 미전실 출신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증인 최아무개 삼성증권 팀장은 삼성증권 아이비(IB·투자은행)본부 기업금융1팀에서 일하다 2014년 11월~2017년 6월 미전실 전략1팀 자금파트에서 근무한 인물이다. 삼성증권에서 제일모직 상장 업무를 맡았던 최씨는 미전실 파견 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관련 문건을 직접 작성하기도 하고, 합병 자문을 맡은 삼성증권에 이런저런 자료조사를 지시하거나 미전실 작성 합병 관련 문건을 전달하는 등 창구 구실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월13일 가석방으로 출소해 강남구 서초사옥을 찾았다. 이날 오전 서초사옥에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월13일 가석방으로 출소해 강남구 서초사옥을 찾았다. 이날 오전 서초사옥에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건희 회장 보고용 문건인데 아이디어 수준을 기재?

검찰은 지난달 19일 주신문에서 최씨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언제부터 인지하고 있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검찰은 2012년 12월 작성된 ‘프로젝트 지(G·거버넌스의 약자)’에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필요성이 언급됐다는 점을 들어, 늦어도 이 시점부터 두 회사의 합병계획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공판 첫 번째 증인으로 나온 한아무개 전 삼성증권 기업금융1팀장 등이 작성한 이 문건에는 삼성에버랜드(2014년 7월 제일모직으로 사명이 바뀜)에 닥친 일감 몰아주기 과세 문제를 해소하고 총수 일가의 삼성물산 지분을 높이기 위해, 내부거래 비중이 낮은 삼성물산과 대주주 지분이 높은 삼성에버랜드를 합병한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2013년 1월29일 미전실이 작성하고 증인 최씨에게도 전달된 ‘에스디에스(SDS), 에버랜드 상장 추진 안건’ 보고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담겨 있다. 미전실 김아무개 부장이 “에이(A·이건희 회장을 의미) 보고용 초안”이라며 “전체 줄거리 와꾸(틀) 잡을 때 참조”하라고 건넨 해당 문건을 보면, “회장님께서 허락하시면 에버랜드는 상장 후 삼성물산과 합병해 현안 문제 해소하는 걸 검토하겠음”이라고 적혀 있다. 그로부터 약 한달 반 뒤인 2013년 3월10일, 최씨는 상장 후 1년 이내 합병한 사례를 조사한 메일을 미전실 김 부장에게 보내는 등 여러 차례 합병과 관련한 자료를 조사해 미전실에 보고했다.

검찰은 2013년 1월 이건희 회장 보고용으로 작성된 이 문건에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이 담겨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씨가 상장 뒤 합병 사례를 조사해 미전실에 제공한 만큼,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그 무렵 그룹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었다는 점을 최씨가 충분히 인지했을 것이라고 신문했다. 이에 대해 최씨는 ‘문건을 받았을 때 합병이 추진되는지 알지 못했다, 합병이 확정됐던 게 아니었다’는 취지로 부인했다.

“삼성에버랜드 상장 후 삼성물산과 합병 관련해 그룹 내부에서 검토하고 있다는 걸 듣거나, 관련 문건을 본 게 언제였나요?” (검사)
“관련 문건 자체가 있지 않았던 거로 기억합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각 사에 (2015년 5월) 합병 티에프(TF)가 결성됐는데 ‘아, 이제 합병이 진행되겠다’ 한 건 티에프 결성 이후입니다.” (증인)

“2013년 1월29일 ‘에이용 보고 초안’이라며 (합병계획이 포함된) 삼성에버랜드 상장 추진 검토 보고서를 증인이 받아봤는데, 기억이 없나요?” (검사)
“메일을 보니 팀장을 통해 받았는데, 지금 보니까 처음 보는 자료 같습니다.” (증인)

“메일은 ‘회장 보고용 중요 문건이 첨부돼 있으니 줄거리 잡을 때 참고하라’는 내용이고 증인이 이 문서를 본 게 상식적으로 맞을 것 같습니다. 문건 내용을 보면 ‘에버랜드는 상장 후 삼성물산과 합병해 현안 해결’이란 내용이 있으니, 당시 증인은 ‘이런 식으로 합병이 이뤄지는구나’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아닙니까?” (검사)
“이런 걸 너무 많이 검토하다 보니까 실제 실행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 않는 게 아이비(IB)의 관점입니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하는 게 아이비 전문가의 관점입니다.” (증인)

