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평가 비정규직 2400명 설문결과 및 촛불 계획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비정규직 노동자 10명 중 8명은 문재인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비정규직 공약을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3명 중 2명은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을 배신했다”고 답했다.
12일 비정규직 이제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과 직장갑질119는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정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조사는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5일까지 비정규직 노동자 2409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를 보면, ‘문재인 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비정규직 공약을 이행할 것이라 생각하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9.5%(1916명)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에 대한 평가를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76.2%(1835명)가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고,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23.8%(574명)에 그쳤다. 응답자들은 분야별로도 특수고용노동자·플랫폼 노동자 권리 보호 정책(74.5%),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71.3%), 민간 부분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69.0%), 최저임금 정책(67.7%) 등에 대해 ‘잘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과 비교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는 57.7%(1391명)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기대를 물어본 결과 ‘기대가 있었다’고 답한 응답자가 88.7%(2137명)로 ‘기대가 없었다’는 응답자(11.3%·272명)보다 많았다.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원인에 대해 응답자의 61.0%(1470명)는 ‘처음에는 의지가 있었으나 자본(기업)과 여론의 압력 때문에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19.8%(476명)는 ‘처음부터 의지가 없어서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응답자들 다수가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을 배신했다고 응답했다.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을 배신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7.3%(1621명)가 ‘그렇다’고 답했고,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32.7%에 그쳤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배신에 맞서 촛불을 들어야 한다는 응답자도 61.6%(1485명)나 됐다.
이러한 인식의 바탕에는 코로나19로 더 힘들어진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이 자리한다.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일자리 위기와 소득 감소에 대한 대응을 얼마나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6.2%(1594명)는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34.0%(818명)는 코로나19 이후 소득이 줄었고, 10.8%(261명)는 코로나19 이후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실직을 경험했다. 응답자의 68.2%(1644명)는 현재 직장의 고용상태가 불안하다고 답했고, 77.8%(1875명)는 자신이 직장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61.9%(1491명)는 직장이 노동법을 잘 지키지 않는다고 답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차기 대선 후보들에 대한 기대도 낮았다. ‘더불어민주당 차기 대통령 후보들이 노동존중,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66.8%(1610명)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차기 대통령 후보들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78.4%(1889명)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사 이조은씨는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에서 더 매몰차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절벽 끝으로 내몰았다”며 “창문조차 열 수 없는 밀실에서 130명의 상담사들이 한 공간에서 비말과 함께 생존을 걸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리운전노동자 김주환씨는 “코로나19 장기화로 대리운전노동자들은 생계가 벼랑 끝에 내몰려 있다”며 “정부는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겠다는 공약을 걸고 당선됐으나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까지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단체들은 오는 30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문재인 정부를 규탄하는 촛불 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