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민간위원 간담회에서 한승헌 위원장에게 보고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입법 앞둔 사법개혁안
중범죄 형사재판서 배심원이 유무죄 의견 제시
누구나 국선변호인·서약서등 석방조건 다양화
법학전문대학원 등 일정 빠듯…더 지연땐 타격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위원장 한승헌)는 지난달 △법학전문대학원 신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제도 △공판중심주의 확립 △국선변호제 개선 등 사법개혁 방안을 담은 법률안을 완성하고 입법을 기다리고 있다. 2003년 말 사법개혁위원회 출범으로 시작된 사법개혁 움직임이 8부 능선을 넘은 셈이다. 사개추위 일정을 보면, 대부분의 제도가 내년 2~3월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고, 법학전문대학원은 2008 학년도부터 도입할 예정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9일 청와대에서 한 위원장 등 사개추위 위원들과 만나 “수십년 끌어온 사법개혁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정파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높은 사명감으로 국민의 편에서 마무리했다”며 위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관련 부처 장관들에게 입법 과정에서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지시했다. 개혁안, 어떤 내용 담았나?=법학전문대학원은 사개추위가 의결한 새로운 법조인 양성제도다. 학부과정을 마친 뒤 3년제 법학전문대학원(이른바 로스쿨)을 나와야 변호사 자격을 얻을 수 있다. 법전과 판례에만 집착하는 ‘수험법학’의 한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전공의 법률 전문가를 길러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 도입은 10여년 전부터 사법개혁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제기됐던 안건이다. 법학전문대학원과 함께 ‘장기과제’로 논의됐던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도 구체적인 밑그림이 마련됐다.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들이 형사 중죄사건 재판에 참여해 유·무죄와 형량을 논의한다. 배심원의 의견이 판사의 판결을 강제하지는 못하지만, 국민이 재판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전관예우 등 사법불신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 방안은 무거운 사건 부담을 덜어 대법원을 명실상부한 정책법원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논의와 공개변론이 활성화돼, 중요한 사회 현안에 대한 대법원의 정책결정 기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영장이 청구된 모든 피의자 및 구속 피고인에게 국선변호인을 지정하고, 구속 피의자(피고인)의 석방조건을 보증금뿐만 아니라 서약서나 3자 출석보증서 등으로 다양화한 것은 불구속 수사 및 재판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또 공판중심주의의 도입은 검찰 작성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하고 법정변론 중심 재판을 통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공무원의 직권남용·불법감금·가혹행위 세 가지 범죄에만 인정됐던 재정신청이 모든 범죄로 확대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검찰의 불기소 결정을 못미더워했던 국민의 불만을 크게 해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사개추위가 의결한 군 사법개혁안은 평시에 일선 지휘관의 사법절차 개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군 운영의 법치주의를 확립하고 군 사법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조속한 입법 필요” 한 목소리=사개추위는 원래 11월 법안 준비를 마치려 했으나, 검찰의 형소법 개정 반발 등 암초에 걸려 법안 완성이 2개월 정도 늦어졌다. 올해 말 활동이 종료되는 사개추위는 5·31 지방선거 등 굵직한 정치 현안에 밀려 법안 통과가 늦어지면서 사법개혁이 흐지부지될까 우려하고 있다. 홍기태 사개추위 실무추진 1팀장은 “법조계·행정부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도출해낸 이번 사법개혁안의 목표는 폐쇄적인 법조의 문을 열어 수혜자를 국민으로 만들자는 것”이라며 “올해 상반기에 입법이 이뤄져야 예산도 반영되고 내년·후년 시행을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바뀌는 제도를 운용해야 하는 당사자들도 마찬가지다. 정규상 성균관대 법대 학장은 “법학전문대학원 안이 2월에 통과된다고 해도 설치인가에 이은 법학자격시험 확정 등 2008 학년도 신입생을 받기 위한 일정이 빠듯하다”고 말했다. 이광범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은 “국선변호인 확대를 위한 예산은 확보했지만 법이 통과되지 않아 배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고법 상고부 청사 마련 등 입법을 기다리고 있는 현안들이 많다”고 말했다. 사법개혁 작업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사법개혁안은 범국민적, 범정부적으로 모인 합의체를 어렵게 끌고 오면서 상당한 양보와 타협, 그리고 자기 희생이 모여서 이뤄진 성과물”이라며 “어렵게 합의한 만큼 합의의 틀이 쉽게 깨질 수 있으므로, 입법 과정에서 사법개혁의 취지가 왜곡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