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7월7일 민족 자존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 선언(7·7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국가기록원
전두환(90)씨와 함께 12·12 군사쿠데타를 주도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13대)이 26일 숨졌다. 향년 89.
기관지 질환과 소뇌 위축증 등으로 10여년간 투병 생활을 이어온 노씨는 이날 오후 병세가 급격히 악화하며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병원 도착 1시간 뒤인 오후 1시46분 생을 마감했다. 공교롭게도 노씨가 세상을 떠난 이날은 신군부 세력이 권력을 잡는 계기가 된 10·26 42주년이 되는 날이다.
1932년 12월4일 경북 달성군(현 대구)에서 태어난 노씨는 경북고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1955년 소위로 임관했다. 육사 11기 동기인 전두환씨와 함께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를 결성해 세력을 키우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살해되자 그해 12월12일 전씨와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실권을 잡았다. 이후 2인자로 군림하며 보안사령관, 체육부·내무부 장관, 12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대표를 지냈다. 1987년 6월 대통령직선제 개헌 등을 요구하는 민주항쟁이 계속되자, 민정당 대선 후보로 6·29 선언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양김 분열 속에 치러진 그해 12월 대선에서 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12·12 군사쿠데타를 주도하고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관여하면서 ‘전두환의 후계자’로 대통령에 오른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차갑다. 다만 대통령 재임 시절 추진한 북방외교 및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5공 청문회 개최 등은 비교적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대통령 퇴임 뒤인 1995년 11월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된 노씨는 전씨와 함께 재판에 넘겨졌고,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내란죄 등으로 징역 17년, 추징금 2688억원이 확정됐다. 그해 12월 퇴임을 앞둔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처로 복권됐다. 노씨는 전씨와 달리 2013년 추징금 전액을 납부했다.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은 병상에 누운 노씨를 대신해 2019년부터 올해까지 다섯 차례 광주를 찾아 5·18 유혈 진압에 사과하고 5·18 민주묘역을 찾아 참배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옥숙씨와 딸 소영, 아들 재헌씨가 있다. 빈소는 27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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