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커밍아웃의 날’인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본소득당,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유니브페미 등 7개 단체 활동가들이 군형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한국사회에서 커밍아웃은 언제, 어디서든 쉽지 않지만 커밍아웃이 범죄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군대입니다. 국방부가 불평등의 벽장에서 문을 열고 나오기를 촉구합니다.”
11일 세계 커밍아웃의 날을 맞아 기본소득당,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 등 관련 단체가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서 군형법 ‘92조 6’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군형법 92조6항은 ‘(군인에게)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은 합의된 성관계도 특정 체위로 성관계를 했다면 처벌 대상에 포함해 군대 내 성소수자의 사생활의 자유와 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하고 처벌하는 근거로도 활용됐다. 육군 중앙수사단은 지난 2017년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해 군형법 제92조의6을 위반했다며 형사처벌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
이들은 이날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이 법이 정작 군에서 발생한 성폭력을 처벌하는 데에는 무용하면서 성소수자를 색출하는 용도로만 기능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최근 국방부는 공군 성폭력 사건에 관한 부실수사 책임자와 지휘부를 단 한 명도 기소하지 않았다”면서 “여군에 대한 권력형 성폭력과 2차 가해에는 작동하지 않으면서, 성별 무관 합의된 동성 관계만 처벌하는 군형법92조의 개정과 군 전반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92조6 폐지를 재차 주장했다. 앞서 용 의원은 지난 5월 군형법 92조6 폐지를 추진했으나 공동 발의자 10명을 채우지 못해 법안 발의를 하지 못했다.
용 의원은 “한국의 군형법 제92조에 해당하는 추행죄는 미국의 법을 참고해 1962년 만들어진 것인데, 정작 미국은 1993년 이 조항을 폐지했다”며 “영국, 독일은 물론 현재 징병제인 이스라엘도 동성 군인 간 성관계를 형사처벌하는 법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014년과 2017년에 비슷한 폐지안이 발의됐지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그 사이 2017년 육군 색출 사건이 있었고, ㄱ대위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반인권적인 심문을 받고 범법자가 되어 재판에 서야 했다”고 말했다.
용 의원은 이날 최근 5년간 군형법 제92조6을 위반한 혐의로 수사를 받은 인물이 모두 51명에 달한다는 사실도 처음 공개했다. <한겨레>가 용혜인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육군 49명, 해군 1명, 공군 1명이 이 법을 위반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불기소 24명 △집행유예 9명 △선고유예 8명 △실형 1명 △이송·재판중 인원 9명이었다. 이들 중 최소 23명이 2017년 성소수자 군인 색출사건의 피해자로 확인됐다. 용 의원은 “군형법 제92조의6이 기능해온 약 60년 동안 수많은 군인들이 이 조항에 의해 사생활을 추궁당하고, 회유와 거짓진술을 강제당하고, 폐쇄병동으로 보내졌다. 최근 5년간 군형법 제92조의6 관련 통계를 살펴본 결과 이는 누군가에게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일”이라고 했다.
여성과 성소수자 인권을 후순위로 두는 군 조직을 규탄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앎 활동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군형법 92조의 6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청구 소송에서도, 성폭력 사건과 피해자의 죽음에 대한 대응에서도, 성폭력 예방 대책에서도 대한민국 군대는 구성원들의 인권을 분류, 서열화, 은폐, 조작하며 군의 반인권성을 고수하고 있다”며 “군형법 제92조의6은 피해자가 없어도 범죄자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없는 피해를 조작하는 조항”이라고 비판했다.
성전환 수술 뒤 군에서 강제 전역당한 고 변희수 하사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기본소득당 여성주의 의제조직 베이직페미 노서영 위원장은 “소위 ‘남성성’을 지키는 것이 곧 사기, 명예, 권력을 지키는 것이라 믿어지는 군에서 작년 1월 트랜스젠더 군인이 성별 확정을 인정받지 못해서, 단지 그 이유만으로 강제전역됐다. 국방부와 육군은 부당한 강제전역 처분을 정당화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해 또 한 사람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대전지법 제2행정부(재판장 오영표)는 지난 7일 변 전 하사가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제기한 강제 전역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박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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