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오후 한 원격진료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한 병원에 다이어트 약을 처방받고 싶다는 요청을 보냈다. 병원에서 전화를 걸어와 이전에 어떤 약을 먹었냐고 물었고,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로 분류되는 약 이름을 대자 바로 한 달 치 가격을 계산해 알려줬다. 가격이 비싸다고 주저하자, 같은 성분으로 더 저렴한 약이 있다며 의사와 이야기한 뒤 처방을 받으라는 적극적인 권유가 이어졌다. 그 뒤 바로 걸려온 전화에서 의사는 키와 몸무게, 이전에 약을 먹은 기간과 효과를 간단히 묻고선 같은 성분의 다른 약을 처방해주겠다고 말했다. 3분간의 통화를 마치자 미리 등록한 카드에서 진료비 3만원이 빠져나갔고, 약 30알을 처방받았다. 부작용 설명은 별도로 없었으며, 문자로 보내온 ‘복용 동의서’에 부작용 내용이 적혀있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된 뒤 다이어트약·탈모약·발기부전제 등 전문의약품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오·남용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부분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 의약품인 만큼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종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12월15일부터 올해 8월22일까지 비대면 진료 건수는 132만건, 원외 처방 건수는 87만건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감염병예방법이 개정돼 재난 발생 시 환자가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전화나 화상으로 상담과 처방을 받을 수 있는 비대면 진료가 허용됐다. 정부가 지난해 2월 한시적으로 허용한 비대면 진료의 법적 근거가 이때 마련됐다. 고혈압, 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가 코로나 19 감염 위험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진료와 처방을 받도록 하자는 게 법 개정 취지다.
그러나 실제 원격진료 앱을 보면 비급여항목인 다이어트, 발기부전, 탈모, 사후피임 등의 약품 항목을 눈에 띄게 노출하고 있었다. 진료 병원을 선택할 경우 ‘탈모약(3개월까지) 1만원’, ‘다이어트약 2주 1만원’과 같은 홍보 문구도 자주 눈에 띄었다. 다이어트약인 펜타민 계열의 향정신성 식욕억제제의 경우에는 다량으로 장기 복용 시 환청이나 환각, 망상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고, 사후피임약도 여성의 호르몬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만큼 부작용 우려가 크다.
그러나 병원, 의사마다 약 처방 기준이 천차만별이라 약물 오·남용 우려가 나온다. 바로 약 처방을 하는 병원이 있는가 하면, 한 병원 의사는 “다이어트약은 한번 먹으면 끊기 어려워 쉽게 권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연락 달라”고 진료를 거부하기도 했다. 식품의약안전처는 마약성 식욕억제제를 체질량지수(BMI)가 30㎏/㎡ 이상인 비만 환자에게만 사용하라고 권고하지만, 비대면 진료에선 저체중이나 정상체중을 지닌 사람이 몸무게를 부풀려 말하면 별도의 확인이 어렵다.
비대면 진료 과정에서 의료급여를 허위로 청구한 정황도 있다는 의혹도 나온다. 최종윤 의원이 건강심사보험평가원(심평원)으로부터 받은 ‘비대면 진료 상위 10개 질병 현황’을 보면 탈모약과 성분이 비슷한 ‘전립선증식증’이 10위를 차지했다. 병원들이 탈모약을 급여항목으로 둔갑해 급여를 타갔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최종윤 의원은 “비대면 진료가 전문의약품의 오·남용을 넘어서 의료급여 허위 청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보건복지부의 지도와 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비급여항목 진료 내용은 병원만 가지고 있어, 현재 보건복지부나 심평원도 비대면 처방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보건복지부도 의약품 오·남용 가능성을 우려해 규제 방안 마련을 검토 중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30일에 주요 의약 단체들과 ‘보건의료발전협의체’ 회의를 열고 마약류 또는 오·남용 의약품의 비대면 처방을 제한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원격진료 애플리케이션에서 탈모약, 다이어트약 등을 처방하는 병원의 상세정보. 최종윤 더불어민주당 의원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우연 이주빈 기자
az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