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래 선생 재심에서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하자, 유족 등이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아산 박기래기념사업회 자료관
“검찰은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라도 법정에서 진술했으면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통일운동가 고 박기래 선생의 장남 박창선씨는 지난 8월31일 법정에서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 다 . 당시 서울고법 제12-1 형사부의 심리로 진행된 박기래 선생의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한 재심 공판에서 검찰이 ‘서면으로 한 무기징역 구형을 유지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앞서 재심 사건을 맡은 서울고검은 지난 6월 서면을 통해 “수사단계에서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이 인정된다고 해도 법정에서 한 진술은 인정돼야 한다”는 이유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박기래 선생은 박정희 유신 독재가 본격화된 1974년 '통일혁명당(통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간첩, 군기 누설 등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17년 동안 감옥에서 지내다 감형돼 1991년 출소했다. 박 선생은 경기도 안산에서 통일운동을 하다 2012년 숨졌다. 통혁당 재건위 사건은 인혁당 재건위, 남민전 사건과 함께 1970년대 대표적 공안 사건으로 꼽힌다.
법원이 엄격한 판단을 거쳐 재심 사유를 인정했는데도, 검찰이 무기징역이란 중형을 다시 구형한 것은 이례적인 경우다. 박 선생 유족은 지난 2018년 12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고법은 박 선생이 민간인이라 군 기관인 보안사령부 수사관들이 수사할 권한이 없는데도 박 선생을 영장없이 체포, 감금하고 폭행 가혹행위를 한 것을 인정해 재심을 결정했다. 앞서 2018년 ‘통혁당 재건위 사건' 이동현씨의 재심에서 법원은 보안사가 영장 없이 민간인을 체포해 불법 수사했고 구타, 물고문, 전기고문 등을 인정해 무죄를 선고했다.
박 선생 유족은 “불법수사·고문으로 인한 허위자백은 증거능력이 없는데도 무기징역을 구형한 검찰의 파렴치한 행태는 박 선생과 유족을 가혹하게 두번 죽이는 만행”이라고 반발했다. 박창선씨는 당시 보안사 수사관들이 아버지에게 자백을 강요하며 주먹과 발로 온 몸을 때리고 물고문, 전기고문을 했다고 전했다. 보안사 수사관들은 박 선생에게 북한 노동당 입당을 자백하라고 집중 추궁했다. 박 선생이 입당 사실이 없다고 쓴 자필 진술서를 모두 찢어버리고 모진 고문을 가한 후 “지금부터 내가 말해주는대로 진술서를 받아쓰라”고 지시한 뒤 강제로 진술서를 작성했다.
“보안사 진술과 달리 증거능력이 있는 법정에서 한 진술은 인정돼야 한다”는 게 검찰이 재심에서도 무기징역을 구형한 이유다. 하지만 유족은 박 선생이 재판을 받을 때도 고문으로 육체적 정신적 충격이 심했고 보안사 직원이 법정에 참석했기 때문에 보안사에서 한 진술과 다른 진술을 법정에서 할 경우 보안사로 끌려가 고문, 폭행, 협박 등을 당할 것을 우려했다고 반박한다. 당시 법정에서도 검사는 “빨리 간단하게 답변만 하라”고 박 선생에게 호통을 치는 등 강압적인 분위기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박창선씨는 “당시 보안사와 공안검찰이 아버지를 불법감금 고문폭행하고 불러주는대로 받아쓰기 허위자백을 받아 조작 기소했다. 당시 보안사 수사관들이 어머니도 서빙고 지하실로 끌고가 군복으로 갈아 입히고 ‘저렇게 고문 당할 수 있다’고 협박하고 허위자백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폭력 피해자로 17년 옥고를 치른 고인에게 재심에서조차 무기징역을 구형한 검찰은 당시 유신헌법 공안검찰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노태구 경기대 명예교수는 재판부에 낸 탄원서에서 “박기래 선생은 몽양 여운형 선생과 함께 사회민주주의 이름으로 좌우를 아우르는 좌우합작, 남북협상운동을 주도했던 애국자이다. 후예들이 지금이라도 선생의 평화 통일을 계승할 수 있도록 무죄 판결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기래 선생 재심 선고는 10월26일이다. 권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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