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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글 고파서 모였어요”

등록 2006-02-10 18:56

생활 속 글쓰기, 꾸밈없는 글쓰기,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를 지향하는 ‘작은책 글쓰기 모임’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 써온 글을 발표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생활 속 글쓰기, 꾸밈없는 글쓰기,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를 지향하는 ‘작은책 글쓰기 모임’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각자 써온 글을 발표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버스기사·공장노동자·주부…50대 아저씨부터 10대 청소년까지
평범한 사람들 마음모아 10년째 ‘작은책 글쓰기 모임’
살아온 얘기에 푹빠져…“지식인들은 왔다가 금세 떠나”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오후 3시가 되면 서울 마포구 합정동 월간지 <작은책> 사무실로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인다. 50대 아저씨부터 10대 청소년까지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널따란 앉은뱅이책상을 채우고 나면 이내 열띤 대화가 시작된다.

시화공단에서 고물상을 하는 박용섭(53)씨가 먼저 써온 글을 읽는다. 제목은 ‘바쁜 아침’. “애들 챙겨주고 담배를 피웠다”는 대목이 나오자 누군가가 우스개처럼 토를 단다. “에이, 그건 바쁜 아침이 아니지~.”

이번엔 생활협동조합에서 일하는 엄익복(35)씨 차례. “배추 나르는 일을 하고 나니 기분 좋은 노동이 주는 만족감에 마음도 뿌듯하고, 입맛도 돈다. 맛있는 점심이 기대된다.” 이내 ‘비평’이 이어진다. “끝이 좀 흐지부지하지 않아요?” “농민들의 생각도 담았더라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글’ 고팠던 사람들이 모였다. 글로 먹고살 글쟁이는 아니지만 그저 글을 써보고 싶은 평범한 시민들이 모인 ‘작은책 글쓰기 모임’이다. 10년 전,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를 구호로 내건 월간지 <작은책> 창간과 함께 시작됐다. 버스기사, 공장 노동자, 주부에 탈학교 학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이 모임에 가입하는 데는 아무 제한이 없다. 다만 즐겁게 자기 이야기를 글로 쓰면 된다.

“꾸미지 않고 생활 주변의 일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거든요. 이 모임은 가르치려 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여서 좋아요.” ‘막내’ 김유현(16)양이 모임의 매력을 늘어놓았다.

공장 노동자 남창기(40)씨. 지난해 1월 처음 모임에 왔을 때만 해도 마침표가 뭔지도 몰랐다. “그냥 글을 죽 적어 왔어요. 당연히 단락 나누기도 안 된 글이었죠.” 하지만 남씨는 이내 글쓰기에 푹 빠져들었고, 지금은 <작은책>에 ‘살아온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터줏대감 안건모(49)씨는 1997년 ‘전태일 문학상’ 생활문학 부문에 입선하면서 글 쓰는 버스기사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처음엔 ‘글쓰기’ 하면 ‘지식인’이 떠올라 주저했어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노동을 해서 지식인에 대해 심한 열등감을 갖고 있던 거죠. 이제는 글로 생활과 일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고등학생 윤성준(19)군은 모임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1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해야 했던 아버지를 되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비정규직이 뭔지 알게 되니까 아버지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돈 보내달라는 일 아니면 아버지에게 전화조차 안하는 내가 너무 한심스러웠다고 글에 털어놓았어요. 그랬더니 앞으로는 아버지께 작은 힘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이 모임에도 가끔 이른바 ‘지식인’들이 찾아온다. 그렇지만 대부분 금세 떠난다. “자기 글이 무조건 옳다고 하고, 생활에서 나온 글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글이 나오니까요.” 안건모씨가 한마디 덧붙였다. “관념적으로 쓰니까 재미도 없고 어렵죠. 머리가 아니라 생활에서 나온 자기 얘기가 결국 가장 감동적이더라구요.” 글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사진 <작은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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