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한국의 21대 총선 당시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총영사관에 마련된 재외투표소에서 재외국민 유권자들이 첫 투표를 시작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로 일본 도쿄에 거주한 지 21년째다. 한국 국적 영주권자로서 2012년부터 지금까지 네차례의 국정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했다. 국내거소지가 말소됐기 때문에 총선거는 비례투표만 할 수 있지만 선거날에는 매번 긴장했다. 투표소에 들어가 혹시라도 잘못 찍지는 않았는지 몇 번이고 투표용지를 확인했던 기억이 난다.
2012년 대선 때는 흥분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한국의 한 인터넷매체에 신주쿠문화원에 설치된 재외국민 투표장 풍경을 기고했고, 2016년 총선거 때엔 도쿄 우에노에 마련된 투표소 정당 참관인을 맡기도 했다. 지금도 한국에선 많은 사람들이 ‘검은 머리 외국인’들에게 왜 투표권을 주느냐며 반발한다. 하지만 2007년 당시의 공직선거법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선거권은 헌법상 기본권”이라며 “현행 공직선거법은 주민등록이 돼 있는지 여부에 따라 선거인명부에 오를 자격을 결정하고 선거권도 그에 따라 결정하고 있으므로 주민등록법상 주민등록을 할 수 없는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결과적으로 부정하게 된다”며 “이는 재외국민의 선거권과 평등권을 침해하고, 보통선거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명쾌하게 판단했다.
이 결정에 따라 관련 규정이 개정돼 재외동포에게도 선거권이 부여됐고, 지금까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선거가 실시됐다. 하지만 재외선거에 직접 참여하고, 또 참관인 등으로 관여하면서 항상 부족하다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한국에서도 선거 때마다 재외국민의 저조한 투표율을 지적한다. 하지만 이건 제도상의 문제를 짚어야 한다. 한국에선 투표하기가 매우 쉽다. 집 근처 동사무소나 가까운 학교, 공공기관에 마련된 투표소에 가서 신분증을 제시하면 손쉽게 투표가 가능하다. 하지만 외국에선 그렇지 않다. 일본의 예를 들면, 2012년 때 도쿄, 아니 반경 200㎞를 아우르는 기타칸토(북관동) 지역의 투표소가 도쿄 내 신주쿠의 한국문화원과 아자부주반의 주일본 한국대사관밖에 없었다. 이후 조금씩 늘어났지만 그래도 서너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일본은 나은 축에 속한다. 지난해 21대 총선 때, 전세계 재외투표소는 91곳이었다(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애초 계획보다 훨씬 축소됐다). 투표소가 상대적으로 많은 미국, 중국, 일본을 제외한다면 국가 하나에 투표소가 하나만 설치된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투표소 이동에 따른 비용과 시간을 고려한다면 재외선거인명부 사전등록을 해 놓더라도 당일에 투표를 포기하는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앞서 헌재는 2007년 선거법 위헌결정 주문에서 “현행법은 재외국민의 선거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정작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장소(투표소)는 절대 평등하지 않다. 그래서 나온 대안이 ‘우편투표’이다. 각국 재외공관의 사정으로 인해 투표소 늘리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몇 가지 보완조치를 마련한다는 전제 아래 우편투표를 도입해 애초 헌재의 위헌 결정 이유였던 “재외국민의 선거 평등권 보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국내에서도 우편투표 법안은 여야를 초월해 입법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들었다. 또한 ‘위드 코로나’ 시국에서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대선은 한국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많은 관심이 쏠릴 것이다. 한국 선거 역량의 진면목을 보여준다는 의지와 시스템 개혁의 핵심으로 우편투표를 진지하게 고려해보길 희망한다.
박철현 도쿄테츠야공무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