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열린 71동지회 50돌 기념 ‘한국사회 50년의 변화’ 심포지엄 참석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었다. 사진 71동지회 제공
<변혁의 시대 1971~2021-한국사회 50년과 더불어>(동연). 올해 창립 31돌을 맞은 ‘71동지회’(회장 배기운)가 최근 펴낸 회원 문집 성격의 책(비매품)이다. 회원 100여 명 중 37명이 각각 원고지 60매 분량에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중심으로 지난 삶을 압축했다.
박정희 정권은 유신 선포 직전인 1971년 10월15일 위수령을 발동해 전국 22개 대학에서 학생 173명을 학사 제적하고 강제로 군에 입대시킨다.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 체제로 가는 길에서 걸림돌로 여긴 ‘대학 내 불온세력’의 싹을 미리 밟으려는 의도였다. 71동지회는 바로 이 강제징집 피해자들 모임이다.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 이태복 전 복지부 장관,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대표, 이해학 겨레살림공동체 이사장, 장상환 경상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이광호 국제퇴계학연구회 회장…. 이번 문집에 참여한 필자 중 일부다. 회원 중 이미 고인이 된 김근태, 여정남, 제정구, 유상덕, 채광석 등 10명의 약전도 문집에 실렸다.
강제징집자들은 속칭 ‘아스피린’으로 불렸다. 보안사가 이들을 반정부 학생세력을 뜻하는 영문(Anti-government Student Power) 약자 ‘A.S.P’로 지칭했기 때문이다. 최전방 부대에 배치된 이태복 전 장관은 장교에게 유신을 지지하는 군단 연설대회 출전을 권유받고 거절하는 과정에서 야전삽에 머리가 찍혀 봉합 수술을 받았다. 이호웅 전 국회의원은 34개월 군복무 중 배고픔이 중앙정보부의 가혹한 고문보다 더 무서웠다고 썼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는 학교를 일찍 들어간 탓에 제적을 당하고도 2년간 백수 생활을 한 뒤에야 입대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가 심포지엄에서 발표하고 있다. 71동지회 제공
제대 이후엔 신원조회에 걸려 고통을 겪은 이들도 여럿이다. 유학을 전공한 이광호 회장은 전두환 정권 초인 1981년에 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사전편찬실에 들어가려 했으나 71년의 이력 탓에 뜻을 이루지 못했고 5년 뒤 인하대 철학과 교수 임용도 같은 이유로 고배를 마셨단다. 배기운 회장은 박정희 정권 말기에 수출입은행에 합격해 연수까지 받았으나 뒤늦게 신원조회에 걸려 퇴사를 강요받았단다.
“과거 가난한 민주정치보다도 경제성장 약속을 선전하는 독재정치가나 부패정치인이 집권했던 경험적 교훈을 우리 모두 뼈아프게 새겨야 한다.(…) 우리 71동지회는 민주주의 가치를 더욱 확대 발전시키는 과업에 앞장설 것이다.” 책에 실린 ‘71동지회 50년 선언문’ 중 일부다.
71동지회 50년 기념문집 편집위원회(위원장 이원섭 전 <한겨레> 논설위원실장)는 “문집에 실린 회고록 대부분이 우리 현대사의 고비 고비를 넘기며 자신이 겪은 사회·정치적 사건의 의미를 함축한 무게 실린 기록들”이라며 “이 문집이 한국 사회 50년 변화의 뒤안길을 되짚어보는 거울이 되고 앞길을 제시하는 방향타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