“2013년 1월29일 첨부문건은 회장님 보고용 문건입니다. ‘회장님이 허락하면 에버랜드 상장 후 삼성물산 합병을 검토하겠다’고 했습니다. 회장에게 보고할 땐 계획이 무르익거나 구체화되어야 하는 거지, 이런 식으로 아이디어를 던지나요?” (검사)
“아이비에서는 여러 가능성을 보고 제안하고, 이 문건은 제가 이해하기론 ‘회장님이 허락하면 (검토하겠다)’이라고 단서를 달았잖아요.” (증인)

“회장님이 (검토) 하지 말랬는데, 미전실 실무자들이 상장 이후 합병 사례를 추가 검토하는 게 미전실 경험상 가능한가요? 실무자가 ‘난 생각이 다르니까 추진할래’ 합니까?” (검사)
“실무자는 여러 가능성과 이슈에 대해 말씀드리는 거고, 최종 결정은 이사회에서 하는 부분이니까요.” (증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월13일 가석방으로 출소해 강남구 서초사옥을 찾았다. 이날 오전 서초사옥에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월13일 가석방으로 출소해 강남구 서초사옥을 찾았다. 이날 오전 서초사옥에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다. 연합뉴스

 그룹 주요 안건 보고서를 “지시받지 않고 작성했다”는 증인

검찰은 증인 최씨가 2014년 11월 미전실에 파견 나가기 전부터 미전실과 수시로 소통하며 제일모직 상장 일정을 상의하는 메일 등도 제시했다. 미전실 파견에 앞서 삼성증권에서 제일모직 상장 업무를 담당한 최씨는 2014년 5월10일 이건희 회장이 와병한 뒤 미전실로부터 ‘제일모직 상장 이사회 일정을 당겨보라’는 지시를 받아 일정을 재검토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미전실과 제일모직 상장 관련한 용역계약을 맺거나, 당사자인 제일모직과 상의한 적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씨 뿐만 아니라 삼성증권 아이비본부의 여러 직원이 미전실 요청에 따라 다양한 지배구조 이슈를 검토했지만, 최씨는 “(미전실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기보단 전문가로서 정보를 빨리 드려야 한다는 관점에서 드렸다”며 향후 미전실과 정식 자문계약 체결을 기대하고 서비스를 제공한 것에 불과했다는 식으로 답했다.

2014년 11월 미전실 자금파트로 발령받은 최씨가 이듬해 4월21일 작성한 ‘엠(M·삼성물산을 의미)사 합병 추진안’도 검찰의 주요 증거로 제시됐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계획이 보다 구체적으로 담긴 이 문건에는 △제일모직이 존속회사가 되어 삼성물산을 흡수합병 △합병 이사회 날짜는 제일모직 보호예수(주식시장에 새로 상장한 경우 소액투자자 보호를 위해 최대주주 등이 보유한 주식을 일정 기간 팔지 못하게 묶어두는 것) 종료 뒤 이른 시일 안에 개최 △삼성물산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합병비율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니,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의결권 확보를 위해 주총 및 주식매수청구 기간까지 주가관리가 필요하다는 점 △주식매수청구권 한도 등이 상세히 기재되어 있었다. 이 과정에도 제일모직이나 삼성물산과 의논한 건 없었다.

검찰은 이 문건에 삼성증권이 2015년 3월 말 조사해 미전실에 보고한 내용이 포함된 데다 보고서 파일이 등록된 시각이 2015년 3월24일로 되어 있어, 최씨가 그 무렵부터 미전실의 지시를 받아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 아니냐고 추궁했다. 이는 ‘2015년 4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논의가 시작됐다’는 삼성의 주장보다 앞선 시점이다. 그러나 증인은 2015년 4월 초부터 이 문건 작성을 시작했다며 “미전실 지시를 받아 문건을 작성했다기보단 (양사 합병을) 선제적으로 검토한 것”, “(4월이 아닌 3월에 파일이 등록된 건) 이전 파일을 포맷해서 쓴 것일 수도 있다”며 부인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월13일 가석방으로 출소해 강남구 서초사옥을 찾았다. 이날 오전 서초사옥에 삼성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월13일 가석방으로 출소해 강남구 서초사옥을 찾았다. 이날 오전 서초사옥에 삼성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 이 부회장 쪽 “증인이 거짓말할 이유가 있나”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지난달 26일과 이달 2일 두 차례에 걸쳐 검찰의 주신문에 반박했다. 검찰은 2012년 12월 작성된 프로젝트 지 문건에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계획이 담겼다는 점을 공소사실을 입증할 주요 근거로 들었는데, 변호인단은 해당 문건에 ‘삼성전자와 삼성에스엔에스(SNS)의 합병’, ‘제일모직의 전자소재 사업 분할’ 등 다양한 지배구조 개편안이 있었지만 실행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실무자가 여러 방안을 검토한 문건”일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변호인단은 2013년 1월 최씨가 양사 합병계획이 포함된 이건희 회장 보고용 문건을 받아보긴 했지만, 검토와 실행은 다르다는 취지로 변론했다. 최씨가 합병 당사 회사들을 배제하고 합병 추진 문건을 작성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서도 ‘사업적 측면의 합병 필요성은 회사가 논의할 부분이고, 미전실이 관여할 부분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8월26일 변호인 반대신문

