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시대 긴급조치 1호를 위반했다는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까지 했던 국가폭력 피해자 오종상씨가 2014년 12월 대법원에서 열린 재심 선고에서 36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민주화운동 관련 특별법에 따라 보상을 받았더라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제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긴급조치 1호’ 피해자인 오종상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심 상고심에서 2016년 대법원 판결을 취소하고 오씨에게 1억1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1일 밝혔다.
경기도 평택에 살던 오씨는 1974년 5월 버스 옆자리에 앉은 고등학생에게서 ‘반공·근면·저축·수출 증대 웅변대회에 나가는 길’이라는 얘기를 듣고 유신헌법과 정부를 비판했다. 이에 그 고등학생은 교사에게 오씨의 얘기를 전했고, 교사의 신고로 오씨는 중앙정보부에 영장없이 끌려가 고문을 당한 뒤 이듬해 기소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1977년 만기 출소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오씨 사건을 ‘위헌적 긴급조치 발동으로 헌법상 권리를 제약하고 형사 처벌한 중대한 인권침해’로 규정했다. 이에 오씨는 재심을 청구해 2010년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를 근거로 오씨와 오씨 가족은 국가를 상대로 12억8천만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오씨가 2005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구금 관련 생활지원금 4천200여만원을 받았고, 형사보상금 1억8400여만원을 받은 점이 쟁점이 됐다. 당시 민주화보상법은 이 법에 따른 보상금 지급 결정에 피해자가 동의한 경우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입은 피해에 대해 민사소송법에 따른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재판에서 화해는 양쪽이 소송을 끝내기로 합의하는 것을 말한다.
1심 재판부는 오씨의 소송에 각하 결정을 내렸다. 오씨가 이미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받았기 때문에 화해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2심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민주화보상법에 따른 재판상 화해의 대상은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이 아닌 민주화보상법의 보상 청구권”이라며 1억1500여만원의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2016년 5월 대법원은 국가와 오씨 사이에 이미 화해가 성립했다는 1심 판단을 받아들였다.
상황이 달라진 것은 2018년이다. 헌법재판소가 오씨의 헌법소원을 받아들여 민주화보상법에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 피해자가 보상을 받았더라도 정신적 피해에 대한 국가 배상은 여전히 청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이를 근거로 오씨는 재심을 청구했고, 대법원은 2016년 대법원 판결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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