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교육감이 대학수학능력시험 감독관에게 서약서 제출을 강요한 것은 인권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판단이 나왔다.
인권위는 28일 “각 시·도 교육감이 수능 감독관에게 서약서를 요구하는 것은 일반적 행동 자유권 및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교육부 장관에게 향후 ‘대학수학능력시험 업무처리지침’을 마련할 때 수능 감독관에게 서약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지 않을 것을 권고했다.
지난해 수능 감독관으로 참여한 교사인 2명의 진정인들은 “수능 감독관에게 서약서 제출을 강제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 침해”라며 교육부 장관과 해당 시·도 교육감 등을 상대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각 시·도 교육감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업무처리 지침에 따라 수능 감독관에게 ‘임무에 충실함은 물론 시행과정상 지켜야 할 모든 사항을 엄수하며, 만일 그러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을 서약합니다’라는 내용의 서약서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부는 인권위에 “서약서 작성은 일종의 ‘주의 환기 절차’로 성실히 감독 업무를 수행해 달라고 요청하는 행정절차에 불과하다”며 “작성을 강제하는 수단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해당 시·도 관할의 2021학년도 수능 감독관 전원이 서약서를 제출했다는 점 등을 볼 때 서약서 제출은 임의제출 요구 이상의 강요로 기능하고 있다”며 교육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권위는 “수능 감독관의 서약서 작성·제출 의무를 정한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없고, 해당 업무 수행에 서약서 제출이 필수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이날 교육부가 교직원의 ‘원격업무 지원서비스(EVPN)’를 승인하는 과정에서 요구하는 보안서약서도 일반적 행동 자유권 및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하고, 교육부 장관에게 관련 규정 개정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관련 규정에 따라 처벌도 감수한다’는 서약서 문구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이는 경각심을 고취하도록 하는 것을 넘어 진술권, 항변권 등의 방어권을 인정하지 않고 책임과 처벌을 수용할 것을 의미하므로 서약자의 정당한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도록 권리를 제한하는 표현”이라고 판단했다.
최근 인권위는 법적 근거가 없거나 부당한 내용이 담긴 서약서 강요가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인권위는 서강대가 지난 3월 기숙사생들에게 ‘외출 시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있는 장소에 갔다가 코로나19에 걸리면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요구한 데 대해서도 지난 26일 인권침해라고 판단했다. 또 인권위는 그동안 특성화고·마이스터고 등이 학생·학부모에게 현장실습 서약서를 요구하는 것, 공공기관의 장이 공직자 등에게 ‘청탁금지법’ 관련 서약서를 요구하는 것 등을 인권침해로 판단한 바 있다.
인권위는 “당사자가 아닌 다른 일방의 요구에 따라 작성하고 서명하는 형태의 서약서 작성은 그 행위 양태 자체로 작성자의 기본권을 제약할 우려가 크다”며 “서약서를 수령하는 행위는 상대방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기 위해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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