“증인은 검찰 주신문에서 (2013년 1월29일 받은) ‘에스디에스(SDS), 에버랜드 상장 추진 안건’에 대해 ‘처음 보는 문건 같다’고 했는데, 전혀 본적 없다는 건가요,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난다는 건가요?” (변호인)
“2013년이면 봤을 수도 있지만 기억이 안 난다는 의미였습니다.” (증인)

“이 문건에는 ‘삼성에버랜드는 상장해 삼성물산과 합병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음’이라고 나옵니다. 이 문건을 보고 ‘삼성에버랜드 상장방안, 삼성에버랜드-삼성물산 합병방안 등을 검토하는구나’ 생각은 했지요?” (변호인)
“가능성 측면에선 있을 수 있다는 거지, 실행할 수 있을지는 다른 문제 같습니다.” (증인)

“증인은 2014년 11월 미전실에서 근무를 시작한 이후 미전실 자금파트가 삼성증권과 함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비롯해 여러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검토해왔다는 걸 인지했지요?” (변호인)
“네 맞습니다.” (증인)

“증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직접 관여한 것도 인정하고, 미전실 자금파트에서 그 전부터 이를 검토해온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이런 마당에 2013년 1월 증인이 삼성증권에서 근무하던 당시에도 이를 알고 있었냐는 검사 질문에 굳이 거짓 진술할 이유가 있습니까?” (변호인)
“속이거나 없는 걸 지어내거나 거짓 진술할 이유는 없습니다.” (증인)

9월2일 변호인 반대신문

“사업적 측면의 합병 필요성, 상장 필요성은 미전실 실무자인 증인이 반드시 검토할 사항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떤가요?”
“그 회사를 담당하는 담당자가 있으니 그런 부분까지 제가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증인)

“합병이 특정 회사 하나에 국한하는 게 아니라 쌍방회사, 그 회사가 지분 가진 회사들, 나아가 그룹 전체 지배구조와 관련된 사항이라서 기업집단 지원조직이 먼저 검토하는 건 이례적인 게 아닌 거 같은데요.” (변호인)
“지배구조, 합병이 제 메인 업무는 아니지만 그런 역할을 위해서 저희 조직이 있다고 생각하고 (미전실) 올라가서도 그런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증인)

한편, 지난달 19일 열린 최씨에 대한 검찰 주신문에선 ‘특수2부’, ‘한동훈’, ‘변호사가 인정하라, 절대 하지 마라’, ‘증거 확실, 끝까지 부인’이라는 메모가 적힌 최씨의 수첩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수첩은 2019년 3월 검찰이 최씨 사무실에서 압수한 것으로, 삼성 수사는 당시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의 지휘를 받는 특수2부가 진행하고 있었다. 검찰은 “‘검찰 수사를 받게 되더라도 끝까지 부인하라’는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적은 것이 아니냐”고 추궁했다.

이에 대해 지난달 26일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수첩 전체에 ‘금호석화’, ‘현대백화점’, ‘애경’, ‘현대차’ 등 다수의 기업 관련 내용이 적혀 있다는 점을 들며 “증인이 누군가로부터 여러 회사 동향 정보를 수시로 듣고 메모한 것 아니냐”고 했고 최씨는 “맞다”고 했다. 앞서 최씨는 검찰 주신문에서 “여러 가십거리를 적은 것이다. 업무적 연관성으로 파악한 거지 누가 지시해서 메모한 것으로 기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씨에 대한 증인신문은 오는 9일까지 이어진다. 이후에는 삼성물산 소속으로 삼성물산 합병티에프에서 합병 실무를 담당한 박아무개씨가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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